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재기 노리는 K리거] 김귀현 “아르헨 명문 간판보다 뛸 수 있는 팀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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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30일 07시 00분


대구FC 김귀현이 외로웠던 아르헨티나 생활을 접고 K리그 클래식에서 화려하게 비상할지 관심을 모은다. 사진제공|대구FC
대구FC 김귀현이 외로웠던 아르헨티나 생활을 접고 K리그 클래식에서 화려하게 비상할지 관심을 모은다. 사진제공|대구FC
중 2때 큰 꿈 품고 떠난 아르헨 유학
5년만의 벨레스 1군, 그러나 기회가 없었다
대구 러브콜에 경기영상 보며 새로운 꿈
소중한 가족 위해 한국의 마스체라노 도전장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활동했던 김귀현(23·대구FC)에게 2013년은 아주 특별하다. 처음으로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무대를 밟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대구FC는 김귀현을 영입했다. 선택은 쉽지 않았다. 남미 최고의 명문 클럽 중 하나인 벨레스 사스필드에 입단하는 건 모든 아르헨티나 축구 유망주들의 꿈이다. 이런 가운데 대구는 1년여의 구애를 했고, 결국 성공했다. 그렇게 맞은 모국에서 첫 도전. 스포츠동아는 터키 안탈리아에서 전지훈련 중인 김귀현과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처음과 끝, 그리고 출발

김귀현은 남해 해성중 2학년이던 2004년, 유소년 축구 유학 프로그램을 통해 아르헨티나행을 결심했다. 의외였다. 당시 유학의 주류는 브라질. 그러나 전남 신안의 작은 섬 임자도에서 태어난 소년은 남해 스포츠클럽에서 만난 아르헨티나 출신 아르만도 감독의 권유를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아르만도 감독의 자택에서 숙식을 해결했고, 벨레스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그렇게 아르헨티나 생활이 시작됐다.

“브라질 유학을 간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힘들었어요. 성공 케이스가 없어 내일을 확신할 수 없었고요. 더욱이 브라질은 사비 유학이 대부분이었어요. 전 아르만도 감독님의 지원이 없었다면 기회도 없었을 겁니다.”

물론 유럽에 대한 로망은 늘 있었고, 지금도 있다. 아르만도 감독의 한 마디에 마음을 되잡았다. “넌 지금 무척 어리다. 여기(아르헨티나)에서 충분히 경험을 쌓고, 유럽은 나중에 가자.”

2005년부터 혹독한 담금질이 이어졌다. 벨레스 유스팀 입단이 곧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2010년 12월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왔다. 1군행이었다. 그런데….

“벨레스는 정말 강해요. 최근 4시즌 중 세 차례 정규리그 정상에 섰죠. 저요? 뛸 자리가 없었죠. 엄청 노력은 했는데, 기회도 없었고. 기술도 기술이지만 그들의 축구 열정을 피부로 직접 느낀 건 소득이죠. 제게 점수를 준다면 70점? 경기만 뛰었다면 100점일 텐데.”

○꿈

2011년 벨레스의 정식 선수가 됐지만 마음 한구석은 아쉬움이 가득했다. 벤치에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은 괴로웠다. 훈련장에서 함께 땀 흘린 동료들이 저만치 앞서는 동안 자신은 항상 제자리걸음을 한다고 느껴졌다.

“팀이 원체 황금기였죠. (못 뛰어서) 울적했는데, 그 때 처음으로 제게 관심을 보여준 곳이 대구였어요. 좋은 환경, 좋은 선수들과 훈련하며 많은 걸 배웠지만 선수는 뛰어야죠. 뛰어야 선수니까.”

대구로 행선지를 결정한 뒤 치밀하게 준비했다. 벤치워머의 설움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일찌감치 구단에 요청해 작년 대구의 경기 동영상 자료를 챙겼다. 노트북을 통해 15경기 가량 꼼꼼히 체크했다. 자신이 어디에 잘 맞는지, 어떤 전술에서 어떤 스타일로 뛰어야 할지 이미 머릿속 구상을 완료했다.

“처음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죠. 볼 점유율과 패싱 축구. 벨레스 시절이 떠올랐죠. 팀 합류 후 동료들과 계속 손발을 맞추는데, 아직 낯설긴 해요. 빨리 팀 스타일에 적응해야 할 텐데. 물론 그전에 융화부터 돼야죠.”

그 역시 도시민구단들의 어려움도 잘 알고 있다. 환경도, 여건도 좋지 않다는 걸 이미 접했다. 하지만 이는 중요치 않다. 매 순간이 소중하기에, 그리고 자신이 속한 조직만이 최고라는 걸 깨우쳤기에. “뛸 수 있다면, 그리고 헌신할 기회만 있다면 좋겠는데.”

○인간 김귀현

김귀현은 청각장애 부부의 1남4녀 중 막내다. 넉넉지 못한 형편. 하지만 한 순간도 가족을 원망하거나 부끄럽다고 여기지 않았다. 자신의 전부이자 삶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제게 가족은 전부죠. (지병으로 투병 중인) 아버지도 많이 몸이 좋아지셨고요. 제 인생의 목적인 가족들을 실망시키면 안 되죠.”

아르헨티나에서 보낸 시간 내내 항상 가족을 그리워했다. 나 홀로 방에 앉아 멍하니 컴퓨터를 들여다볼 때도, TV를 볼 때조차 문득문득 생각이 났고, 때론 눈물도 났다. 그래도 이젠 그럴 일이 없다. 고국행을 결심한 계기의 일부 또한 가족이었다.

사실 축구화를 신게 된 것도 가족의 영향이 컸다. 한 때 축구 선수를 꿈꾼 막내 외삼촌이 선물한 빨간색 축구화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러한 외삼촌들의 꿈을 대신 이뤄주기 위해 자연스레 축구를 시작했고, 그렇게 축구와 함께 하는 삶이 됐다.

“제가 롤 모델로 삼은 아르헨티나 ‘살림꾼’ 마스체라노와 (김)남일이 형처럼 당당한 미드필더로 설게요. 지켜봐주세요.”

김귀현?

▲생년월일 : 1990년 1월4일(전남 신안)
▲신체조건 : 170cm, 60kg
▲학력 : 남해 해성중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경력 : 벨레스 사스필드 유소년클럽(2005∼2010), 벨레스 사스필드 1군(2010∼2012), 대구(2012년 12월∼현재)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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