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란, 세계신→은퇴→교수 꿈…‘올 3개의 바벨 들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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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일 07시 00분


장미란은 2010년 세계선수권 5연패에 실패했다. 그리고 실망 대신 “더 독하게 운동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이제 그녀는 2012런던올림픽에서 다시 ‘새로운 기록’을 들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2012년에는 또다시 새로운 역사가 쓰일지 모른다.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트위터 @k1isoncut
장미란은 2010년 세계선수권 5연패에 실패했다. 그리고 실망 대신 “더 독하게 운동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이제 그녀는 2012런던올림픽에서 다시 ‘새로운 기록’을 들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2012년에는 또다시 새로운 역사가 쓰일지 모른다.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트위터 @k1isoncut
■ 장미란, 그녀를 만나다

이젠 우리 나이로 서른
솔직히 조금씩 힘에 부치기도
지난해엔 실망…처음 독기품게 돼
런던올림픽 목표는 새로운 기록
박수받고 은퇴하고 싶어요

학창시절 갑자기 몸무게 늘어
그땐 몸이 콤플렉스였는데…
저 보고 힘난다는 말에 저도 힘나요


올림픽의 해가 밝았다. 7월27일 영국 런던에서는 지구촌 스포츠의 대제전이 막을 올린다. 태릉선수촌 역시 분주한 1년이 시작됐다. 태릉의 대표주자는 단연 장미란(29·고양시청)이다. 그녀는 2004아테네올림픽은메달 이후 여자역도 최중량급(+75kg)에서 무려 8년간 정상권을 유지하고 있다.

2005∼2009년 세계선수권을 4연패(2005·2006·2007·2009년)했고, 2008베이징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따는 등 5년간은 챔피언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부상으로 세계선수권에 불참하는 등, 2011년에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경기도 용인에서 재활에 매진하고 있는 장미란을 만났다. ‘로즈란’은 런던에서 활짝 꽃을 피우기 위해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 2011년이 그리 좋은 한 해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1∼2년 전과는 달랐죠. 세계선수권을 못 나갔다는 점이 제 자신에게 실망스러웠어요. 관리를 잘 못했다는 의미니까요. 아파서 훈련자체가 안됐으니….”
- 어디가 가장 안 좋았나요?

“골반이 아니라, 허벅지예요. 그곳 말고도 전반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어요. 내 몸이 신호를 주는 것이니까, 몸의 얘기도 좀 들어줘야겠다 싶었어요.”
- 2010년에 무리한 것이 영향을 줬나요?

“그건 아니에요. 2010세계선수권을 준비하면서는 목표의식이 뚜렷했어요. 세계선수권 5연패를 달성한 여자 선수는 한 명도 없었거든요. 대회 직전에 허리를 다쳤지만, 불참한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어요. 결국 합계에서 3등을 했지만, 최선을 다했어요. 이제 세계선수권 연속 우승이 끝났으니 기록과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운동할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 그런데요?

“제가 좀 안이했던 것 같아요. ‘이만큼 하면 되지 않을까’ 경각심이 부족했던 거죠.”
- 장미란 선수도 그럴 때가 있나요?

“그럼요. 저는 원래 충분히 쉬면서 운동을 하는 스타일이에요. ‘독기’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했어요. 짧은 시간 훈련해도 집중력 있게 하는 편이죠. 다른 선수들도 많이 부러워하는 점이었는데…. 오히려 그 부분이 독이 된 것 같아요. 제 자신을 너무 믿었어요.”
- 그럼 이제는 좀 독해진 것인가요?

“만약 제가 올해에 작년처럼 안 좋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올림픽도 못 나갈 텐데…. 제가 교만했기 때문에 저를 한풀 꺾이게 하신 것 같아요. 올림픽 전에 ‘독하게’ 운동하라고 이끌어 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전국체전(2011년10월) 끝나고 원래 여행을 가려고 했는데, 그것도 취소하고 바로 운동을 시작했어요.”(장미란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종교를 통해 자기 삶을 돌아보고, 역기보다 더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다.)

역도선수 장미란.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트위터 @k1isonecut
역도선수 장미란.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트위터 @k1isonecut
- 이제 장미란 선수도 우리 나이로 서른입니다.

“아‥. 그러게요. 저는 괜찮은데 주변에서 계속 놀려요.(웃음) 2009년부터 조금씩 ‘아, 나도 나이가 드는구나’ 싶더라고요. 솔직히 조금씩 힘에 부치는 부분이 있지요. 그래도 순리대로….”
- 최근 컨디션은 어떤가요?

