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동 잠재웠던 ‘부산갈매기’의 힘

  • 입력 2008년 10월 11일 08시 17분


사직구장 시대를 연 롯데는 처음 고전의 연속이었다. 성적이 엉망이었다.

구덕구장과 달리 사직구장의 분위기도 아직은 어색했다. 구덕이 일본 야구부터 시작해 점잖은 골수 야구팬이 많은 경기장이었다면 사직은 뜨내기들이 와서 시끄럽게 하는 곳이었다. 요즘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87년부터 몇 년간은 경기 뒤 팀의 맥없는 플레이에 화를 내며 난동을 부려 구단 사무실 앞에서 싸움이 난 것도 여러 번이었다. 난동으로 선수단이 집에 가지 못해 전투경찰이 출동하고 최루탄이 터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이때 롯데의 맥없는 플레이에 관중이 웅성거릴 때 관중들을 진정시킨 노래가 있었다. 바로 ‘부산갈매기’였다. 전설의 탄생이다.

몇몇 저질 관중들의 난동에 관중들의 집중력이 떨어질 때 ‘부산 갈매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잠잠해졌고 그 노래를 목 놓아 따라 불렀다. 이 때 롯데의 응원단장으로 나서서 관중들을 즐겁게 하던 사람이 있었다. 유퉁이었다. 롯데 응원단장의 경력을 발판삼아 뒷 날 연예계에 진출한 그는 피에로복장으로 사직에 나타나 관중들의 응원을 유도하고 난동을 잠재웠다.

부산 사람들의 고향 사랑은 유별나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로서의 자부심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영화 노래 등에서 서울 중심의 문화를 거부하는 묘한 기질이 있었고 몇몇 분야에서는 서울을 앞지르기도 했다.

이 노래의 제작자는 ‘영사운드’ 출신의 안치행이었다. 야구를 연상시키는 안타 프로덕션을 차린 그는 킹 레코드사를 찾아가 이 노래의 제작을 제안했으나 사장 박성배 씨로부터 “일본 노래 같다”며 거절당했다. 70∼80년대 가요제작자들 사이에서 ‘킹 박’으로 통하던 박성배 씨는 나중에 ‘돌아와요 부산항에’ 대신 ‘부산 갈매기’를 제작하는 인연을 낳았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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