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라이프] 최순호 “이탈리아전 골 감격 큰아들 예명이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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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6일 15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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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FC 최순호 감독, 스포츠동아DB.
강원FC 최순호 감독, 스포츠동아DB.
강원FC 사령탑에 부임한 뒤 최순호 감독은 강릉 시민이 다 됐다.

해안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분위기 좋은 커피숍을 찾아다니는가하면 고구마며 감자며 삼겹살을 해수욕장에서 구워먹기도 한다. “지방 생활이 적적하지 않냐”고 묻자 “내가 원하는 삶이 바로 이런 거다. 공기 좋지 조용하지 사람들 친절하고 너무 좋다”는 답에서 1980~90년대 한국축구를 이끌었던 최고 공격수다운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월드컵 & 라이프’ 인터뷰를 위해서는 20여 년 전 그라운드를 질주하던 ‘스타플레이어’ 최순호가 필요했다. “과거로 한 번 돌아가 주세요.” “그럼 어디보자. 82스페인월드컵부터 말해야겠는데?”(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코멘트 부분은 최 감독의 어투를 최대한 그대로 옮겼다)

●관중석에서 느낀 신선한 충격

최순호 감독의 첫 월드컵은 32년 만에 진출권을 따낸 86멕시코가 아닌 82스페인 대회였다. 81년 4월, 한국은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파레이라 감독이 이끄는 쿠웨이트에 패하며 아쉽게 탈락했다.

그러나 최 감독은 소속 팀 전지훈련 차 스페인에서 4강전과 결승전을 관중석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

“정말 굉장했어. 나도 축구하는 사람이지만 스탠드에서 경기를 보는데 주변사람들의 열기 뭐 이런 게 엄청나. 경기와도 정말 너무 잘 어울려. 그 때 스코어가 아마 2-2인가 3-3인가(실제 3-3)까지 가서 승부차기로 프랑스가 졌는데 프랑스가 골 넣으면 관중석 절반이 프랑스 국기로 출렁이고 독일이 넣으면 반대로 독일 국기로 출렁이고. 이런 데서 축구하면 정말 재밌겠구나 생각했지.”

●일본을 꺾고 월드컵으로

그는 스스로 “축구하면서 스트레스 받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저 즐기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고 말한다.

하지만 86멕시코월드컵 최종예선 한일전의 각오는 남달랐다. “아마 내가 축구하면서 가장 신경을 썼던 경기가 바로 이 경기일걸.”

여기서 재미있는 사연 하나. 85년 11월, 일본과의 잠실 2차전에서 최 감독의 중거리 슛이 골포스트 맞고 나오자 이를 허정무 감독이 차 넣어 한국은 결국 월드컵 티켓을 거머쥐었는데 당시 최 감독은 제자리에서만 펄쩍펄쩍 뛰는 다소 촌스런(?)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이시카미(당시 일본 수비수)가 1차전부터 나만 따라다녔어. 아주 강한 선수거든. 근데 2차전 때 뒤에서 무릎 왼쪽을 차는 거야. 전반 끝나고 라커룸에 갔는데 안 되겠더라고. 아파서 못 뛴다고 생각했지. 근데 김정남 감독님이 귀에다가 ‘순호야, 네가 없으면 안 돼’라고 하시는 거야. 오싹했어. 뭐 어떡하겠어. 운동장으로 나갔지. (허)정무 형 골 넣고 나서는 너무 아파서 제자리에서만 뛴 거야.”
한국 축구사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순호 강원 FC 감독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진가를 유감없이 펼쳤다. 아르헨티나 전에서 수비수 크라우센의 태클을 피해 문전으로 쇄도하고 있는 최순호. 스포츠동아DB
한국 축구사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순호 강원 FC 감독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진가를 유감없이 펼쳤다. 아르헨티나 전에서 수비수 크라우센의 태클을 피해 문전으로 쇄도하고 있는 최순호. 스포츠동아DB

●마라도나를 만나다

최 감독의 슈퍼스타 지론. “슈퍼스타가 있고 그냥 스타가 있고 일반 선수가 있다.” 기준은 관중이다. 일반 선수는 관중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선수, 그냥 스타는 관중의 눈높이를 맞추는 선수, 슈퍼스타는 관중들에게 탄성이 나오게끔 예측 불허의 플레이를 하는 선수라는 것이다.

그리고 최 감독은 86멕시코월드컵 그라운드에서 바로 그 슈퍼스타를 만났다. 마라도나였다. “평범한 선수들하고 차원이 달라. 볼 터치나 경기운영 이런 것들이 거기서 뛰는 나머지 21명과는 다른 거야. 아르헨티나 자체도 큰 벽이긴 했지만 마라도나는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였지.” 최 감독은 “아직까지도 마라도나 만한 선수는 만나보지 못했다”고 단언했다.

기다리던 월드컵 첫 골은 6월10일 펼쳐진 이탈리아 전에서 터졌다. 후반 17분 수비수 2명을 제치고 대포알 같은 슛으로 골을 성공시킨 최순호가 동료들과 함께 감격적인 포옹을 나누고 있다. 
스포츠동아DB
기다리던 월드컵 첫 골은 6월10일 펼쳐진 이탈리아 전에서 터졌다. 후반 17분 수비수 2명을 제치고 대포알 같은 슛으로 골을 성공시킨 최순호가 동료들과 함께 감격적인 포옹을 나누고 있다. 스포츠동아DB

●월드컵 첫 골 & 4년 뒤 이탈리아 대회

멕시코월드컵 이탈리아와 3차전에서 강력한 중거리포로 월드컵 첫 골을 성공시켰다. “슛하는 순간에 감이 왔지. 정확하게 맞춰야겠다고 생각한 게 그대로 맞아 들어갔어. 왼쪽 사이드에서 볼을 받았는데 정종수가 오버래핑을 나가며 수비를 유인했기에 가능했던 플레이지.”

한국은 2무1패로 예선 탈락했고 귀국길에 그는 큰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예명을 ‘로마’로 지었다. 다음 이탈리아월드컵에도 꼭 출전하고 싶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정작 4년 후 대회 때 아쉬움이 더 많았다. “멕시코보다 잘할 수 있었는데 그게 안 됐어. 준비는 더 많이 했는데 1차전부터 컨디션 난조에 시달렸거든. 세 번째 우루과이 경기부터 선수들이 능력을 발휘했지. 정말 아쉬워. 중요한 대회에 나가서 세 번째 경기 만에 몸이 풀렸다는 게.”

그는 이탈리아 월드컵을 회상하며 엔조 시포(벨기에), 이에로(스페인), 프란세스콜리(우루과이) 등 한국과 한 조에 속한 국가들의 당대 스타플레이어를 한 명씩 거론했다. “그들과 마라도나를 비교하면 어떤가요?” “에이 차원이 다르다니까. 비교가 안 돼.”

강릉 |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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