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같은 강속구의 상징 ‘롯데 11번’ 수많은 사직팬 앞에서 영원한 안식 아들 최기호씨 감사와 존경의 시구
# 그가 사직구장 마운드에 마지막으로 선 것은 2009년 7월 4일, 구단이 마련한 ‘챔피언스데이’를 앞둔 기념시구 때였다. 현역 때와 달리 배가 나오고 몸은 둔해졌지만, 역동적인 투구폼만은 그대로였다.
# 그로부터 2년 2개월여가 흐른 2011년 9월 30일. 전광판 동영상 속에서 여전히 빛나는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이제 그는 없었다. 대신 그의 생전 모습을 담은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을 뿐. 비록 주인공은 없었지만, 그를 아끼고 사랑했던 부산 팬들의 마음은 2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더 애절했다.
‘불멸의 에이스’ 고 최동원의 추모행사 및 영구결번식이 30일 사직구장에서 열렸다.
모친 김정자 여사, 부인 신현주 씨, 아들 최기호 씨 등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인의 전설’로 불리는 고인의 추모 행사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양팀 선수단이 도열하고 장내 아나운서가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묵념을 제안하자, 사직구장은 일순간 침묵에 잠기며 한국 야구를 빛낸, 롯데 자이언츠를 상징하는 거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최.동.원.
그는 한국야구가 낳은 불세출의 스타이자 롯데 자이언츠의 자긍심이었다. 1984년, 삼성과 맞붙은 한국시리즈. 그는 홀로 4승을 책임지며 롯데에 창단 후 첫 우승의 영광을 안겼다. 1차전 완봉승으로 4-0 승리를 이끈 뒤 3차전에서 완투승, 6차전에서 구원승을 거뒀고 마지막 7차전에서는 또다시 완투승을 기록했다. 5차전에서 완투패를 당하기도 했던 최동원은 이 해 한국시리즈 7경기 중 5경기에 등판, 3완투승(1완봉승 포함) 1구원승 1완투패 등 4승1패를 기록했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그를 실전에서 본다는 건 동시대 사람들에겐 큰 행운이었다. 다이내믹한 투구폼과 불같은 강속구, 폭포수처럼 떨어지던 커브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고 최동원은 한국프로야구를 상징하는 아이콘과 같았다.
비록 1988년 롯데를 떠난 뒤 다시 롯데에 몸 담지 못했지만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었던 고인의 생전 모습은 부산팬들 아니 모든 야구팬들의 가슴 속에 아로새겨져 있다. 사직구장 오른쪽 외야에 내걸린 그의 유니폼이 새겨진 깃발과 왼쪽 펜스에 걸린 그의 등번호 ‘11’을 새긴 영구결번판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마지막 순서로 고인의 아들 최기호 씨가 시구를 위해 마운드에 오르자, 스탠드를 가득 채운 팬들은 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 박수에는 고인에 대한 영원한 사랑과 존경이 담겨 있었고, 아들 최 씨는 고개를 깊이 숙여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하늘에 있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최동원, 그는 비록 떠났지만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