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시절 ‘대마신’으로 불리며 일본과 미국 프로야구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던 사사키 가즈히로(왼쪽)가 LG
투수 인스트럭터로 일본 오키나와 현 이시카와 캠프에서 이동현의 불펜 투구를 지켜보고 있다. LG트윈스 제공
‘대마신(大魔神)’이라 불린 사나이가 있었다. 시속 150km가 넘는 빠른 공에 두 종류의 포크볼로 무장한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한 특급 소방수였다. 1990년대 후반 주니치의 수호신으로 군림했던 선동열 전 삼성 감독이 한 번도 센트럴리그 세이브 1위에 오르지 못한 건 그 때문이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2000년 시애틀 마무리 투수로 37세이브를 거두며 아메리칸리그 신인왕을 따냈다. 이듬해엔 45세이브에 평균자책 0.89라는 경이적인 성적도 거뒀다. 현재 닛칸스포츠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사사키 가즈히로(43) 얘기다.
사사키가 일본 오키나와에서 전지훈련 중인 LG 투수들을 가르치고 있다. 투수력 강화에 사활을 건 LG가 그를 인스트럭터로 특별 초빙했다. LG 투수들을 조련하고 있는 사사키 코치를 지난달 이시카와 캠프에서 만났다.
○ 사사키와 선동열
사사키는 선수 시절 소문난 애주가였다. ‘국보 투수’ 선동열 전 감독 역시 술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다. 선 전 감독 얘기를 꺼내자 그는 “아, 선 짱(ちゃん·친근한 사이에서 붙이는 호칭)”이라며 표정이 밝아졌다.
사사키 코치는 “선 짱은 얼굴에 좋은 사람이라고 적혀 있다. ‘호빵맨’을 닮지 않았나. 사석에선 친했지만 경기장에서는 지고 싶지 않은 라이벌이었다. 선 짱을 이기기 위해 더 노력했다”고 했다.
오키나와에서 만난 선 전 감독 역시 사사키 코치와의 인연을 털어놓았다. 그는 “선수 시절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자주 가던 술집이 있었다. 그런데 그 집에 갈 때마다 사사키가 한쪽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있더라. 둘 다 술 좋아하면서 야구 참 잘했다. 한 번은 단둘이 대작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 사사키와 박찬호, 임창용
사사키 코치는 메이저리그 시절 박찬호(오릭스)와도 좋은 인연을 맺었다. 그는 “박찬호의 장인과도 잘 안다. 가끔 식사도 함께한다. 박찬호가 일본에 올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김병현(라쿠텐)도 마찬가지다. 둘은 자기만의 스타일이 확고한 만큼 일본에서도 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사키 코치는 “프로에 입단할 정도의 투수라면 누구든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내겐 포크볼이 있었듯 누구나 자신만의 특징을 살려야 한다. LG 투수들에게도 단점을 고치기보다 장점을 살릴 것을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사사키 코치는 야쿠르트의 수호신으로 자리 잡은 임창용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투수라면 누구나 자신 있는 승부구를 갖고 있어야 한다. 임창용은 빠른 공과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의 공을 모두 자신 있게 던진다. 맞더라도 내 공을 던진다는 자신감이 돋보인다”고 했다.
○ 사사키와 LG 투수
사사키 코치는 2월 6일 LG 캠프에 합류한 뒤 두 번 크게 놀랐다. 첫 번째는 이렇게 좋은 투수가 많은 팀이 지난해 팀 평균자책이 5점을 넘었다는 데서, 두 번째는 불펜에서와 달리 실전 투구에서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에서 놀랐다고 했다.
그는 고졸 신인 임찬규 신정락 박현준 등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기술적으로 조금만 더 가다듬으면 일본에서도 충분히 통할 자질을 갖췄다”는 것이다. 하지만 LG 투수들의 변화구 구사 능력에는 낮은 점수를 줬다.
사사키 코치는 “직구를 던질 때와 변화구를 던질 때의 투구 폼이 다르다. 대부분 투수들이 변화구를 약하게 던지는 게 눈으로 보인다. 목표를 향해 힘껏 던질 것을 주문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낮게 던지려고만 신경 쓰면서 높낮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투수를 찾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대화의 말미는 다시 술 얘기였다. 사사키 코치는 “야구를 하는 시간은 짧고 안 하는 시간은 길다. 그 시간을 즐겨야 하지 않겠나. 술을 마시면 그걸 만회하기 위해 더 좋은 성적을 올려야 한다. 최고의 성과를 낸 뒤 마시는 술은 더 맛있다”고 했다. 그는 천생 애주가 야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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