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전에서는 져도 용납이 되지만 라이벌전에서 진다면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스페인 프로축구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는 20세기 초 정치적인 문제로 앙숙이 됐다. ‘엘 클라시코’로 불리는 두 팀의 경기는 사진처럼 강력한 태클이 난무해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동아일보DB
‘라이벌.’ 스포츠 마니아라면 이 단어만 들어도 흥분할지 모른다. 자존심이 걸린 라이벌전은 무조건 이기는 것이 목표다. 각 나라, 리그마다 대표적인 라이벌이 있다. 라이벌이 된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연고지가 같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라이벌이 많지만 종교, 정치 등의 이유로 라이벌이 된 경우도 있다.
○ 연고지가 같아서
잉글랜드 프로축구 아스널과 토트넘은 같은 연고지 때문에 라이벌이 됐다. 하지만 처음부터 앙숙은 아니었다. 1913년 런던 남동부의 울위치에 있던 아스널이 북런던으로 오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아스널과 토트넘의 연고지는 불과 5km 거리. 팬들의 입장에서는 보기 싫은 팀과 한 지붕 아래에서 살게 된 셈이다. 당시 토트넘은 우승을 밥 먹듯 하는 최고의 팀이었고 아스널은 1부와 2부 리그를 오가는 그저 그런 팀이었다. 아스널이 연고지 이전 뒤 강팀이 되자 두 팀은 서로 지고는 못 사는 관계가 됐다.
국내 프로야구 두산과 LG도 마찬가지다. 서울을 연고지로 한 두 팀은 홈경기장인 잠실야구장을 함께 쓰면서 라이벌이 됐다. 미국프로농구의 LA 레이커스와 LA 클리퍼스(로스앤젤레스), 잉글랜드 프로축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맨체스터) 등도 같은 연고지로 라이벌이 된 경우다.
○ 정치적 이유 때문에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한 바르셀로나(스페인)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와 숙적이 됐다. 스페인 북동쪽 카탈루냐가 연고지인 바르셀로나는 19세기 말 스페인 전역을 휩쓴 사회주의 및 무정부 운동의 중심이었다. 당시 프란시스코 프랑코 군사정권은 1939년 내전을 승리로 이끈 뒤 카탈루냐를 무차별 탄압했다. 갈등이 깊어지면서 카탈루냐 주민 100만여 명이 학살당했다. 카탈루냐 주민의 저항은 축구로 표출됐다. 바르셀로나는 그라운드에서 군사정권의 기반인 마드리드가 연고지인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분노를 표출했다. 프랑코 압제가 끝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두 팀 간 원한의 잔재는 여전히 남아 있다.
○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를 함께 연고지로 둔 프로축구 셀틱과 레인저스는 다른 종교 때문에 앙숙이 됐다. 셀틱은 가톨릭 신자들이 만든 팀이고 레인저스는 신교도들이 창단했다. 글래스고의 젊은이들에게 셀틱 또는 레인저스 중 어떤 팀의 팬이 될지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종교를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정도로 중요했다. 1888년 첫 대결부터 종교적 대립이 표면화된 것은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 뒤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서 이주해온 수천 명의 신교도 근로자가 글래스고에 정착하면서부터 글래스고 더비는 격해지기 시작했다. 최근 10년간 양 팀 팬들의 충돌로 7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을 당했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경찰들은 비상상황이 된다.
○ 대학 순위 경쟁 때문에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와 미시간대의 미식축구 라이벌전은 2000년 ESPN에서 뽑은 미국 최고의 라이벌전이다. 대학 랭킹에서 뒤지기 싫어하는 두 대학 출신끼리는 서로 사귀지도, 말도 섞지 않을 정도로 신경전이 대단하다. 방문 경기 응원 때는 차량 파손 사건이 많이 벌어져 차 번호판을 가리라고 대학 측에서 경고를 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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