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류현진 “감독님 내년 WBC 한번 더 가시죠?”…김인식 “왜, 너 또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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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1일 07시 00분


국민감독과 대한민국 에이스의 만남.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오른쪽)과 프로야구 최고 스타 한화 류현진이 
스포츠동아 창간 4주년을 기념해 만났다. 김 위원장은 한화 감독이던 2006년 신인 류현진에게 과감히 선발을 맡겼다. 지난해 역대
 최연소·최소경기 1000탈삼진을 달성한 류현진은 가장 고마운 인물 중 한명으로 김 위원장을 꼽았다.청주|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국민감독과 대한민국 에이스의 만남.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오른쪽)과 프로야구 최고 스타 한화 류현진이 스포츠동아 창간 4주년을 기념해 만났다. 김 위원장은 한화 감독이던 2006년 신인 류현진에게 과감히 선발을 맡겼다. 지난해 역대 최연소·최소경기 1000탈삼진을 달성한 류현진은 가장 고마운 인물 중 한명으로 김 위원장을 꼽았다.청주|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스승 김인식&제자 류현진
세대공감 인터뷰 지상중계


자신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 안에 ‘나라 국(國)’자가 포함된다는 것. 무척 영광스럽지만 동시에 책임감을 짊어져야 하는 일이다. ‘국민 감독’과 ‘대한민국 에이스’처럼 말이다. 프로야구가 벌써부터 사상 최고의 흥행 조짐을 보이고 있는 2012년. 어쩌면 두 사람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는지도 모른다.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큰 어른인 김인식(65)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과 현역 프로야구 최고의 스타 류현진(25·한화)이 스포츠동아 창간 4주년을 기념해 마주 앉았다. 김 위원장은 손자뻘인 젊은 제자에게 시종일관 편안한 농담을 건네며 대화를 부드럽게 이끌었고, 류현진은 옛 은사가 풀어놓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깍듯하게 예우를 갖췄다. 40년 세월을 뛰어넘는 두 사람의 ‘세대공감 인터뷰’를 지상 중계한다.

처음 본 현진이 덩치 큰 촌놈 같았는데
고교시절부터 구위나 폼이 빼어났었지

항상 믿어주셔서 저는 행운아 였어요
WBC 4강때 나도 꼭 가고싶다 꿈키웠죠

91년 슈퍼게임땐 日과 50년 격차 인정
올림픽 금메달로 세계의 시선 확 달라져

이젠 프로 7년차, 힘도 붙고 자신감 UP!
꼭 해외로 나가 새로운 도전 하고 싶어요


김 위원장이 한화를 지휘하고 있던 2005년 말 동산고 졸업 예정인 왼손 투수 류현진이 입단했다.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본 감독은 2006시즌의 선발 로테이션 한 자리를 낯선 신인의 이름으로 채워 넣었다. 그렇게 ‘괴물’의 역사가 시작됐다. 지난해 역대 최연소·최소경기 1000탈삼진을 달성한 류현진은 가장 고마운 인물 중 한 명으로 김 위원장을 꼽았다.

김인식(이하 김)=류현진이를 처음 봤을 때는 덩치만 크고 촌놈 같은 녀석이 하나 왔네, 했는데.(웃음) 사실 내가 현진이 입단 전에 던지는 걸 우연히 한번 봤는데, 고등학교에 이렇게 좋은 투수가 있었나 싶었어. 나중에 스카우트들이 연고팀 SK가 1차지명에서 안 뽑고 우리한테 차례가 올 수도 있다고 하는 거야. 그럼 당연히 류현진이라고 했지.

류현진(이하 류)=감사합니다, 감독님!

김=스카우트들이 팔꿈치 수술 어쩌고 하기에, 그럼 내가 봤을 때가 수술 전이냐, 후냐 했어. 그 후라고 하더라고. 그렇다면 더 볼 필요도 없다고 했지. 고등학교 때부터 던지는 공이나 폼이 단연 뛰어났다고.

