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결같은 첫키스 감격 깨지 말았으면…

  • 입력 2008년 7월 22일 03시 01분


“이 맛이구나.” 연장 접전 끝에 청야니(대만)를 꺾고 정상에 오른 오지영(에머슨퍼시픽)이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스프링필드=AFP 연합뉴스
“이 맛이구나.” 연장 접전 끝에 청야니(대만)를 꺾고 정상에 오른 오지영(에머슨퍼시픽)이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스프링필드=AFP 연합뉴스
‘박세리 키드’ 스무살 오지영, 스테이트 팜 클래식 역전우승… 연장서 청야니 꺾고 첫승

지난달 US여자오픈골프대회 마지막 날에 있었던 일이다.

박인비(SK텔레콤)가 18번홀 버디로 우승을 확정짓던 순간 한 선수가 그린으로 뛰어가 맥주 세례를 퍼부었다. 절친한 친구로 지난 겨울 말레이시아에서 동계훈련을 함께한 오지영(20·에머슨퍼시픽)이었다.

오지영은 당시 1라운드를 공동 선두로 마치며 돌풍을 일으켰으나 약점으로 지적된 뒷심 부족으로 결국 공동 31위로 끝냈다. 하지만 마치 자신이 우승이라도 한 듯 기뻐하며 축하를 해준 뒤 한국 식당에서 뒤풀이를 함께했다.

그랬던 오지영이 이번에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며 첫 승의 꿈을 이뤘다.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 스프링필드의 팬더크릭CC(파72)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스테이트 팜 클래식 최종 4라운드.

3타 차 공동 2위로 출발한 오지영은 3언더파 69타를 쳐 올 시즌 신인왕이 유력한 청야니(대만)와 동타를 이룬 뒤 연장 첫 번째 홀에서 이겼다. 지난해 LPGA투어 데뷔 후 처음으로 정상에 오르며 25만5000달러의 상금을 받았다.

오지영은 박인비처럼 ‘박세리 키드’로 불린다.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는 장면에 감동받아 이듬해인 1999년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다. 죽전중 골프부 때는 박인비와 5개월 동안 한솥밥을 먹었다. 외환위기 때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어 힘들었지만 어머니가 가사도우미까지 하며 뒷바라지한 덕분에 국내 무대에서 10승 이상을 올렸다.

고교 시절 에머슨퍼시픽그룹이 주최하는 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계기로 미국 유학을 떠난 그는 지난해 LPGA투어에 뛰어들었으나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대회 초반 언더파를 치다가도 막판으로 갈수록 힘이 달려 순위가 밀리기 일쑤였다. 올 맥도널드LPGA챔피언십 때도 2라운드까지 공동 4위였다가 남은 2라운드에서 4타를 잃어 공동 29위로 끝냈고 당시 챔피언은 바로 청야니였다.

이날도 오지영은 한때 2타 차 단독 선두였다가 17번홀(파3)에서 어이없는 파 퍼트 실수로 2위로 밀려나며 무너지는 듯 했지만 청야니가 18번홀(파4) 보기로 연장 승부 기회를 잡았다.

18번홀에서 열린 연장전에서 오지영은 두 번째 샷이 그린을 넘겨 깊은 러프에 빠져 위기를 맞았으나 절묘한 어프로치 샷으로 홀 한 뼘 거리에 붙인 뒤 가볍게 파를 잡아 세 번째 칩샷이 너무 길어 보기를 한 청야니를 따돌렸다.

오지영의 우승으로 ‘코리아 군단’은 6월 이후 7개 대회에서 역전승으로만 시즌 5승을 합작하는 강세를 이어갔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동기들과 경쟁하며 실력 키워… 아직도 우승 배고프다”▼

오지영은 LPGA 투어 첫 승의 기쁨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시상식 후 3시간 동안 차를 타고 시카고 공항으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 이번 주말 에비앙마스터스 출전을 위해 프랑스로 떠나려 했으나 우승 행사에 참석하느라 항공편을 놓쳐 부랴부랴 덴마크 코펜하겐행 비행기로 스케줄을 바꿨다.

출국 수속을 기다리고 있던 오지영은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동안 도움 주신 많은 분께 감사드린다”고 말문을 열었다.

1타 차 2위로 먼저 경기를 끝낸 그는 “선두 청야니가 18번홀 보기 하는 장면은 팬들에게 사인을 해 주느라 볼 수도 없었다. 느긋하게 마음먹었던 게 오히려 결과가 좋았다”고 접전 상황을 떠올렸다.

‘박세리 키드’로 불리는 1988년 용띠 동갑내기의 활약에 대해 그는 “우리 또래에 실력 좋은 선수가 정말 많다. 인비가 처음으로 LPGA 우승을 한 뒤 저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내가 동기 중 두 번째로 우승하게 돼 뿌듯하다”고 말했다. 주니어 시절부터 박인비, 김송희, 김인경, 신지애, 최나연 등 동기들과 경쟁하며 실력을 키웠다는 것.

렌즈를 끼다 눈에 알레르기가 생겨 안경을 쓴다는 오지영은 “우승 물꼬를 텄으니 더 욕심을 내고 싶다”며 웃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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