“전국체전 끝나고 체중이 많이 줄어 든 상태였어요. 원래 입던 바지 허벅지 부분이 헐렁할 정도로요. 제가 116∼117kg일 때 제일 몸이 좋거든요. 그런데 체전직후에는 112∼113kg까지 빠졌더라고요. 다행히 재활훈련과 보강운동을 하면서 다시 체중을 회복했어요. 조만간 태릉에 들어가면 기구를 다룰 수 있도록 몸을 만들고 있어요.”
- 올해, 봄·여름의 장미란과 가을·겨울의 장미란은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봄은 몸을 차곡차곡 모아두는 단계? 새싹이 돋아나듯 조금씩 조금씩이요. 여름에는 올림픽에서 무성하게 잎과 꽃을 피워야지요.”
- 꽃을 피운다는 것은 금메달인가요?

“금메달 따기 싫은 선수가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에요. 올림픽이 지구촌의 축제라는데, 막상 출전하는 선수들은 즐기질 못해요. 2010세계선수권처럼 메달색깔 상관없이 후회하지 않고, 기분 좋게 경기하고 돌아오고 싶어요. 물론 정한 목표는 있지만….”
- 그게 뭔가요?

“새로운 기록이요.”
- 새로운 기록과 세계기록은 같은 말인가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생각만 해도 설레는 기록이에요.”

<장미란은 한때 여자역도 최중량급(+75kg) 인상(140kg·베이징올림픽)·용상(187kg·2009고양세계선수권)·합계(326kg·베이징올림픽) 세계기록을 모두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용상만 장미란의 몫이다. 인상은 타티아나 카시리나(러시아)의 148kg(2011년), 합계는 주룰루(중국)의 328kg(2011년)이다. 역도에서는 통상 합계 1위를 챔피언으로 인정한다.>
- 그 목표를 달성하면 올 가을·겨울이 지금과 달라질 수도 있나요?

“이미 지난 연말 저 자신과 약속했어요. 언제든 ‘새로운 기록’을 세우면, (선수를) 그만두기로요. ‘몸이 안 좋아서, 이제 선수를 도저히 할 수 없어서’ 은퇴하는 것은 싫어요. 꼭 금메달이 아니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만큼 했다’ 싶을 때면 될 것 같아요.”
- 만약 런던에서 목표한 기록을 세워도, 2014인천아시안게임 출전을 권유하는 분들이 있을 텐데요.

“어떤 결정을 내려도 아쉬움은 남는 법입니다. 주변에서 어떻게 말씀하셔도, 자신과의 약속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시점은 아직 모르는 거니까….”
- 2월에 발족하는 장미란 재단도 선수생활 이후 진로와 관련이 있나요?

“사실 재단은 정말 먼 미래의 일로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이럴 때 시작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어요. 올림픽 전이라서, ‘운동에 집중 안 한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걱정도 했지만, 아버지(장호철 씨)께서 기반을 잘 닦아주셨지요. 재단을 통해 물질적인 후원뿐만 아니라 비인기 종목 학생선수들의 정서적인 부분들까지도 도움을 주고 싶어요.”

<장미란은 2월 올림픽 공식후원사인 비자(VISA)카드와 함께 ‘장미란재단’을 공식발족하고, 역도를 포함한 비인기 종목을 지원할 예정이다.>
- 대학원(성신여대) 졸업을 앞두고 있고, 박사과정(용인대)도 준비 중이잖아요.

“지금 ‘밸런스 요인이 인상동작 수행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석사논문을 수정하고 있어요. 논문을 쓰면서 저도 많이 배웠어요. 제가 인상에 보완점이 많으니까….”
- 교수에 대한 꿈도 있는 것인가요?

“많은 선수들이 꿈꾸는 것이기는 한데, 전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서요. 30대에는 학업 뿐만 아니라, 여러 공부를 많이 하고 싶어요. 얼마 전에 김성근(고양 원더스) 감독님께서도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하긴 10대 때를 생각해보면, 지금의 저란 존재 자체가 기적이니까….”
- 기적이요?