류=감독님이 처음부터 워낙 믿어주셔서 제가 더 열심히 던졌죠. 기회를 주시고 잘 봐주셔서 제가 행운이라고 생각했어요.

김=이 녀석아, 잘 던지니까 기회를 주지 그냥 주냐.(웃음)

류=입단하고 첫 캠프 때 2006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했거든요. 그때 감독님을 보고 대단하다는 마음도 들고, 또 미국까지 이기고 4강까지 올라가는 것 보면서 나중에 저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김=결국 3년 후에 갔잖아.

류=앗! 그러네요.(웃음)

나란히 앉은 사제지간. 김인식 위원장(왼쪽)과 류현진이 스포츠동아의 창간 4주년을 함께 축하했다. 류현진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직접 축하문구를 만들었다.청주|김종원 기자
나란히 앉은 사제지간. 김인식 위원장(왼쪽)과 류현진이 스포츠동아의 창간 4주년을 함께 축하했다. 류현진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직접 축하문구를 만들었다.청주|김종원 기자


두 사람의 나이차는 40년. 국제무대에서 한국 야구의 위상도 그 세월만큼 달라졌다. 김 위원장이 실업야구에서 투수로 이름을 떨치던 시절, 일본프로야구는 감히 쳐다볼 수도 없을 만큼 높은 산이었다. 하지만 류현진이 프로야구 정상의 선발투수로 성장한 요즘, 한국대표팀이 일본 최정예 멤버를 꺾는 장면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특히 김인식 감독이 이끈 WBC 대표팀은 2006년 4강 신화에 이어 2009년 결승 진출까지 이뤄내면서 한국 야구에 대한 세계의 시선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김=내가 선수로 뛸 때는 일본과의 격차가 어마어마했지. 실업야구 때 김영덕 선수(전 OB·삼성·빙그레 감독. 일본 난카이 호크스에서 67경기에 출전해 7승9패에 방어율 3.57 기록)와 함께 한일은행에 있었는데, 그때 그 분이 던지는 공은 신기에 가까웠거든. 그런 양반이 한국에 왔을 정도니 거기서 잘 나가는 선수는 어떨까 싶더라고. 1991년에 처음 한·일슈퍼게임을 했는데, 그쪽이랑 우리랑 50년 정도 차이 난다고 했거든. 우리도 수긍을 했다고. 그러다 4년 후에는 선동열을 위시한 투수들이 굉장히 강해졌어. 슈퍼게임이라는 게 처음으로 한국·일본 프로들끼리의 정식 대결이었는데, 이게 굉장한 도움이 됐다고 봐.

류=맞아요. 이제는 국제경기에서 일본도 그렇고 아무리 엄청난 나라랑 붙어도 솔직히 질 것 같다는 느낌은 안 드는 것 같아요. 다른 선수들 분위기도 그렇고요. 처음에는 걱정도 했는데 계속 이기다 보니 자신감이 생겼어요.

김=1회 WBC 때는 두려움이 분명히 있었지. 언제 우리가 그런 메이저리그 베스트들하고 해보겠느냐 말이야. 그런데 미국전에서 대타로 낸 최희섭이 홈런을 쳤고, 그 경기를 딱 이기고 나니까 뭔가 ‘우리도 되는 구나’ 느낌이 왔지.

류=그래서 2009년 대회 때 다른 생각은 안 하고 간 것 같아요. 우리도 2006년 대표팀처럼 잘 하고 오겠다, 이런 마음이었죠. 또 예선전에서 일본에 한 게임 크게 지긴 했지만 그 다음에 (봉)중근이 형이 잘 던져서 이기고, 또 미국 넘어가서도 이기고 하다 보니까 점점 더 좋은 결과가 난 것 같아요.

김=2008베이징올림픽이 도움이 된 거지.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안 나왔지만 우리 젊은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면서 자신감이 생긴 거야.

