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을 말한다] 아들김정준이 본 감독님

  • 입력 2008년 11월 12일 08시 47분


네, 말씀대로 감독님이자 아버님이죠. 하지만 감독님이 먼저네요. 어차피 저도 한 팀에 몸담고 있으니까. 보통 사람이라면 성장해 아버지로부터 독립하고 공간적으로 떨어지지만 저는 365일 같이 있다 보니까,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게 되죠. 같이 보고, 같이 느끼고. 그러니까 저는 알죠. 이 분이 연세에 비해 얼마나 턱없이 무리를 하는지. 자식은 행여 건강해칠까 뜨끔뜨끔한데 당신은 그걸 마다하지 않는 성품이잖아요.

어려서부터 가족이니까 여유 있으면 바깥에 써버리고, 남 책임 같은데 자기가 그만두고 그런 거 이해 못했죠. 그래도 시간 지나 지금도 감독님 찾아오는 사람들 많은 거 보면 이 분의 깊이와 표현법의 차원이 다른 것이지 세상이 말하듯 냉정한 건 아니구나란 생각은 드네요.

감독님이 야인 되고 돈 못 벌어 와도 엄마는 내색 안 했어요. 제 동생이나 누나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와 같은 길 가는 저는 이해할 수 있었죠. 감독님은요, 남자는 돈이 아니라 가치를 위해 살아야 된다는 책임감을 가지신 분이에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 감독님은 반대하지 않으셨어요. 우리 집 가훈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라’에요. 어머니는 반대가 심하셨죠. 아버지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하자면 ‘(감독에 전력하시느라) 자식이 야구를 하든 말든 신경 쓸 시간조차 없으셨던 것’같아요. LG에서 허리도 아팠고, 선수 생활에 비전이 없는 것 같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도 ‘알았다’ 한마디 뿐이었어요.

은퇴 후 기록원 거쳐서 전력분석 일을 하게 됐고, SK로 왔는데 아버지가 감독님으로 오시게 됐어요. SK의 의사결정 구조상 제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였지만 아무 말도 안 했어요. SK도 배려해줬고요. 그러나 마음속에선 SK란 팀이 필요로 하는 순간에 감독님이 오신다고 생각했어요.

주위에서 감독님을 어려워하세요. 그래서 ‘네가 아들이니까 얘기해’란 청탁을 많이 들었어요. 그 중에서 해야 될 말은 했어요. 감독님은 대장이지만 그건 가면이에요. 그렇지만 실제가 돼버리고 말았죠.

감독님은 냉정하지 못해서 손해 본 케이스가 많아요. 일례로 작년 시범경기 막바지에 엔트리를 줄일 시기가 넘어 갔는데도 안 줄여요. 그래서 물었더니 “작년 10월부터 같이 고생했는데 선수들이 납득하고 (2군에) 내려가야 되지 않겠냐”라고 해요. 다 안고 가시려고 한 거예요. 시즌 들어와도 마찬가지였죠. SK 스타 선수들이 계산착오를 한 부분도 거기에 있어요. 작년 5월 팀에 위기가 왔을 때 ‘베테랑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어떠냐’는 건의를 드린 적이 있는데 그 분은 “여기서 젊은 선수로 운용 안 하면 지금까지 해온 것이 다 원점이 된다”라고 하셨어요. 못 이기면 다 꽝인데도….그런 분이에요.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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