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 아닌 자율훈련…선수협 반대에는 이유가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4일 15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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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는 선수들에게 "훈련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구단을 향해 "자율 훈련을 시키지 말라"고 했을 뿐입니다.

한국에서는 '자율'이 종종 이상한 뜻으로 쓰입니다. 고3 때 저는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야간 자율 학습을 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처음에는 "안 된다"고 하셨다가 제가 뜻을 꺾지 않자 "그러면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국어사전을 들고 "남의 지배나 구속을 받지 아니하고 자기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어떤 일을 하는 일"이라는 자율의 뜻풀이를 보여드렸습니다. 분명 자율 학습인데 왜 제 마음대로 안 된 걸까요?

선수협에서 "비활동 기간에는 자율훈련도 금지"라고 못 박은 이유도 사실 똑같습니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해마다 2월부터 11월까지 계약하고 연봉도 이 열 달 동안 나눠 받습니다. 월급을 받지 않는 두 달이 바로 비활동 기간입니다.

선수협에서는 이전까지 비활동 기간에 단체훈련만 금지했습니다. 그러자 구단에서 자율 훈련을 실시했습니다. 구장 시설을 개방하고 당번 코치를 정해 선수들을 지도하는 방식이었죠. '자율학습'과 똑같은 상황이 된 겁니다. 여기에 김성근 한화 감독(72)이 일본 오키나와로 '재활캠프'를 떠나려 하자 선수협에서 아예 자율훈련까지 금지하고 나섰습니다.

구단에서 선수들을 따뜻한 곳에 데려가 훈련을 시키겠다는데 왜 선수협회에서 반대하는 걸까요? 억대 연봉을 받는 1군 주전 선수들의 목소리만 반영한 조치는 아닐까요? 1군에 진입하려 애쓰는 퓨처스리그(2군) 선수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선수협에서는 "의협(대한의사협회)에 가서는 '이게 의사들 의견이 맞냐'고 안 물어보잖아요. 그런데 왜 선수협은 선수 의견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네요. 기본적으로 억대 연봉 선수들은 다수결을 이끌어 낼 만큼 숫자가 많지도 않아요. 또 이들은 정말 자율적으로 훈련할 수 있으니 자율훈련 금지를 주장할 이유도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2군 선수들에게 물어보면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우린 어차피 안 데려 간다'고 답합니다. 적어도 1.5군 선수는 돼야 해외도 가는 겁니다. 2군 선수들 대부분 (출입국 기록이 없어) 여권이 깨끗해요. 이 선수들은 그냥 야구장에 불러 놓고 추운 데서 훈련하는 거예요. 이걸 하지 말자는 뜻입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계속해서 "기술 훈련은 어차피 1월 중순에 전지훈련 가서 시작합니다. 비활동 기간 실내 훈련은 동네 헬스클럽에서도 다 할 수 있어요. 그걸 팀 눈치 봐가면서 하지 않게 해주자는 뜻입니다. 프로야구라는 게 다 큰 어른들이 돈 받고 하는 겁니다. 훈련 열심히 해야 자기들 몸값이 올라간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압니다. 일년에 열 달을 팀이 정한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는데 두 달도 자기 마음대로 쓰면 안 됩니까"라고 덧붙였습니다.

저는 이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선수들이 야구하는 기계는 아니죠. 이들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남편이고, 누군가의 아버지인데 가족과 함께 할 시간 정도는 보장해 주는 게 맞지 않을까요? 메이저리그에서 자유계약선수(FA) 제도를 도입하게 만든 커트 플러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을 많이 받는 노예라고 해도 노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선수들에게 진짜 자율을 찾아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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