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전 성숙한 응원…당당한 모습 세계에 보이자"

  • 입력 2002년 6월 7일 18시 32분


10일 대구에서 열리는 월드컵 한국-미국전이 젊은이들 사이에 번져 있는 반미(反美) 기류와 결부되면서 응원전 경비에 비상이 걸렸다.

경찰 등 관계당국은 만약에 있을지도 모를 사태에 대비해 미국 관련 시설들에 대한 경비 강화와 응원단 분산 등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우발적인 상황을 근원적으로 차단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이다.

응원단 ‘붉은 악마’의 인터넷 게시판 등에는 ‘상기하자 오노’ 등의 구호와 함께 올 초 미국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분패한 김동성 선수의 경기 장면 동영상 등이 올라 있다.

또 일부 네티즌은 9일 밤 미국 축구 대표단이 묵을 대구의 숙소 앞에서 ‘모임’을 갖기 위해 참석자를 모집하는가 하면 미 빙상 쇼트트랙 선수 아폴로 안톤 오노가 묵고 있다는 소문이 퍼진 서울 S호텔 게시판 등에는 ‘당장 내보내라’는 항의성 글이 빗발치고 있다.

교내에 경기 관람시설을 마련한 경희대 총학생회는 10일 경기 시작 전에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얼굴에 축구공 차기’ ‘양담배를 국산담배로 바꿔주기’ 등 행사를 갖기로 했다.

총학생회 측은 이날 배포할 1000여벌의 붉은 티셔츠에 반미 구호를 넣는 방안을 고려 중이며 한양대도 ‘반미 응원단’을 조직했다.

이에 따라 경찰 등 관계당국은 경기장과 수십만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서울 광화문 등 거리응원 지역에서 반미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나 유인물이 등장하거나 구호가 터져 나올 경우와 흥분한 관중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의 미국 대사관 등 미국 관련 시설에 몰려갈 경우를 우려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미국전을 앞두고 우발적 행동을 자제해 달라는 당부를 각종 단체에 보냈다”며 “최근의 반미 기류가 어떻게 불거질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미 대사관 부근에서의 소요에 대비해 대사관 부근에 폴리스 라인을 설치하고 광화문 지역의 거리응원단을 대형 전광판 3개가 새로 설치될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최대한 분산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또 경찰은 5000여명의 경찰관을 동원해 미 대사관 인근 도로와 맞은편의 세종문화회관 뒷길은 통제하는 대신 서울시청과 세종로 사이의 차로 양쪽 2개씩과 인도는 응원단이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할 방침이다.

이 밖에 경찰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외인아파트 등 50여개 미국 관련 시설물에 대한 경비를 강화하고 붉은 악마 회원들의 협조를 얻어 반미 구호가 나오면 응원 함성으로 이를 차단키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서울지하철 시청역 무정차 통과와 제한적 교통통제 등의 방안을 강구 중이지만 수만명이 우발적으로 반미 시위를 벌이면 이를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많은 시민들은 한-미 축구 경기를 반미 감정과 연결시키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또 붉은 악마 인터넷 게시판 등에는 반미 감정을 부추기는 글과 함께 ‘감정적인 대응은 하지 말자’고 자성을 촉구하는 글들도 게재되고 있다.

회사원 김태윤씨(34·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는 “경기와 미국에 대한 감정을 분리할 줄 아는 성숙한 관전 태도가 필요하다”며 “경기 때문에 반미 구호가 터져 나오거나 반미 시위가 발생하면 월드컵 주최국으로서의 이미지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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