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 수원 선수들이 속바지를 입은 이유는?

스포츠동아 입력 2010-09-10 12:52수정 2010-09-10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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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경기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성남 일화-수원 삼성의 K리그 경기 전 비가 오기 시작하자 관계자들이 잔디를 메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스포츠동아 DB
"속옷 잘 챙겨라."

지난 1일 성남 일화와의 프로축구 K리그 일전을 앞둔 수원 삼성 선수들은 윤성효 감독으로부터 '유니폼 안에 입을 속바지 등을 잘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일명 태클복으로 불리는 속바지는 유니폼 안에 입는 것으로 몸에 착 달라붙는 등 불편해 대부분의 선수들이 잘 착용하지 않는 편.

그런데 이날만은 속바지를 반드시 입으라고 윤 감독이 지시한 이유는 경기 장소가 탄천 종합운동장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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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천 운동장은 이번 여름 폭염과 폭우의 타격을 받아 논두렁처럼 변했다. 잔디가 대부분 시들어 맨땅이 드러난 데다 울퉁불퉁해 경기하기조차 힘든 상황.

수원 선수들은 격투기에 나서는 선수들처럼 속바지는 물론, 발목에 테이핑도 두껍게 하는 등 중무장을 하고 경기에 출전해야 했다.

운동장이 이렇게 된 이유로는 폭염과 폭우 외에 경기장에 지붕을 씌우는 리모델링 공사 후 통풍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이 꼽힌다.

또한 성남시로부터 운동장을 위탁받아 운영중인 성남시시설관리공단의 관리 부실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그런데 이런 일이 1980년대 동대문운동장에서 일어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잇 따라 유치하고,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리그를 출범시키며 국민의 관심을 스포츠로 집중시키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노력을 경주하던 때인 1980년대.

서울에 번듯한 잔디 구장이라고는 동대문운동장 밖에 없었고, 각종 주요 경기를 치르다보면 잔디가 훼손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스포츠에 관심을 두는 정부 고위층 인사들의 경기장 방문이 잦다보니 좋은 상태의 잔디 모습 등을 보여주기 위해 관리본부에서는 그야말로 '잔디 보호'에 총력을 기울였다.

잔디 상태가 나쁠 때면 많은 인원이 동원돼 조명등을 켜놓고 밤을 새워 일일이 잔디를 손으로 심어 복원시킨 일도 많았고….

물론 엄혹한 시절에 고위층의 눈이 무서워 최선을 다한 면도 있지만, 요즘에는 그때의 고위층보다 더 무서워해야 할 팬들이 지켜보고 있다.

1일 성남-수원의 경기를 지켜본 축구팬들은 "요즘 조기 축구회도 이런 경기장에서는 볼을 안찬다. 논두렁에서 축구를 해도 이 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성남시시설관리공단에서는 부랴부랴 긴급 예산 5000여만 원을 투입해 탄천 종합운동장 잔디 보수 식재 공사를 벌이고 있다.

15일 아시아 전역에 중계되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성남-수원의 8강전이 다시 탄천 운동장에서 열린다.

이날은 파란 잔디 위에서 선수들이 속바지를 입지 않고 뛰게 됐으면 좋으련만….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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