“중학교 3학년 때까지만 해도 전 똑똑하지도 않고, 공부도 신통치 않고, 뚱뚱하고, 못 생긴 아이일 뿐이었어요. 특별히 뭐하나 잘하는 게 없었지요. 그러던 제가 고등학교 진학시점에 역도를 만나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이렇게 과분한 것들을 누리니….”
- 운동도 전혀 못했나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몸이 불었는데, 그렇게 체구가 커도 달리기는 1∼2등을 했어요. 하지만 운동을 좋아하지는 않았지요. 속으로만 ‘내가 막상 뛰면, 너희들 다 이길 수 있어’라고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올림픽이 뭔지도 몰랐다니까요. 그 땐 몸이 콤플렉스였죠.”
- 콤플렉스요?

“남학생들이 있으면 길도 잘 못다닐 정도였어요. 물론 역도를 시작한 다음에는 그런 부분 신경 안 쓰고 살게 됐지만요. 가끔 싸이월드에서 쪽지를 받을 때가 있어요. ‘저도 살 많이 찌고 못 하는 게 많아 자신이 없었는데, 언니를 보면서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그런데 그런 쪽지는 신기하게도 꼭 제가 힘들고 지칠 때 오더라고요. 저를 보고 힘을 낸다는데, 저 역시 힘을 얻지요. 그 쪽지는 분명 천사가 보내준 것 같아요.”

<이 대목에서 눈시울을 붉히던 장미란은 곱게 눈물을 닦았다.>
- 이런 말 들어본 적 있나요? ‘하늘에만 떠 있다고 별이 아니다. 누군가의 길을 밝혀주고, 꿈이 돼 줘야 진짜 별이다.’

“네 있어요. 그런데 저는 ‘별’처럼 화려한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제가 별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별은 반짝이지만 언젠가는 떨어지잖아요. 저는 그냥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싶어요. 태릉에서 밤하늘을 볼 때가 있는데, 다른 선수들 말이 ‘막상 제일 빛나는 것은 별이 아니라 인공위성’이라고 하던데….”
- 시와 꽃을 좋아하잖아요. 문인수 시인의 ‘장미란’이라는 시도 알고 있죠?

“네. 처음에는 저를 시로 표현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만 했는데, 이제는 한 구절 한 구절 가슴이 벅차고, 시처럼 뿌리를 잘 내려서 제대로 피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2007년 제7회 미당문학상을 받은 시인 문인수는 2009년 ‘창작과 비평’ 여름호를 통해 시 ‘장미란’을 발표했다. 그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장미란! 어마어마하게 웅크린 아름다운 뿌리가, 움트는 몸이 만발, 밀어올린 직후가 붉다.’>

“장미를 바라보는 사람과 장미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된다고 봐요. 지금은 꽃망울을 터트리지 않고 있지만, 물과 햇빛을 준다면 언젠가 예쁘게 피어날 것이라는 믿음이요. 물론 그 기다림의 과정에서는 인내가 필요하겠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것 같아요. 사람관계도 마찬가지잖아요. 최근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 언제인가요?

“작년 전국체전 때요. 사실 기록이 좋지 않았는데도, 가는 곳마다 박수를 쳐주시고 응원을 해주시더라고요. ‘몸은 좀 괜찮은가요?’라고도 많이 물어봐주시고…. 내가 최고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더라도, 나를 기다려주시고 믿어주시는구나 싶었어요. 전국체전 준비할 때 너무 힘들어서 사실 좀 의기소침하기도 했는데, 그랬던 제가 부끄럽더라고요. 덕분에 큰 힘을 얻었어요.”

2012년에도 장미란은 태릉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고된 하루를 달랠 것이다. 수백 광년을 날아와 그녀의 망막에 맺히는 별빛…. 어쩌면 오래전에 사멸했을지 모르는 그 별이, 현재의 그녀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다. 이렇듯 누군가의 과거는 또 다른 누군가의 현재에 악수를 청한다. 2011년 믿음으로 ‘로즈란’을 바라봐준 사람들이, 2012년 첫 발을 내딛는 그녀에게 큰 힘을 준 것처럼…. 그래서 누군가의 미래를 밝힐 우리의 현재는, 임진년(壬辰年)의 시작은 소중하다.

■ Who is Jang Mi Ran?

▲ 생년월일= 1983년 10월9일
▲ 신장/체중= 170cm/117kg
▲ 소속= 고양시청
▲ 가족관계= 아버지 장호철(60) 씨와 어머니 이현자(55) 씨 사이의 2녀1남 중 첫째. 여동생 장미령(27·고양시청), 남동생 장유성(24·골프선수)
▲ 별명= 로즈란
▲ 주요입상경력=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2005·2006·2007·2009세계선수권 금메달, 2010세계선수권 동메달, 2004아테네올림픽 은메달, 2008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용인|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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