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시]게브르셀라시에는 뭘 위해 달렸나

  • 입력 2007년 10월 2일 03시 02분


지난달 30일 베를린 마라톤대회 남자부에서 2시간 4분 26초의 세계기록을 세운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에티오피아)는 10남매 사이에서 어렵게 자랐다. 천부적 재능도 뛰어났지만 어릴 적 농장 길을 헤치며 10km씩 달려 등교했던 ‘헝그리 정신’이 없었다면 오늘의 그는 없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스포츠심리학자 김병준 인하대 교수는 “개인적인 의욕과 꿈, 동기, 열망 등이 뒷받침돼야 한계를 넘을 수 있는 힘겨운 훈련을 잘 소화할 수 있다. 마라톤에서 한계를 넘기 위해선 강도 높은 훈련이 필요한데 확실한 신념과 투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게브르셀라시에의 세계기록 경신으로 다시 불이 붙은 인간 한계 논란의 핵심은 결국 인간 자신인 셈이다. 한계를 넘어서겠다는 집념과 투지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코스가 평탄하고 훈련 기술과 장비가 발달해도 기록은 깨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 점에서 부의 획득과 동전의 앞뒷면인 헝그리 정신은 아주 중요하다. 최근 마라톤에서 세계 무대를 주름잡는 선수 대부분이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유명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하면 아프리카에선 평생 먹고도 남을 돈을 번다.

자기 성취도 인간을 한계에 도전하게 한다. 게브르셀라시에는 1만 m의 최강자로 군림하며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런데도 마라톤에 도전해 세계의 벽을 무너뜨린 것은 돈이 아니라 기록에 대한 열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 뭔가를 성취하면 할수록 더욱 성취 동기는 커져 어떤 고난이 와도 참고 이겨낼 수 있게 한다. 물론 극한에 도전해 성공했을 땐 언제나 더 큰 부와 명예가 따른다. 지금까지 인간 한계에 대한 도전은 대부분 이런 사이클을 통해 이뤄졌다.

최근 국내에서는 마라톤이 기피 스포츠로 인식되고 있다. 먹고 사는 데 큰 문제가 없는 선수들을 움직이기 위해선 그들이 달릴 ‘이유’를 만들어 줘야 한다. 돈이든 명예든 기록 경신의 주체는 결국 선수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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