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타격 폼이 어때서? 이 자세로 10여년 살아남았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1일 14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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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 놀리는 이진영. MBC스포츠플러스 화면 캡쳐
이대형 놀리는 이진영. MBC스포츠플러스 화면 캡쳐
2014년 LG에서 한솥밥을 먹다 KIA로 이적한 이대형(kt)을 놀리던 이진영(kt)의 모습이 TV중계 화면에 잡힌 적이 있다. 이진영은 고개를 바닥에 닿을 듯 기울이며 이대형의 타격 폼을 따라했다. 하지만 이진영 역시 남부럽지 않은 독특한 타격 폼을 갖고 있다. 상체와 방망이를 수직에 가깝게 꼿꼿이 세우는 폼이다. 상체를 수평에 가깝게 기울이는 이대형의 폼과는 ‘상극’이다.

두 선수가 지금의 독특한 타격 폼을 갖게 된 사연도 정반대다. 이진영은 고교시절 폼을 완전히 버렸다. “프로에 오니 빠른 공에 방망이가 밀렸다. 고민이 많던 2002년 하반기에 당시 SK 주루코치였던 신원호 코치님이 방망이를 우산 들듯 잡고 편하게 서 있으라고 조언해주셨다. 타격코치도 아니신 분이 그럴 정도면 내가 치는 게 얼마나 답답했겠나(웃음). 그 때 잡아주신 폼으로 처음 3할을 쳤다. 그게 지금까지 야구를 할 수 있는 큰 힘이 됐다.”

이대형은 고교시절 몸에 밴 습관을 폼으로 만들었다. 김용달 전 LG 타격코치는 “내가 지도할 당시에는 대형에게 빠른 발이란 무기가 있으니 타격 포인트를 앞쪽에 둬 살아 나갈 확률을 높이는 데 초점을 뒀다. 이후 다른 지도자들에게 많은 지적을 받았다”고 말했다. 만나는 코치마다 타격 때 두 발이 고정되지 않는 그의 폼을 손보려 애썼고 결과는 혼란이었다.

결국 몸에 맞는 조언만 골라 지금의 폼을 완성했다. 과거보다 상체를 뒤로 뺐고, 두 발의 간격은 넓혔다. 스윙 면적도 넓히고 볼도 더 잘 보기 위한 것이었다. 이대형은 “공을 올려다보면서 스윙 궤도를 컨트롤할 수 있는 폼이 필요했다. 아예 앉아서 쳐보자는 생각을 했고 그게 지금의 타격 폼이 됐다”고 설명했다.

특이한 타격 폼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선수가 또 있다. LG 정성훈이다. 그는 타석에서 헬멧 위에 방망이를 올려놓고 공을 기다린다. ‘어떻게 그런 폼을 갖게 됐느냐’는 우문(愚問)에 그는 현답(賢答)을 내놨다. “공을 치기 전 나에게 가장 편한 자세를 찾은 것이다. 선수마다 키, 몸무게, 호흡 등이 다르기 때문에 준비자세도 다 다르다. 내 폼이 특이하다고들 하는데 사실 선수 중 같은 폼을 가진 선수는 하나도 없다. 준비자세는 달라도 결국 공을 방망이 중심에 맞출 때 모양은 거의 비슷하다.”

이진영도 같은 생각이다. “폼은 체형이나 습관에 따라 다 다르다. 자기가 편한 자세로 치면 된다. 중요한 건 폼보다 중심에 맞추는 것이다. 후배들에게도 연습 때 의미 없이 멀리 치려하지 말고 공을 정확히 맞추는 데 집중하라고 한다.”

한국의 전통 건축에는 뒤틀리고 휜 나무가 그대로 기둥과 대들보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임석재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는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이라는 책에서 그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무가 없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나무 찾고 다니기가 귀찮아서 그랬을까. 둘 다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휜 나무를 기피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휜 나무도 곧은 나무와 조금도 다름없이 기둥으로써의 구조 역할을 거뜬히 해낼 수 있다.’

‘정석’과는 거리가 먼 타격 폼으로 프로의 세계에서 20년 가까이 살아남은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자신만의 타격을 정립하지 않고 선수생활을 오래하기란 불가능하다. 남들 눈에 예쁘지 않아도 확실한 내 것을 찾은 18년차 정성훈과 이진영, 14년차 이대형은 그렇게 소속 팀의 든든한 기둥이 됐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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