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3년 11월 제주 나인브릿지골프클럽. 19세 소녀가 처음 출전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CJ나인브릿지 클래식에서 생애 첫 승을 따낸 뒤 어머니와 포옹하며 눈물을 흘렸다.
#2. 2016년 6월 인천 베어즈베스트청라골프클럽. 32세 싱글맘 골퍼가 한국여자오픈에서 12년 만에 다시 우승한 뒤 네 살 바기 딸을 안으며 활짝 웃었다.
13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주인공은 안시현(골든블루)이다. 깜짝 스타로 떠오른 뒤 2011년 유명 연예인과의 결혼과 은퇴, 출산, 그리고 깊은 상처를 남긴 이혼 과정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2014년 다시 골프채를 잡고 국내 투어에 복귀한 그는 “며칠째 여기저기서 축하를 많이 받았다.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며 웃었다. 23일 경기 안산시 아일랜드CC에서 개막하는 KLPGA투어 비씨카드 한경 레이디스컵에 출전하는 안시현은 “우승했다고 해서 달라진 건 없다. 좋은 샷 감각으로 투어에 전념해 좋은 성적을 낼 생각뿐이다”고 말했다.
그는 인기의 덧없음을 누구보다 실감하고 있다. 안시현은 “처음엔 다들 신데렐라라고 띄워주더라. 그런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혼자 있으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며 “컴백하니 주위에서 오래 쉬었다고 ‘쉰데렐라’라고 하더라. 딸 그레이스와 고생한 가족들을 위해 이를 악물었다”고 털어놓았다.
학창 시절 게으른 천재로 불렸던 안시현은 요즘은 20대 초반 때 보다 훈련을 더 많이 한다. “땀을 흘리면서 해 뜨고 지는 걸 보기도 했다. 고생의 대가는 분명히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중 고등학교 때는 남보다 하루를 더 쉬면서 운동했다. 이젠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게 됐다.”
한국의 다른 워킹맘이 그렇듯 안시현 역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다. “애 키우면서 공치는 거 힘들다. 친정 엄마가 손녀를 돌보느라 10kg 이상 빠졌다. 너무 죄송스럽다. 내가 엄마로서 딸과 해야 할 일도 많다. 대회 끝나고 오면 둘 만의 시간도 가지려 한다. 아이가 책 보고 꽃 만지는 것을 좋아한다. 애 자기 전에 같이 씻고, 책을 읽어준다. 고기 종류를 잘 먹는데 집에 있을 때 찌개, 생선구이, 조림 등을 해주곤 한다.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 돈도 충분히 벌어야 한다.”
올 시즌 골프가 너무 안돼 다시 필드를 떠나려 했던 그를 일으켜 세운 건 딸 그레이스다고 했다. KLPGA투어에서 30대 선수가 챔피언에 오른 건 2012년 박세리 이후 4년 만이다. 20대 후반만 접어들어도 한 물간 노장 취급을 받는 국내 여자골프의 현실에서 안시현은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평가다.
“골프를 포기하지 않은 게 너무 행복하고 좋다. 같이 플레이하는 어린 친구들을 보면 스트레스와 부담이 많은 것 같다. 골프도 중요하지만 취미 생활도 가졌으면 좋겠다. 난 그동안 충분히 게을렀고 프로 자격증만 있는 프로였다. 이젠 아니다. 뒤틀린 내 인생을 잘 만들기 위해 골프를 잘하고 싶다. 필드에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레이스의 엄마로서, 투어 프로로서 후회 없이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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