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 또 한 남자가 떠난다…SK 김재현의 소중한 나날들

동아일보 입력 2010-09-11 03:00수정 2010-09-11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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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타석 한 타석 마지막이라 생각”
곧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10일 한화전을 치르면서 이제 정확히 13경기가 남았다. 한국시리즈 7경기를 포함해도 20경기다. 한국 프로스포츠는 물론이고 외국에서도 좀처럼 사례를 찾기 힘든 ‘예고 은퇴’를 선언한 SK ‘캡틴’ 김재현(35) 얘기다.

김재현은 지난해 KIA와의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올 시즌 후 은퇴하겠고 깜짝 발표했다. 체력이 달려서도, 기량이 떨어져서도 아니다. 팬들은 물론 구단도 그의 은퇴를 아쉬워한다. 여러 차례 은퇴 번복을 설득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다.

남들은 은퇴하라고 해도 버티는 마당에 왜 굳이 은퇴를 하려는 것일까. 그는 “예전부터 힘이 남아 있을 때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해 왔다. 미루다 보면 언제 떠나야 할지 알 수 없게 되고 결국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매 타석 이게 마지막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들어선다. 이왕이면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싶다”고 했다.

○ 사랑하기에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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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후 유니폼을 벗겠다”며 외국에서도 사례를 찾기 힘든 ‘예고 은퇴’를 선언한 SK 김재현의 야구 인생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신인으로 1994년 LG의 우승을 이끌었고 2007, 2008년에는 SK에서 챔피언에 오르며 영광을 누렸다. 반면 2002년 고관절 수술과 이듬해 팀 이적 등 힘들었던 순간도 적지 않았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김재현은 입만 열면 “내가 이렇게 좋은 팀에서 이렇게 좋은 선수들과 함께 야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SK는 8개 구단 중 가장 훈련을 많이 하는 팀이다.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다. 하지만 모든 선수가 기꺼이 고통을 감내한다. 우승이라는 지상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다. 김재현은 “지난달 말에도 2위 삼성에 2경기 차로 쫓기는 등 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우리 팀 선수들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지 안다. 그렇게 고생했는데 결코 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 있다. 이런 후배들이 어떻게 자랑스럽지 않겠나”라고 했다.

○ 선두 SK의 원동력은 희생

김재현은 자존심이 강한 선수다. LG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그는 2002년 고관절 부상을 당한 뒤 색안경을 끼고 자신을 바라보는 팀에서 큰 상처를 받았다. 자유계약선수(FA)가 된 2003시즌 후 그는 미련 없이 SK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2007년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SK에서 그는 ‘희생’을 배웠다. 벤치를 지키는 날이 많아져도 묵묵히 최선을 다했다. 그뿐 아니라 박재홍, 이호준 등 왕년의 스타 선수들이 모두 그랬다. 김재현은 “왜 자존심이 상하지 않겠나. 하지만 자신을 죽이면 팀이 산다는 진리를 배웠다. 우리 팀은 누구 하나 빠진다고 약해지는 팀이 아니다. 모든 선수가 자신보다는 팀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얼마 전 프로 통산 15번째로 200홈런을 달성한 그는 “선수 생활 오래 하다 보니 나오는 기록”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도 가장 인상적인 홈런을 꼽아달라고 했더니 5월 16일 두산전에서 켈빈 히메네스를 상대로 친 역전 3점 홈런이라고 했다. 그 홈런으로 팀이 상승 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는 게 이유였다.

○ 남자의 눈물, 이번에는

데뷔 후 17년간 그는 많은 기쁨과 좌절을 맛봤다. 신인이던 1994년 LG의 우승을 이끌었고 2007년과 2008년에는 SK에서 챔피언에 올랐다. 2007년 한국시리즈 MVP도 그의 차지였다. 반면 2002년 불의의 고관절 수술과 이듬해 팀 이적, 그리고 2007년 반쪽 선수 전락 등 우울한 순간도 적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는 “만약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면 울었을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SK는 투수 김광현, 포수 박경완 등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 속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KIA와의 한국시리즈에서도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 끝에 준우승에 머물렀다. 김재현은 “지난해 준우승에 그치면서 올해는 반드시 우승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고 했다. 만약 올해 우승한다면 어떨까. 그는 “어느 때보다 치열하고 절실했던 만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지 않을까”라고 했다. 올가을 팬들은 명예롭게 떠나는 남자의 뜨거운 눈물을 볼 수 있을까.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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