[Stop & Clean] 최고 스타도 밑바닥 인생으로 추락시키는 불법스포츠 도박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7월 21일 05시 30분


선수는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불멸의 기록을 남긴 대 스타도 현역에서 은퇴를 할 때 눈물을 흘리는 이유다. 평생을 수련하고 단련해 드디어 오른 프로무대, 그러나 한 순간의 잘못으로 영원히 코트 혹은 그라운드를 떠난 그들이 있다.

2012년 대구지방검찰청 강력부는 프로배구 승부조작을 적발하고 가담자 남녀 선수 14명을 적발했다. 프로배구와 함께 프로야구 경기조작에 대한 수사 및 발표도 이어졌다. 이전까지 대한민국은 중국과 달리 프로스포츠 청정 국가로 불렸지만 이 사건을 통해 감춰졌던 치부가 드러났다.

스포츠동아는 당시 사건에서 가장 많은 선수가 구속, 불구속된 프로배구 선수들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추적했다. 화려한 코트에서 영원히 추방된 그들의 인생은 수 많은 관중들의 박수 속에 높은 연봉을 받고 뛰었던 선수시절과는 많이 달랐다.

여자선수 A는 어렵게 골프장 캐디로 일을 시작했지만 곧 그만뒀다. 최근에는 자신의 신분을 최대한 숨기고 유소년배구 강사로 일하고 있다.

남자선수 B는 대학원에서 학업을 마쳤고 체육관련 단체에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남자선수 C는 최근 결혼을 했고 처가의 숙박업 사업을 돕고 있다. 남자선수 D는 서울의 한 곱창전문점에서 일하고 있다. 이 가게 사장은 배구 마니아로 갈 길을 잃은 승부조작 연루 선수 출신들을 고용하고 있다. 주위에 “죄 값을 치렀으니 이제 영원히 코트로는 못 돌아가도 자립할 수 있는,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한다. 남자선수 E는 친척이 운영하는 중소기업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남자선수 F의 경우 구속 수감된 후 출소됐지만 어떤 일인지는 밝혀지지 않은 채 다시 구속된 상태다.

어떤 삶이 행복하고 어떤 직업이 더 큰 만족감을 주는지는 그 어떤 객관적인 기준도 있을 수 없다. 타인의 직업을 제3자가 섣불리 평가하는 것도 옳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승부조작혐의로 영구 제명된 전 프로배구 선수들의 삶은 직업과 상관없이 상당히 피폐하다는 것이 주위의 공통된 말이다.

한 배구 관계자는 “상당수가 대인기피증 등 여러 아픔이 있었다고 들었다. 아주 친한 경우가 아니면 연락도 잘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프로배구와 함께 적발된 프로야구 경기조작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었다. 그 전까지 야구는 승부조작 자체가 매우 어렵고 그나마 상당한 규모의 선수들을 포섭해야 가능하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그러나 승부가 아닌 경기 상황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불법도박이 이뤄졌다. 김성현과 박현준(전 LG)은 자신의 선발 등판한 경기에서 사전에 협의한대로 1회 볼넷을 내주는 방식으로 경기를 조작하다 영구 제명됐다.

2012년 4월 법원은 박현준과 김성현에게 나란히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각각 500만원과 700만원의 추징금에 120시간 사회봉사도 추가됐다.

별 생각 없이 500만~700만원으로 바꾼 볼넷, 그러나 박현준과 김성현은 영원히 그라운드를 떠났다. 당시 한 베테랑 투수는 “박현준이 스물일곱이고 김성현은 스물 네 살이다. 앞으로 몇 십억을 벌 수 있는 야구인생이 남아있었는데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현준은 한동안 군 복무도 미루고 부모님 집에서 칩거하다 야구선수로 재기를 꿈꾸며 한국과 협정이 없어 선수로 뛸 수 있는 도미니카공화국 리그에 진출해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식 입단은 이뤄지지 않았다.

최고 유망주 투수로 꼽혔던 김성현은 근황을 아는 주변 사람이 거의 없다. “작은 가게를 운영한다고 들었다” 정도가 전해지는 소식이다.

‘한국의 마라도나’로 불렸던 최성국도 승부조작에 연루돼 축구선수로 인생이 끝났다.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이 터진 후 최성국은 “부끄러움이 있다면 이 자리에 있지 않는다. 부끄러움 없이 정직하게 살았다.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계속 들으니 지치기도 한다”며 부인했지만 얼마 후 광주 상무 소속 시절 승부조작에 가담한 것이 드러났다. 중국인 브로커까지 가담된 사건이었다.

최성국은 이후 복귀를 위해 꾸준히 노력했지만 선수로 다시 운동장에 서지 못했다. 4월 최성국은 유럽 10여개 리그를 모바일을 통해 중계하는 스포빌의 해설위원을 맡았다. 선수는 아니지만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다른 사례와 비교할 때 본인에게 큰 행운이다.

프로농구 최고 스타 중 한명이었던 강동희 전 감독은 승부조작 혐의로 징역 10월의 실형을 살았다. 2013년 9월 출소 이후 강동희 전 감독은 은둔하며 반성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불법스포츠도박 승부조작에 가담해 프로스포츠 무대를 영원히 떠나는 많은 선수와 지도자들은 상당수가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살고 있다. 워낙 유명했던 스타출신들은 일상적인 외부활동조차 힘겨워하는 경우도 많다. 안일한 생각으로 불법스포츠도박에 빠진 대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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