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RO2008생생토크]축구는 발보다 가슴-머리로 하는 게임

  • 입력 2008년 6월 25일 02시 58분


2008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08) 8강전이 열린 4일 동안 우리는 매일 ‘어디가 이길 것이다’란 생각을 가지고 갔지만 예상과 다른 결과를 지켜봤다.

독일이 포르투갈을 꺾을 때만 해도 난 전혀 놀라지 않았다. 독일은 토너먼트를 어떻게 이끌고 가야 하는지를 아는 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터키가 크로아티아를 꺾은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러시아가 네덜란드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거스 히딩크 감독조차도 그런 승리를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히딩크는 조국의 오렌지 껍질을 어떻게 벗겨내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히딩크의 친구들은 그에게 “절대 네덜란드에 가지 말라”고 농담을 건넨다. “나는 조국의 반역자가 되겠다”고 했던 히딩크. 실제로 그는 ‘반역자’가 됐다.

러시아가 네덜란드를 꺾은 뒤 모스크바는 축제의 도시가 됐다. 사람들이 몰려 춤을 추며 “히딩크”를 연호했다.

유로 2008은 여러 면에서 정말 뜨겁게 달아올랐다. 갑자기 치솟은 오스트리아 빈의 기온을 유럽축구의 ‘큰 아이들’이 더 올려놓았다. 2004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리스가 우승컵을 훔칠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그리스인들에게 오토 레하겔 감독은 한국인들에게 히딩크와 같은 인물이다. 레하겔은 수비축구로 우승했고 그래서 그리스 축구는 ‘오토의 벽’으로 명명됐다.

이탈리아가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승부차기로 이기려고 재미없는 경기를 펼쳤던 점을 제외한다면 모든 나라는 공격적이었다. 심지어 상대가 먼저 골을 넣기를 기다리는 듯한 플레이를 펼쳤던 터키도 연장전에 엄청난 힘을 보여줬다. 대역전극의 전형이었다.

4강에 오른 모든 팀이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자신보다 높은 팀을 제압했다. 흥미로운 점은 독일과 터키, 러시아가 8강에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동안 포르투갈, 크로아티아, 네덜란드는 8강행을 확정하고 거의 일주일을 쉬었다는 것이다. 결국 조별 예선에서 너무 쉽게 장벽을 넘은 선수들은 자만에 빠지거나 기다림에 지쳐버렸다고 할 수 있다.

선수들은 훈련하는 것보다 경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빈둥거리는 것을 싫어한다. 후보 선수들이 조별 리그 3차전을 할 때 주전들은 5성급 호텔에서 너무 많이 쉬었다. 그러면서 맞붙을 상대팀은 힘겨운 경기로 힘이 다 빠질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심리는 현실로 나타난다. 그래서 요즘 감독들은 선수들의 심리와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많은 전문가를 고용한다.

23명의 선수를 24시간씩 7일간 호텔에 머물게 한다면 선수들은 당연히 지루해한다. 일상이 나태해진다. 마르코 판 바스턴 네덜란드 감독은 “선수들이 너무 긴장했다”고 했다.

긴장은 일주일간 기다림에서 온 것이다. 러시아는 3일 쉬었다. 첫날은 회복했고 둘째 날은 전술훈련을 했다. 그리고 셋째 날은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심리적으로 ‘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히딩크는 경기장에서 네덜란드의 양 사이드를 사정없이 공략했다.

경기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다. 안드레이 아르샤빈은 “히딩크 감독이 네덜란드가 처음부터 공격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공격적으로 나서니 네덜란드는 금세 지쳐버렸다”라고 말했다.

이런 면을 볼 때 축구는 발보다는 ‘가슴’과 ‘머리’가 더 중요하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랍 휴스 잉글랜드 칼럼니스트 ROBHU800@a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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