류=맞아요. 자신감을 가진 게 큰 힘인 것 같아요.

김=내년 초에는 3회 WBC가 열리잖아. 내가 기술위원장이기도 하니까, 11월 말까지는 모든 준비를 끝내야지. 일본쪽 운동장 빌리기가 쉽지 않더라고. 내년 2월 15일 정도에는 선수들이 다 모여야 할 것 같고.

류=감독님, 한번 더 (감독)하시죠.(웃음)

김=왜, 넌 또 나가게?

류=대표로 뽑히면 당연히 나가야죠! 나라를 위해 열심히 던지겠습니다.

메이저리그를 주름잡던 박찬호(한화)와 김병현(넥센)이 돌아왔고, 이승엽(삼성)과 김태균(한화)이 일본에서 복귀했다. 반대로 이대호(오릭스)는 일본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고, 류현진과 윤석민(26·KIA)은 해외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격세지감. 바야흐로 한국 야구의 ‘국제화시대’다.

김=요즘 선수들을 보면 아무래도 훈련을 체계적으로 하니까 체력도, 기술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진 것 같아. 투수들도 분업화가 잘 되면서 오래 뛰게 됐고. 이젠 다들 전체적으로 수명이 길어졌지.

류=프로에 와보니까 힘든 것도 많더라고요. 아마추어 때 할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어려운 운동을 하니까 처음에는 적응이 안됐어요.

김=그래서 프로 경험 없이 어릴 때 무조건 해외에 나가는 건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언어도 잘 안 되는데 그 외로움을 어떻게 이겨.

류=저도 일단 프로에서 7년 뛰고 해외 진출을 할 수 있는 지금 제도가 딱 적당한 것 같아요. 어느 정도 프로 생활에 적응할 단계고, 7년 정도 하면 투수든 타자든 한창 힘이 붙을 나이니까요.

김=그래. 일단 프로에 나오고 국가대표로 외국 선수들과 경기해보고 하면, 아까 현진이가 말했듯이 두려움이 없어지지. 그동안 캠프 때 마이너리그 팀하고 경기도 해보고 그쪽 지도자들하고 교류도 많이 했는데, 1군에서 바로 뛰는 게 아니면 힘든 부분이 아주 많아. 지금의 현진이야 어디서든 잘 하겠지만.

류=사실 저는 결과가 어떻게 되든 한번 밖으로 나가서 새롭게 도전해 보는 게 소원이에요. 그래서 혹시 실패로 끝나더라도 절대 후회는 없을 것 같아요.

김인식 전 감독, 한화투수 류현진 인터뷰.청주|김종원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김인식 전 감독, 한화투수 류현진 인터뷰.
청주|김종원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김 위원장은 쌍방울·OB(두산)·한화 감독을 거치면서 프로야구 발전에 힘을 보탰다. 그리고 그 시절 류현진은 아버지와 형의 손을 잡고 야구장 문턱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프로야구 키드’로 성장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갔던 두 사람의 훈훈한 대화는 스승의 애정 어린 덕담과 제자의 살가운 애교로 마무리됐다.

김=아까 빼먹은 얘기가 있어. 현진이는 신인 때부터 심지가 깊은 게, 에이스 자격이 있었어. 마운드에서의 표정이 신인 같지 않더라고.

류=감독님께서 경기 중에 화가 나도 표정으로 나타내면 안 된다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김=현진이는 팀이 한창 약해질 때 들어와서 투수로서 손해 보는 부분들이 분명 있었거든. 2007년에 SK에 들어온 김광현과는 반대였지. 그래서 표정 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얘기한 거야.

류=아닙니다! 저도 좋은 팀을 만나 운이 좋았습니다!

김=
제일 중요한 건, 절대 다치지 말아야 해. 본인도 손해고 팀도 손해고. 그래서 특히 에이스들은 한 시즌을 잘 운영해 나가야 해.

류=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감독님!

정리|배영은 기자 yeb@donga.com 트위터 @goodgo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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