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 기자의 가을이야기] 두산 채상병 아내의 응원

  • 입력 2008년 10월 29일 07시 49분


“사랑의 편지로 맘 울리던 안방마님, 올해도 멋진 가을 잔치 기대할게요!”

2002년 겨울. 고은하(31) 씨의 목소리가 한 라디오 프로그램 전파를 탔습니다. “제 남자친구는 프로야구 한화의 신인포수입니다. 손바닥이 다 벗겨질 정도로 열심히 훈련하고 있어요. 곧 대형포수가 탄생할테니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노래 한 곡을 신청했습니다. ‘순리대로 살다보면 힘든 날도 지나갈 것’이라고 노래하는 비틀즈의 ‘렛잇비(Let it be)’입니다. 얼마 후 고 씨는 그 신인포수와 결혼합니다. 지금은 두산의 안방마님이 된 채상병(29)입니다.

2군을 전전하던 남편은 이듬해 한화를 떠나 두산 유니폼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간판스타 홍성흔이 주전으로 버티고 있는 두산이었지만 남편은 “그래도 백업으로는 1군에 머물 수 있겠네”라며 반색했답니다. 누군가에게는 ‘좌절’의 동의어인 트레이드가 이 부부에게는 “인생의 여러 기회 중에 한 번”이 된 겁니다.

하지만 첫 딸 은(5)이의 돌잔치를 치르기도 전에 병역비리가 터졌습니다. 막 대학원에 복학한 고 씨의 학비는 둘째로 쳐도, 당장 가족의 생계가 문제였습니다. 그래도 고 씨는 “힘들어도 힘들다는 생각을 못했어요”라고 회상합니다. 지방대 강의를 마치고 새벽 두 시에 귀가할 때면, 안 자고 기다리던 남편이 다리를 주물러줬거든요. 한 번은 학교에 가서 지갑을 열었더니 남편의 편지가 들어있더랍니다. ‘못난 나 만나서 고생이 많다. 내가 꼭 호강시켜 줄 테니까 나 믿고 조금만 기다려줘.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아내는 남몰래 눈물을 훔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흘러간 절치부심의 시간. 남편은 고맙게도 복귀 첫 해부터 자리를 잡았습니다. 공익근무 내내 왕복 7km 거리를 걸어다니며 체력을 관리한 덕분입니다. 아픈 어깨 때문에 하루에도 몇 알씩 진통제를 먹어야 했지만 귀중한 기회를 놓칠까봐 말 한마디 못했답니다. 둘째 딸 린(1)이를 낳고 난 후에야 이 사실을 털어놓는 남편의 손을, 고 씨는 말없이 꼭 잡았습니다.

어두운 밤이 지나면 반드시 밝은 햇살이 비칩니다. 지난해 가을잔치의 주인공이 된 남편 덕분에 집안도 시름을 덜었습니다. 두둑한 포상금으로 양가 부모님께 빌렸던 고 씨의 학비를 갚고 용돈까지 드렸거든요. 올해도 남편은 가을잔치를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고 씨는 “은하야, 우리 다시 볼 때 웃으면서 만나자”던 남편의 말을 되새겨봅니다. 무뚝뚝해 보여도 사실은 장난꾸러기인 남편이 한국시리즈 우승반지를 끼고 싱글벙글 웃는 모습도 상상해봅니다. 채상병이 가을잔치를 끝내고 돌아오는 날, 은이와 린이의 집에는 진짜 ‘잔치’가 벌어질 모양입니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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