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2000 결산]남북 '어깨동무' 전세계에 과시

  • 입력 2000년 10월 1일 18시 49분


【새 천년의 문을 화려하게 연 인류 최대의 축제 시드니올림픽. 16일간 숱한 화제와 감동의 드라마를 일궜던 그 절정의 순간을 되짚어본다.】

▽개폐회식 남북 동시입장

2000년 9월16일 오후 7시27분(한국 시간). 시드니올림픽 주경기장인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를 꽉 메운 11만여 관중은 모두 일어나 뜨거운 박수로 남북의 하나됨을 축하했다.

56년 멜버른올림픽에서 옛 동독과 서독이 단일팀으로 출전한 적은 있지만 분단국이 하나의 깃발 아래 동시 입장한 것은 1896년 근대올림픽이 시작된 이후 사상 처음.

1일 폐회식에서도 남북 선수단은 한데 섞여 입장, 짧지만 깊었던 작별의 정을 나눴다.

▽5회연속 10강실패와 북한의 노골드 충격

개막전 남측 이상철단장과 북측 윤성범단장은 “남북이 단일팀이 될 경우 금메달 25개는 따지 않겠느냐”는 덕담을 나눴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한국은 태권도에서 금 3개와 은 1개를 보탰음에도 금 8개, 은 9개, 동 11개(핸드볼 마라톤 제외)로 12위에 그쳐 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이후 5회 연속 세계 10강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북한도 여자역도 58㎏급에서 금메달이 확실시됐던 세계기록 보유자 이성희가 은메달에 머문 것을 비롯해 은 1개, 동 3개로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이변과 파란 그리고 감동

한국은 전통의 메달밭인 유도와 배드민턴에서 노골드의 충격을 안았다. 레슬링에서도 두 체급 그랜드 슬램의 영광을 안은 심권호만 금메달을 따는 데 그쳤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과 팬들의 외면을 딛고 남자 펜싱과 하키, 사격, 여자 핸드볼과 농구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18세 고교생 강초현은 9월16일 여자 공기권총에서 한국에 첫 메달인 은메달을 안기며 사격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펜싱에선 이상기가 34살의 나이에 남자 에페에서 동메달을 획득했고, 남자 플뢰레의 김영호는 세계 정상에 우뚝 서 그동안 음지에서 묵묵히 흘렸던 땀과 눈물의 보상을 받았다.

만년 준우승팀 남자양궁 단체가 금메달을 따낸 것과 실업팀 3개, 선수 40여명의 척박한 풍토에서 전용 경기장도 없이 떠돌이 훈련을 해온 남자하키가 결승 무대에 오른 것도 국민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신생종목 태권도의 문제점

한국은 8개 체급 중 4개 체급에 출전해 정재은(여자 57㎏급), 이선희(여자 67㎏급), 김경훈(남자 80㎏급)이 금메달, 신준식(남자 68㎏급)이 은메달을 따내 종주국의 자존심을 세우는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태권도는 재미없는 경기운영과 판정시비, 그리고 외국 언론의 외면 속에 세계의 스포츠로 자리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선 남녀 각 6개 체급, 출전선수도 200명으로 늘어날 전망이지만 이에 앞서 경기운영 방법을 보완하고 전 세계에 태권도를 보급하기 위한 지도자 양성에도 힘써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시드니〓장환수기자>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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