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칼럼]축구 팬이 된 딸

  • 입력 2002년 6월 13일 23시 27분


올해 대학생이 된 우리집 공주님은 원래 스포츠와는 담을 쌓은 사이다. 유치원 시절 운동회 달리기에 나가 꼴찌에서 두 번째로 들어오더니 초중고교를 거치면서도 스포츠에 재미를 못 붙였다. 웬만한 여자아이면 다 탄다는 자전거와 인라인스케이트도 무섭다고 할 정도였으니 알 만하지 않은가.

그러던 딸아이가 별일이다. 요즘엔 TV를 아예 끼고 산다. 드라마나 쇼 프로그램을 본다면 또 모른다. 축구공 한번 차보지 않은 아이가 월드컵에만 매달려 있으니 정말 희한한 일이다. 보다 보면 안목도 느는지 요즘은 웬만한 선수 이름쯤은 뚜르르 꿴다. “○○○는 몸싸움은 잘 하지만 골대 앞에만 가면 죽을 쑤네” “○○○는 빠르기는 한데 옆을 안 봐” 어쩌고 하며 토까지 다는 걸 보면 신통할 정도다.

축구의 매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무엇보다 단순하다는 점일 게다. 오프사이드 정도만 익히면 보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다. 이 때문에 축구 얘기만 나오면 누구나 전문가를 자처하고 나선다. 또 하나, 축구에는 기다리는 맛이 있다. 수시로 점수가 나는 다른 경기와는 달리 축구는 열한 명이 한 몸이 되어 한참을 뛰어도 겨우 골이 나올까 말까다. 그러기에 축구의 골은 다른 종목에서는 느낄 수 없는 폭발적인 감흥을 선사한다. 바로 축구의 맛이다.

우스개로 하는 소리겠지만 여성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게 축구와 군대 얘기라고 했다. 그러나 이젠 천만의 말씀이다. 월드컵 개막 후 직장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여성 축구팬이 남성팬을 압도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집 공주님이 축구팬으로 돌변한 것도 이해가 간다.

‘붉은 악마’ 셔츠를 사러 간다는 그 아이에게 슬쩍 물어봤다. “월드컵 끝나면 우리 프로축구도 구경갈까?” 그랬더니 대번에 말을 받는다. “프로축구는 재미없잖아.” 딴은 그렇다. 프로축구가 재미있어야 한국 축구가 산다.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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