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점 탐험]12월16일 17일째 '입술 브라더스'

  • 입력 2003년 12월 21일 15시 20분


'입술 브라더스'. 박대장과 이치상 대원(우측)
'입술 브라더스'. 박대장과 이치상 대원(우측)
날씨 : 맑음

기온 : 영하 16도

풍속 : 초속 8.2m

운행시간 : 07:00 - 16:30( 9시간30분)

운행거리 : 25.0km (누계 :315.5km) /남극까지 남은 거리: 819km

야영위치 : 남위 82도 40분041초 / 서경 80도 32분 593초

고도 : 1,074m / 83도까지 남은 거리:37.8km

온도계는 섭씨 영하 16도를 나타냈지만 몸으로 느껴지는 체감온도는 영하 30도를 밑도는 듯 하다. 오버미튼(벙어리장갑)을 낀 손이 얼어온다.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체온을 끌어 올리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놓칠세라 앞으로 나선 박대장의 뒤를 따른다. 박대장은 조금 늦게 출발한 대원이 있거나 말거나 "같이 가자"는 말 한마디 없다. 그저 박대장의 뒤를 묵묵히 쫓아가는 것이 정해진 룰이다. 07시 출발이후 2시간 동안 어제 오르던 언덕길을 계속 오른다. 경사가 좀 죽었지만 눈의 표면이 어제와 다르다. 겉보기에는 눈의 표면이 크러스트(햇볕에 눈의 표면이 녹았다가 얼어서 단단해진 것)된 걸로 보였으나 발을 내디딜 때마다 폭폭 빠진다. 썰매의 런너도 마찬가지다. 걸음은 걸음대로 썰매는 썰매대로 잘 나가지 않으니 미칠 지경이다. 다행히 두 시간 후에는 언덕위로 올라서서 잠깐의 여유를 가져본다. 뒤돌아보니 제법 많이 올라온 것이 느껴진다. 평지라고해서 운동장처럼 평탄한 것은 아니다. 짤막한 오름과 내림의 연속이다.

바람의 방향은 거의 일정하다. 우측 1시 내지 2시 방향에서 끊임없이 불어오는 바람은 어디서부터 불어오는지 어디로 불어 가는지 도무지 알 수없다. 다만 설원의 표면에 나 있는 '기기묘묘한 형상'들이 바람의 흔적을 말해 줄 뿐이다. 대표적인 것이 사스트루기이다. 다양한 크기에 다양한 모양으로 군락을 이루며 설원 여기저기에 무차별 흩어져 있다. 어떻게 보면 아름다운 예술작품 같기도 하다. 하지만 설원에 생긴 어떠한 형태의 흠집도 탐험대에게는 장애물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운행거리가 300km를 넘어 섰고 이틀 후면 83도로 접어든다. 탐험대의 진행경로는 서경 80도와 81도 사이를 따르는데 남위 83도선과 서경 81도선에 걸쳐 버티고 있는 산과 남위 83도 25분과 서경 80도와 81도에 걸쳐 있는 커다란 산이 진로 상에 있어 우회할 수밖에 없다. 우측 아니면 좌측으로 이 두 장애물을 우회해야 하는데 도상으로 보면 좌측으로-서경 79도 쪽으로-도는 것이 유리하다. 산이 앞에 닥쳐서 우회하면 거리가 늘어나기 때문에 오늘부터 가능한대로 운행경로를 서경80도 쪽으로 방향을 잡아 나가기로 한 박대장. 대원들보다 100여m 앞서 방향을 잡아가지만 자주 망설인다. 루트 찾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설원위에 생긴 사스트루기를 비롯한 설원위의 각종 흠집들이 바람과 같은 방향으로 나있기 때문에 탐험대는 장애물을 정면으로 가로 질러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우회가 쉽지 않다.

처음에는 이리저리 평평한 설사면을 찾아 헤매면서 상당히 더딘 운행을 했다. 하지만 발이 눈에 푹푹 빠지면서부터 박대장이 열을 받는가 싶더니 곧바로 장애물을 정면 돌파하기 시작한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시간이 좀 지나자 정면 돌파도 좀 익숙해진 듯하다.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4시간 동안의 이런 운행으로 어제보다 07분 정도 서경 80도 쪽으로 이동 할 수 있었다. 지평선과 연결 된 새로운 설원과 지나 온 설원이 만나는 곳에서 박대장이 운행을 멈춘다. 오후 4시 30분. 어제까지의 운행이 대원들을 지치게 했다고 판단한 박대장은 일찍 운행을 끝내고 대원들에게 휴식을 하도록 한다. 어쨌든 장애물을 넘으며 악천 고투 했는데도 불구하고 25km를 전진했으니 열심히 걸은 셈이다.

저녁식사 후, 차를 두 번이나 타 마시고 여유로운 휴식을 가지며, 음악까지 즐기며 대화를 나누는 대원들의 표정은 모처럼 편안해 보인다. 하루 중 가장 큰 관심사인 인터넷 게시판을 열어 돌려가며 읽어본다. 게시물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진한 아쉬움에 작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입술이 유난히 부어오른 박대장과 이치상 대원이 얼굴을 나란히 하고 얼굴만 크게 사진을 찍는다. '입술 부라더스'라는 이대원의 제안에 박대장은 '입술 부르터스'로 정정한다.

박대장은 아래 입술이 많이 부은 자신의 입을 스스로 '당나귀 입'이라 하고 윗입술이 많이 부은 이 대원에게는 '오리주둥이'라고 부른다. 박대장은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운지 자신의 '당나귀 입'을 실룩이며 1백만불짜리 '웃음'을 흘린다.

야영지 텐트 안, 모든 정리가 끝나면 굳이 "자라"고 하지 않아도 모두들 스르르 잠에 빠져 든다. 텐트 입구를 기준으로 맨 안쪽에 박대장이 누우면 그 옆에 머리를 반대쪽으로 하고 강철원 대원이 눕는다. 입구에는 이현조 대원, 그 안쪽에 오희준 대원이 자리를 잡으면 마지막으로 인터넷 전송 기사 작성을 마친 이치상 대원이 가운데 자리를 잡고 눕는다. 밥 먹는 시간이 가장 즐거운 시간이라면 가장 편안한 시간은 잠자리에 들면서부터이다.

남극탐험대 이치상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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