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헌의 사커 드림] 낯선 순위표…슈퍼매치 앞둔 염기훈의 책임감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6월 17일 05시 45분


수원삼성 염기훈. 스포츠동아DB
수원삼성 염기훈. 스포츠동아DB
“계속 9위에 머물 경기력 아니야
슈퍼매치를 터닝 포인트 삼겠다”

순위표를 보면 낯설다. 우리 자리가 아닌 듯하다. 주변에선 뒷심 부족이니, 집중력이 떨어졌느니 하면서 수군거린다. 이런 순위가 처음인지라, 개인적으로 자존심도 상한다. 무엇보다 팬들에게 죄송하다.

수원삼성 주장 염기훈(33·사진)은 “요즘 참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수원은 2014년과 2015년 연속으로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준우승을 차지한 팀이다. 올해는 14라운드까지 9위. 받아들이기 힘든 성적표다. 우리 힘이, 실력이 이것밖에 안 된다면 오히려 마음이 편할 텐데 그것도 아니다. 후반 막판 골을 허용하면서 이길 경기를 비기고, 비길 경기를 내주는 일이 수차례 반복됐다. 결과가 안 좋으니 동료들도 자신감이 떨어진 것 같다. 경기 막판이 되면 스스로 불안하다고 느끼게 된다. 15일 전북현대전에서도 후반 추가시간에 결승골을 내주고 1-2로 무너졌다.

염기훈은 “(서정원) 감독님께선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신다. 오히려 너무 처져 있지 말자고, 용기를 내자고 하신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죄송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왜 안 좋은 결과가 반복되는지 나도 이유를 모르겠다. 이상하게 꼬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답을 찾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넋을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그는 “우리가 한 발 더 뛰는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우리끼리 더 뭉쳐야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며 후배들을 다독이고 있다”고 했다.

‘이런 페이스라면 상위 스플릿 진입이 쉽지 않아 보인다’라는 말에 그는 단호하게 “아니다”고 했다. “우리가 골을 못 넣고 지거나 비기는 게 아니다. 경기 내용만 놓고 보면 충분히 희망이 있다. 우리 팀의, 수원의 저력을 믿는다.”

염기훈은 전북과 울산현대를 거쳐 2010년 수원 유니폼을 입었다. 그 때만 해도 푸른 유니폼이 ‘운명’이 될지 몰랐다. ‘수원 맨’으로 맞은 첫 시즌, FA컵 결승전에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왼발 슛으로 결승골을 뽑아 짜릿한 1-0 승리를 일궜다. 그런데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후 한 번도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했다. 이렇게 ‘무관’으로 오래 지내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모두 자신의 탓인 것처럼, 마음이 무겁고 가슴이 답답하다.

염기훈은 소속팀은 물론이고 타 팀 동료들과 선·후배들에게서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 실력과 인성을 두루 갖춘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지난해 올스타 베스트 11 투표에선 클래식 12개 구단 감독·선수들의 ‘만장일치’로 왼쪽 미드필더에 선정되기도 했다.

염기훈에게는 바람이 하나 있다. 2006 년 전북 소속으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했고, 2010 년 FA컵 왕좌에도 올라봤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 번도 정규리그 우승 트로피는 안아보지 못했다. 지난 2년간 준우승에 머물렀을 때 너무 안타까웠던 이유도 그래서다. 우승이란 두 글자를 생각하는 그에게 ‘9’란 숫자는 그래서 더 가슴 아프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역경을 딛고 일어서겠다고 다짐하며 또 한 번 스파이크 끈을 고쳐 맨다. 수원은 18일 상암에서 FC서울과 시즌 2번째 슈퍼매치를 펼친다. 팀에도, 그에게도 터닝 포인트가 필요하다. 염기훈은 모처럼 미소를 지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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