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Let’s Go Baseball] “사장한테 인사 안해? 저 감독 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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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8일 07시 00분


좋은 구단-나쁜 구단

초창기 구단 사장들, 생산성만 강조
성적 나쁜 감독에 무릎 꿇려 훈계도

모기업서 꽂은 비전문가 낙하산 리더
야구에 무지…오너 황당 지시도 OK!
선수단-프런트 엇박자 구단 불량 낙인


흔히 구단을 프런트라고 부른다. 선수들을 위해 모든 것을 지원하는 조직이다. 초창기에는 프로야구단 운영 노하우가 없었다. 프런트의 능력 차이도 크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21세기 프로야구는 선수단과 프런트가 함께 하는 토털 베이스볼이다.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를 거쳐 프로페셔널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한 구단도 있지만, 정반대의 프런트도 있다. 불량 프런트와 우량 프런트를 구분하는 눈으로 보면 그해 프로야구의 판도를 예상할 수도 있다.

○사장과 감독, 누가 더 높은가?

프로야구 초창기 구단 운영의 주도권은 감독에 있었다. 당시는 말만 프로야구였다. 운영방식은 실업야구와 다르지 않았다. 프로야구단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도 드물었다. 감독은 선수들의 통제권을 가졌기에 자신이 최종 결정권자라고 생각했다. 프런트를 대표하는 사장과의 알력은 피할 수 없었다. 1980년대 후반까지 사장과 감독의 파워게임은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사장에게 인사를 하지 않아 해임된 감독도 나왔다. 야구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악법만 내놓는 야구행정과 프런트에 대한 불신이 만든 해프닝이었다.

○초창기 황당했던 사장·단장들

야구를 모르는 사장들은 여러 에피소드를 남기며 유성처럼 사라졌다. 빗맞은 안타를 보더니, ‘힘들게 치지 말고 모든 선수에게 저렇게 치도록 가르치면 되겠다’고 했던 사장이 있었다. ‘투수 9명이 매일 1이닝씩 던지면 된다’며 ‘투수의 수를 줄이라’고 지시한 사장도 있었다. 성적이 나쁘다며 감독을 매일 사무실로 불러 무릎을 꿇게 한 사장도 있었다. 사장들은 일반 기업체와 비교해가며 생산성을 높이려고 했다. 그러나 야구는 그런 사장들의 이해를 벗어나는 결과만을 안겼다. 모기업에서 성적부진을 이유로 여러 차례 경영진단이 나왔다. 야구단을 감사했던 엘리트들도 제대로 된 답을 얻지 못했다. 삼성이 시행착오를 거쳐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결과물을 내놓기까지는 20년이 필요했다.

○구단 운영의 헤게모니는 결국 선수단에서 프런트로!

1990년 LG는 프로야구에 새 방향을 제시했다. 프런트 야구였다. 우승을 안겨준 백인천 감독과 재계약을 포기하고 이광환 감독을 택한 LG는 구단과 선수단의 업무분리를 통한 야구를 했다. LG 야구의 황금시대였다. 프런트 야구를 더욱 발전시킨 팀은 현대였다. 김재박 감독은 그라운드에서 작전과 선수기용 등 경기에 대한 책임만 졌다. 트레이드, 외국인선수 및 신인 선발, 2군 운영 등은 구단에서 알아서 했다. 양쪽은 호흡이 잘 맞았다. 현대 프런트는 과감한 투자로 트레이드를 성공시켰다. 선수의 기량분석도 잘했다. 다른 팀에서 알짜 선수를 끌어들여 왕국을 건설했다. 지금은 프런트의 역할이 더욱 커졌다. 유망신인의 발굴과 육성은 팀의 미래를 결정한다. LG가 21세기 들어 침체를 거듭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몇 년간 조급했다. 장기적 대책이 필요한 문제를 응급치료로 버텼다. 방향성 없이 감독을 교체하고, 귀중한 2군 유망주를 다른 팀에 넘겨준 것이 뼈아프다.

○불량 프런트 감별법

요즘은 유망주를 쉼 없이 공급해주는 팜시스템 운영과 외국인선수 스카우트 능력에서 프런트의 능력이 평가된다. 구단이 하는 일도 전과는 달라졌다. 예전에는 우승 여부가 중요했지만 갈수록 수익을 내는 사업,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서의 역할도 요구된다. 이런 상황에서 불량 프런트와 좋은 프런트를 구분하는 기준이 있다.

첫째, 전문성. 야구단은 특수한 조직이다. 사장, 단장의 전문성이 정말 중요하다. 모기업에서 낙하산으로 비전문가가 시도, 때도 없이 내려오는 구단치고 좋은 결과를 내는 팀은 없다. 이런 사람들은 십중팔구 귀가 얇다. 자신에게 오는 정보 가운데 쓰레기와 제대로 된 것을 구분할줄 모른다. 모기업에서 내려오는 황당한 지시에 아니라고 말할 능력도 없다. 왜? 야구를 모르니까. 그래서 프런트의 리더가 무지하면 구단은 불행해진다. 잘 나가는 팀이 망가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실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전문성이 중요하다. 그러나 똑똑한 실무자는 버티지 못한다. 구단 운영의 매뉴얼과 노하우를 남겨두지 않은 팀은 불량구단이다.

둘째, 구단 운영과 프로야구에 대한 비전. 우리는 어떤 야구를 한다는 공통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1군과 2군은 물론 프런트도 같은 생각을 공유해야 한다. 1·2군이 따로 놀고 프런트와 현장이 다른 소리를 내면 최근 어느 구단과 같은 꼴이 난다. 한국프로야구에 대한 제대로 된 비전이 있다면 제10구단 창단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올 이유도 없다.

셋째, 투자와 타이밍이다. 잔돈에 강한 프런트는 성공하기 힘들다. 투자가 필요하다. 해태는 V9의 빛나는 전통을 세웠지만 명문구단은 아니었다. 투자라는 면에서 아쉬움이 많았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사안과 시기에 돈을 지르는 프런트도 불합격이다. 필요한 돈을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써야 효과가 좋다. 불량 프런트는 그 타이밍을 항상 놓친다.

넷째, 선수와 팬의 사랑이다. 선수들이 뒤돌아서 욕하는 프런트는 불량이다. 팬들로부터 매일 비난 받는 프런트도 있다. 구단 운영의 진정성과 원칙에서 선수와 팬을 설득하지 못해서다.

전문기자 marco@donga.com 트위터 @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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