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스포츠 X파일]차범근이 서쪽으로 간 까닭은…

  • 입력 1998년 12월 24일 18시 56분


‘이기면 영웅 지면 역적’인 것이 스포츠계 생리라지만 ‘한국의 대표 축구인’ 차범근 감독(45)의 추락에 따른 후유증은 실로 컸다.

세계적인 스트라이커로 명성을 날렸고 대표팀 사령탑을 맡아 4회 연속 월드컵본선진출을 이룩해 냄으로써 ‘축구 대통령’으로 까지 불렸던 그였다. 그러나 월드컵본선에서의 참패와 국내축구 승부조작발언 파문으로 그는 5년간 국내지도자 자격정지라는 중징계를 받고 한국 축구를 등져야 했다.

월드컵에서 도중하차한 뒤 귀국한 그는 패배의 후유증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던 7월중순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승부조작이 저질러지는 축구판’이라는 폭탄발언으로 소용돌이를 몰고 왔다.

차감독과 부인 오은미씨는 이 인터뷰에서 “국내 축구에 승부조작이 있다”고 주장했고 이는 한국 축구의 사활이 걸린 중대사로 간주돼 진상조사가 벌어지는 등 파문은 확산됐다.

국내 프로축구에 지도자나 선수의 담합에 의해 고의 패배가 공공연히 행해진다는 것이 발언의 요지. 파문이 일자 대한축구협회는 곧바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고 “승부조작은 없었다”는 최종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발언의 장본인인 차감독을 중징계하는 선에서 일단락지었다.

차감독이 이전에도 종종 불만처럼 털어놓았던 승부조작설은 당해 프로리그 최종 성적에 의해 다음해 신인 드래프트 순위를 정하는 점에서 일부 하위팀이 리그 막판 자기 팀에 유리하도록 활용했을 것이라는 심증은 있으나 금품을 주고 받는 등 악의적인 승부조작은 없었다는 것이 축구계의 중론.

어쨌든 명확한 규명이 어려운 이 승부조작설 파문은 결국 의혹을 남겨 놓은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월드컵본선기간중 나온 대표팀내 악성루머도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중 여전히 팬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은 과연 차감독이 특정종교를 믿는 선수를 중용했느냐는 것.

6월14일 프랑스월드컵 예선 1차전 멕시코와의 경기. 누구나 인정하는 골잡이 최용수를 기용하지 않은 채 1대3으로 패한 뒤 불거져 나온 이 소문은 벤치에서 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차감독이 특정종교를 믿는 선수를 편애했을 것이라는 추측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차감독은 후일 “종교적인 잣대로 선수기용을 했다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헛소문”이라고 항변했다. 어쨌든 차감독 자신만이 진실을 알고 있을 뿐인 사안이었다.

또 하나 차감독과 협회 기술위원들 사이가 알려진 대로 정말 ‘견원지간’이었느냐는 것.

네덜란드전에서 0대5로 패한 6월21일 기술위원들은 경기가 열린 마르세유에서 긴급회의를 열어 대회 도중 감독해임이라는 사상 초유의 결정을 했고 차감독은 그 다음날 급거 귀국해야 했다.

이처럼 신속하게 감독 해임을 결정한 것이나 후에 차감독이 기술위원을 대표팀에 귀찮게 따라붙는 ‘파리떼’로 묘사하는 등으로 양측의 ‘깊은 골’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표팀 운영에 깊이 관여했던 한 관계자는 “차감독이 기술위원들의 간섭을 받기 싫어한 것은 사실이고 급기야 프랑스에서 그 틈이 크게 벌어지면서 성적부진이 겹쳐 그 갈등이 폭발했다”고 증언했다.

〈권순일기자〉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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