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셋 롯데 이정민 3254일 만에 선발승 “아내가 날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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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30일 07시 00분


롯데 이정민은 29일 문학 SK전에서 프로 데뷔 후 최고의 투구를 선보이며 2003년 10월 2일 대구 삼성전 이후 3254일 
만에 첫 선발승을 신고했다. 역투를 펼치고 있는 이정민의 모습. 문학|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롯데 이정민은 29일 문학 SK전에서 프로 데뷔 후 최고의 투구를 선보이며 2003년 10월 2일 대구 삼성전 이후 3254일 만에 첫 선발승을 신고했다. 역투를 펼치고 있는 이정민의 모습. 문학|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땜질선발. 만년 2군투수.
프로 11년간 고작 11승.
이승엽에게 아시아홈런
기록을 헌납한 그 투수.
그가 희망을 던졌다.
148km의 혼신투구.
8이닝 9안타 1실점 대박.
9년 만에 얻어낸 선발승.
아내랑 내기해서 지지
않으려고 던졌다는 엉뚱파.
이젠 그저 그런 투수가 아닌
경기를 지배한
선발승 투수로 우뚝섰다.
그 이름 이.정.민.


29일 문학구장. 이닝이 끝날 때마다 3루 내야 관중석의 롯데 팬들은 기립해 연호했다. 유먼도, 송승준도 못 받아본 이런 최고의 찬사는 롯데의 서른세 살 땜질선발을 향해 쏟아졌다. “이정민! 이정민!”

8회까지 단 1개의 볼넷도 내주지 않고, 무4사구 무실점 행진. 롯데가 10-0으로 앞선 9회말에도 2002년 프로 데뷔 이후 첫 완봉·완투를 위해 이정민은 마운드에 올랐다. 유격수 황진수의 아쉬운 수비와 곧이어 터진 최정의 2루타로 1실점을 하자, 롯데는 정대현으로 바꿨다. 그러나 5타점을 올린 황재균도, 125m짜리 쐐기홈런을 터뜨린 홍성흔도 아니라 이날 경기의 주인공이 이정민이라는 것을 모든 롯데 선수들은 잘 알고 있었다.

29일 등판부터가 기적이었다. 고원준이 선발에서 탈락한 뒤 롯데는 다양한 옵션을 실험해봤으나 기대이하였다. 결국 고원준을 다시 불러올려야 했고, 다시 실망했다. 화가 난 양승호 감독은 “썼던 선수만 부르지 말고, 2군에서 잘하면 기회를 주라”고 2군을 질타했다. 그리고 33세, 프로 11년간 통산 11승밖에 못 올렸던 ‘만년 2군투수’ 이정민이 1군에 올라왔다.

18일 사직 넥센전에 처음 선발 투입돼 4.1이닝 5안타 4실점했다. 그러나 선발이 펑크 난 상황이라 28일 SK와의 2위 전쟁에 이정민의 등판은 불가피했다. 그런데 28일 태풍 볼라벤으로 인해 경기가 사라졌다. 29일 이용훈을 선발로 올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양 감독은 이정민 선발카드를 고수했다. SK조차 의외로 여긴 카드였다. 양 감독은 “5이닝은 어떻게든 막겠다는 각오가 서 있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결과는 기대를 훌쩍 뛰어넘어 8이닝 9안타 6탈삼진 1실점의 대박이었다. 직구 최고 구속이 시속 148km까지 찍혔다. 데뷔 최다인 95구(스트라이크 64구)를 던졌는데도 막판까지 140km대 후반의 구속이 나올 정도로 혼신의 투구였다.

2003년 10월 2일 대구 삼성전 이후 무려 3254일 만에 맛보는 선발승이었다. 5이닝 3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지만 당시 삼성 이승엽에게 맞은 56호 아시아신기록 홈런이 더 기억에 남는, 상처뿐인 승리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8년 10개월 26일이 흘러 이정민은 정말 경기를 지배한 선발승 투수로 우뚝 섰다.

○롯데 이정민=승리 욕심 없이 5회까지 던진다는 생각으로 피칭에 임했다. 5회 이후부터는 부담 없이 자신 있게 던진 게 적중했다. 직구가 좋아서 직구 위주로 던졌고, 볼 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가려 집중한 것이 적중했다. 오늘 비록 완봉승은 못했지만 팀이 승리한 데 일조한 걸로 만족한다. 8회 주형광 코치가 의향을 물어볼 때 ‘완봉하겠다’고 했는데 안됐다. 아내랑 1이닝당 +5만원, 1실점당 -3만원 내기를 했는데 승부욕을 자극하는데 도움을 준 것 같다.(웃음)

문학|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트위터@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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