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지 마세요… 운동만 할 겁니다”

  • 입력 2008년 8월 21일 02시 50분


‘부모님은 나의 힘.’ 이용대가 금메달을 따던 날 전남 화순군청 앞에서 함께 응원하고 있는 아버지 이자영 씨(왼쪽)와 어머니 이애자 씨. 화순=연합뉴스
‘부모님은 나의 힘.’ 이용대가 금메달을 따던 날 전남 화순군청 앞에서 함께 응원하고 있는 아버지 이자영 씨(왼쪽)와 어머니 이애자 씨. 화순=연합뉴스
배드민턴 혼복 금 ‘국민 남동생’ 이/용/대

《시상대 맨 위에 올라 애국가를 들으면 눈물이 나올 줄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 그냥 멍했다. 방금 전 우승을 확정했을 때도 그랬다. 선수촌으로 돌아와선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내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생각이 그때서야 또렷해졌다. 기쁨과 부담이 교차했다. 하얗게 밤을 새우고 말았다.

이용대(삼성전기·사진)는 스무 살에 스포츠 선수들의 꿈인 올림피언이 됐다. 그리고 하늘이 점지한다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17일 베이징 올림픽 배드민턴 혼합 복식에서 ‘연상녀’ 이효정(27)과 함께 금메달을 딴 이용대를 베이징 올림픽 선수촌에서 만났다. 깨어 보니 스타가 된 그의 인생을 알파벳 ‘STAR’로 돌아봤다.》

우승후 ‘살인윙크’는 식상한 세리머니 대신 한 것

훈련하느라 못가본 가족여행 가장 먼저 하고싶어

1. Start(시작)

‘88둥이’ 이용대는 전남 화순초등학교 2학년 때 라켓을 처음 잡았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는데 마침 화순은 배드민턴으로 유명한 도시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죠.”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뚱뚱했다는 이용대는 “지금도 조금만 쉬면 살이 확 붙어요. 체질인 것 같아요”라고 했다. 배드민턴을 시작한 지 3, 4개월이 지나면서 체중은 크게 줄었다. 실력은 늘기 시작했다.

이용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외도’를 생각했다. 부모님이 ‘인기 종목’ 야구를 해 볼 것을 권유했다. 야구를 제대로 하려면 야구 명문이 많은 광주로 가야 했기에 어린 이용대는 화순에 남았다. 그리고 한 우물만 판 이용대는 화순중 3학년 때 배드민턴 최연소 국가대표가 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김중수 대표팀 감독은 “고교 시절부터 차분한 경기 진행이 돋보이는 선수였다”고 말했다.

2. Tear(눈물)

TV 카메라를 향해 윙크를 날려 더 유명해진 이용대는 평소 무뚝뚝하고 감정 기복도 별로 없는 편이다. 시상대 위에서도 울지 않았던 그가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2006년 8월. 어머니 이애자(44) 씨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당시 이용대는 서울에서 열린 코리아오픈에 출전하고 있었다. 아버지 이자영(47) 씨는 아들이 영향을 받을까 봐 대회가 끝난 뒤 사실을 알렸다. 아들이 허겁지겁 달려갔을 때 어머니는 전남대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 참으려고 했지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배드민턴을 시작했을 때부터 어머니가 모든 걸 뒷바라지해 주셨어요. 아마 그동안 저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쓰러지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용대의 집은 어릴 때부터 형편이 좋지 않았다. 아버지 이 씨는 치킨집 등을 운영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5년 전에는 아예 사업을 포기했고 지금은 유치원 버스 운전사로 일하고 있다. 다행히 어머니 건강은 많이 좋아졌다.

이용대는 우승 뒤 인터뷰에서 어머니를 향한 윙크였다고 했다. 진짜 그랬을까.

“그냥 말한 거예요. 정신없는데 꼭 누구를 생각하면서 했겠어요. 주먹 쥐고 손을 추켜올려 볼까 하다가 좀 식상한 것 같아 카메라를 향해 윙크를 해봤어요. 평소에도 가끔 해요.”

3. Age 20(스무 살)

이용대가 우승하자 일부에서 ‘어린 나이에 갑자기 모든 것을 얻었다. 얼굴도 잘생겨 주변의 유혹이 많아 운동하는 데 지장이 있을까 걱정된다’는 얘기가 나왔다.

“저도 그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감독님도 TV 인터뷰는 최대한 막아 주고 계세요. 솔직히 여자 연예인들 만나고는 싶죠. 하지만 운동을 게을리 하지는 않을 거예요. 2016년 올림픽까지 나가는 게 제 목표거든요.”

이용대는 운동을 시작한 이후 제대로 여행을 가 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훈련하느라 바빴고 집안 형편도 여의치 않았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이다.

4. Remember(기억)

올림픽에서는 주목받는 종목이지만 배드민턴은 국내에서 여전히 비인기 종목이다.

“그래도 배드민턴은 좀 나아요. 태릉선수촌에 있으면서 레슬링 선수들이 훈련하는 것을 봤는데 너무 안쓰럽더라고요. 게다가 레슬링은 하루에 모든 게 결정되잖아요. 단 하루를 위해 4년을 쏟아 붓는데 얼마나 힘들고 긴장이 될까요.”

지금은 귀찮을 정도로 지나친 관심을 받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시 ‘비인기 종목 선수’로 돌아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괜찮아요. 오히려 운동하는 데는 더 도움이 되겠죠. 한국에 돌아가면 아마 배드민턴 홍보대사 이런 거 맡기지 않을까 싶은데 열심히 할 겁니다. 배드민턴이 좋고 배드민턴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니까요.”

인터뷰 내내 이용대의 휴대전화는 계속 울렸다. ‘예비 배드민턴 홍보대사’ 이용대는 이렇게 말했다.“신사적인 운동인 배드민턴 배우세요. 단, 동네에서 대충 치면 별로 운동 안 돼요. 스텝, 손목 움직임 하나하나 배우다 보면 배드민턴의 매력을 느낄 겁니다. 동호회 가면 좋은 선생님 많아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살도 쫙 빠진다는 것 꼭 기억하세요.”

베이징=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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