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0월부터 교권 침해 ‘악성 민원인’ 출입 제한 가능하지만… 교장 80% “기준 모호, 민원-소송 우려”

  • 동아일보

초등학교장 1812명 ‘민원 실태’ 설문
“개정법 도움 되지만 한계 뚜렷” 58%
정부 “현장 우려 시행령에 반영할것”

서울 강남구 한 초등학교에서 교장을 지낸 김모 씨는 재직 당시 ‘감정 쓰레기통’이 됐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학교 행정이나 수업에 불만을 가진 학부모들이 담임 교사에게는 물론이고 교장에게 직접 민원을 넣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학부모가 직장에 휴가를 내고 아침부터 학교 정문에서 기다리거나 사전 협의 없이 방문하는 사례가 허다했다”며 “표현만 조금씩 바꿔가며 똑같은 민원을 내 학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사례를 막기 위해 학교장이 교육 활동을 침해하거나 학교 업무를 방해하는 ‘악성 민원인’의 출입을 제한할 수 있는 ‘개정 초·중등교육법’이 10월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초등학교 교장 10명 중 8명은 여전히 법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추가 민원이 발생하거나 소송을 당할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교장 77% “악성 민원인 퇴거 기준 불명확”

19일 한국초등교장협의회의 ‘학교 민원 대응 실태 및 인식 조사’에 따르면 교장 77.1%는 개정 초·중등교육법에 명시된 교육 활동 침해 및 업무 방해 행위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14∼17일 전국 초등학교 교장 1812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개정법은 ‘학교 민원’의 개념을 명확히 정의하고, 민원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교육 활동을 침해하거나 학교 업무를 방해할 우려가 있을 때 학교장이 퇴거 요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실제 교권을 침해하거나 업무를 방해하면 처벌도 할 수 있다.

응답자의 57.9%는 개정법이 민원 대응에 도움될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퇴거를 요청할 때 예상되는 어려움(복수 응답)으로 ‘추가 민원 및 법적 분쟁에 대한 부담’(81.2%)이 1순위로 꼽혔다. 이어 ‘갈등 격화로 인한 돌발 사태 우려’(66.4%), ‘판단 기준 모호성에 따른 학교장의 의사결정 부담’(53.6%) 등의 순이었다.

민원인을 상대로 퇴거를 요청해야 하는 상황으로는 ‘동일 사안에 대한 반복적 민원 제기’(83.6%)가 가장 많이 꼽혔다. 이어 ‘언쟁 또는 감정적 대응이 예상되는 경우’(71.6%), ‘사전 협의 없이 학교 방문을 예고하거나 시도하는 경우’(52.3%) 등이었다.

● 정부 “현장 우려 반영해 시행령 개정할 것”

초등학교 교장들은 교권 보호를 위해 마련된 이번 개정법이 제대로 효과를 내려면 ‘퇴거 요청 불응 시 행정적 조치를 보완해야 한다’(76.1%)고 입을 모았다. ‘퇴거 요청 등에 대한 명확한 기준 및 매뉴얼’(47.2%)과 ‘교육청과 경찰 등의 즉각적인 개입’(52.6%) 등을 요구하는 교장도 많았다.

서울 송파구 한 초등학교 교장 이모 씨는 “악성 민원인 퇴거 요청에 대한 판단 기준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불응하는 민원인에 대한 처벌 조항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일선 학교 대신 교육청이 초기 단계부터 개입하는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남기 전 광주교대 총장은 “일선 교장들이 주저해 퇴거 요청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법적 문제와 책임을 일선 학교가 아니라 교육청이 지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이 같은 현장의 우려를 반영해 시행령을 보완할 방침이다. 이강복 교육부 교원교육자치지원관은 “과도한 악성 민원에 대해 학교장이 취할 수 있는 조치 등 구체적인 퇴거 요청 사례를 반영해 시행령을 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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