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전설의 팀’ 코리아를 떠올리며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21일 10시 32분


코멘트
세계축구 무대에 딱 한번 등장했다가 사라진 전설의 팀이 있다. 남북 단일팀 '코리아'가 바로 그 팀이다.

1991년 6월 포르투갈에서 열린 제 6회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남, 북한 선수 18명으로 구성된 코리아 팀은 강호 아르헨티나를 누르고 8강에 올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코리아 팀은 1990년 남북이 통일축구대회를 통해 교류를 재개하면서 탄생했다. 남북 화해의 무드 속에 만들어진 코리아 팀은 처음에는 감독과 선수 구성 방법, 훈련 일정 등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고, 불과 한 달 동안 발을 맞춰서 과연 세계대회에서 망신을 당하지나 않을지 염려하게 했다.

코칭스태프는 안세욱 북한청소년축구대표팀 감독이 총 지휘를 맡고, 남대식 한국청소년대표팀 감독은 보조 감독을 맡았다. 선수단은 남측 선수 10명, 북측 선수 8명으로 구성됐다. 코리아 팀은 대회 20여일 전 결전 장소인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입성, 합숙훈련을 했다.

세계청소년축구대회는 20세 이하 선수들이 출전하는 샛별들의 경연장.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최하며 '작은 월드컵'으로 불리는 수준 높은 대회다. 각국 대표팀은 대부분의 선수들이 프로축구리그에서 뛰는 예비 스타들로 구성됐다.

코리아 팀은 유럽 프로축구에서 뛰는 선수들이 즐비한 남미의 강호 아르헨티나와 개최국 포르투갈, 아일랜드와 같은 조에 속했다. 따라서 어느 축구 전문가도 조직력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코리아 팀이 조별리그를 통과해 8강에 오른다는 것은 예상하지 않았다.

결전의 날인 1991년 6월 16일 리스본의 벤피카 스타디움. 그런데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고 나자 보는 사람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광경이 펼쳐 쳤다.

GK 최익형을 비롯해 이태홍 강철 이임생 등 남측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수비진은 아르헨티나 공격수들의 발을 꽁꽁 묶었고, 조인철, 최철, 정강성 등 북측 선수들이 맡은 공격진은 빠른 속공으로 아르헨티나 문전을 넘나들었다.

경기 종료 2분 전, 남측 미드필더 조진호가 얻어낸 프리킥을 북측 공격수인 최영선이 강력하게 찼고, 이 볼이 아르헨티나 수비수 맞고 흐르는 순간 달려들던 북측 공격수 조인철이 25m 오른발 중거리슛으로 결승골을 터뜨렸다. 1-0 코리아 팀의 승리.

코리아 팀은 아일랜드와의 2차전에서도 최철이 동점골을 뽑아내 1-1 무승부를 이뤘고, 개최국 포르투갈에는 아쉽게 0-1로 졌지만 1승1무1패로 8강에 올랐다. 브라질과의 8강전에서는 비록 1-5로 패했지만 최철이 멋진 다이빙 헤딩골을 넣어 '브라질의 5골과 맞먹는 멋진 골'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16강 진출을 위해 중반 열전을 벌이고 있는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1991년의 코리아 팀을 떠올리면서 이런 상상을 해본다. '만약 한국의 박지성 박주영과 북한의 정대세 홍영조가 공격진을 이루고, 한국의 김정우 기성용과 북한의 지윤남 안영학이 중원을 지키며, 한국의 이영표 이정수 조용형 차두리와 북한의 이광천 이준일 박철진이 번갈아 수비진에 포진했으면 어떤 팀이 됐을까' 하는….

어뢰를 발사해 인명을 해치고 이에 동조하는 '전쟁광'들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축구에 관한한 남북이 힘을 합치면 '1+1=2가 아닌, 1+1=무한대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19년 전 코리아 팀은 보여줬다.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