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마, PGA 정상에 서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3월 10일 02시 57분



‘농부의 아들’ 양용은, 가난 딛고 혼다클래식 우승컵 번쩍

감귤농사 부모 슬하에서 태어나

웨이터 - 볼보이로 돈벌어 운동

Q스쿨 성적나빠 대기선수 출전

신지애 “제게서 힘얻었다니 감사”


그는 늘 꿈을 얘기했지만 현실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골프를 하다 보면 벙커, 연못, 숲 등 숱한 고난과 맞닥뜨리듯 그의 인생도 가시밭길이었다.

하지만 ‘야생마’라는 별명처럼 어떤 어려움에도 주저앉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더 심하게 채찍질한 끝에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자리에 우뚝 섰다.

9일 끝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혼다클래식에서 우승한 양용은(37·테일러메이드)이 그 주인공이다.

○ 어쩌다 한 번?

양용은은 2006년 11월 유럽투어 HSBC챔피언스에서 7개 대회 연속 우승을 노리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를 꺾고 정상에 오르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세상 두려울 게 없던 그는 그해 12월 PGA투어 퀄리파잉스쿨에 도전했지만 스코어 카드 오기로 실격됐다. 그 후 2년 넘게 우승과 거리가 멀었다. 세인의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지며 “그저 운이 좋았나 보다”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었다.

○ 높기만 한 세계의 벽

“남이 뭐라든 신경 쓰지 않겠다”던 양용은은 2007년 Q스쿨에 응시해 3수 만에 합격했다. 지난해 PGA투어에 뛰어들었지만 29개 대회에서 11차례나 컷 통과에 실패해 상금 157위로 투어카드를 잃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Q스쿨에 네 번째로 응시해 공동 18위로 출전권을 되찾았다. 대기선수 신분이라 1월 소니오픈 때는 하와이까지 건너가 빈자리가 생기기를 기다렸으나 헛걸음을 했다. 이번 우승으로 2년간 풀 시드를 확보한 양용은은 “진저리나는 Q스쿨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며 기뻐했다.

○ 시련이 자양분

제주 출신 양용은은 감귤농사를 짓는 부모 슬하에서 어렵게 자랐다. 보디빌더를 지망하며 역기에 희망을 담았던 그는 고교 졸업을 앞둔 19세 때 뒤늦게 골프를 시작했다. 골프연습장 볼 보이를 하다 레슨비를 벌려고 나이트클럽 웨이터 아르바이트도 했다.

방위로 군복무를 하며 퇴근 후에도 볼을 친 그는 1996년 국내 프로테스트에 합격했지만 3년 동안 한 해 상금은 1000만 원 남짓이었다. 생계가 어려워 가족과 보증금 250만 원에 월세 15만 원짜리 지하 단칸방 생활을 했다.

서른 줄에 접어든 2002년 SBS최강전에서 생애 첫 승을 올린 그는 일본투어에 진출해 통산 4승을 거뒀다.

양용은은 “찬밥을 물에 말아 먹으며 운동했다는 말은 이젠 하고 싶지 않지만 그런 세월이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됐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우승 소식을 전하며 ‘양용은의 인내가 승리를 이끌었다’고 보도했다.

한편 전날 싱가포르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HSBC위민스챔피언스에서 우승하고 금의환향한 신지애는 자신의 역전승에서 힘을 얻었다는 양용은의 기자회견 얘기를 듣고는 “선배님이 저를 생각하고 경기를 하셨다니 정말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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