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국제마라톤 D-4/이봉주 “말 시키지 말아유∼”

  • 입력 2004년 3월 9일 18시 17분


“말 시키지 말아유∼.”

‘한국마라톤의 간판’ 이봉주(34·삼성전자·사진)의 신경이 극도로 날카롭다. 14일 열리는 2004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75회 동아마라톤을 앞두고 ‘지옥의 식이요법’을 시작했기 때문. 평소 느긋하던 그였지만 요즘은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을 부린다.

8일 점심부터 시작된 ‘봉달이’의 식이요법은 풀코스 완주만큼 힘들다. 한 끼에 쇠고기 500∼600g과 물만으로 일곱 끼니를 내리 먹어야 한다. 꽃등심과 갈비 등 가장 부드러운 고기만 찾아 먹는데도 하루가 지나면서부터는 고무 씹는 것 같아 넘기기 힘들다. 게다가 오전 오후 70분씩 두 차례 지속주(가볍게 16∼17km 달리기)를 하는 바람에 체내에 에너지원인 글리코겐이 남아있지 않아 힘이 없는 상태다. 그러니 옆에서 한마디만 해도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14일에 봐요.’ 2004서울국제마라톤에 참가한 중국 케냐 탄자니아 선수들이 선수촌인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 주변 올림픽공원에서 훈련 중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박주일기자

사정이 이러니 오인환 삼성전자 감독도 아무 말 못하고 지켜보고만 있다. 7년 만에 국내대회에 출전하는 터라 각 언론매체에서 취재를 요청하고 있지만 이봉주는 모두 거부한 채 식이요법에만 매달려 있다.

오인환 감독은 “봉주가 지금 생리적으로 극한상황에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도 큰 고통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식이요법의 성패에 따라 기록이 크게 차이나기 때문에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봉주는 10일 저녁부터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하게 된다. 중국 쿤밍과 경남 고성에서 몸만들기를 끝낸 그는 수원 팀 훈련장에서 식이요법과 마무리 컨디션 조절을 병행하며 자신의 한국최고기록(2시간7분20초) 경신을 다짐하고 있다.

한국마라톤의 ‘차세대 주자’ 지영준(23·코오롱)도 8일 아침부터 식이요법에 들어갔다. 지영준은 끼니마다 이봉주보다는 적은 300∼400g의 쇠고기와 물을 먹는다. 대신 이봉주보다 한 끼 많은 8끼를 이렇게 먹을 계획. 지영준도 경북 영천과 쿤밍 등지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한 뒤 서울에서 마무리 훈련 중이다.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식이요법이란…▼

식이요법은 체내 에너지원인 글리코겐을 최대한 많이 섭취하기 위한 식사법. 배터리를 완전히 방전시킨 뒤 다시 충전하면 10∼20%가 더 충전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인체는 체내에 부족한 게 생기면 다음에 더 많이 저장하려는 본능(보상기전)이 있다. 그것을 스포츠 과학적으로 이용한 식사법이 식이요법.

식이요법은 보통 6일간 이어지는데 처음 3일간은 단백질 위주의 식사, 나머지 3일은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한다. 3일 동안 쇠고기와 물만 먹어 근육 내 글리코겐이 완전히 빠져 나가게 한 뒤 나머지 3일간 고 탄수화물을 섭취해 근육 내 글리코겐을 최대로 축적하는 것.

일반인들은 똑같이 할 수는 없지만 식단에서 첫 3일 동안 단백질의 비중을 높여주고 나머지 3일간 탄수화물의 비중을 높여주면 레이스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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