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수용소에서 태어난 아들…76살에 아버지 유해 만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2월 3일 17시 07분


3일 오후 제주4・3평화공원 내 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린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결과 보고회’에서 송승문 전 4·3유족회장이 아버지의 유해를 살펴보고 있다. 2026.2.3/뉴스1
3일 오후 제주4・3평화공원 내 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린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결과 보고회’에서 송승문 전 4·3유족회장이 아버지의 유해를 살펴보고 있다. 2026.2.3/뉴스1
“아버지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어요. 유해가 바다에 버려졌을 가능성을 생각해 해류 종착지인 대마도까지 가 위령제를 지내기도 했거든요.”

송승문 씨(76)가 말했다. 이날 송 씨는 생애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났다. 다만 살아있는 아버지가 아니라 유해였다.

제주특별자치도와 4·3평화재단은 3일 제주4·3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에서 ‘4·3 행방불명 희생자 신원 확인 보고회’를 열고 희생자 7명의 신원을 공식 발표했다. 이번에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도외 형무소로 이송된 뒤 행방불명된 희생자 5명과 도내에서 행방불명된 희생자 2명이다. 대전 골령골에서 발굴된 유해 3구(김사림·양달효·강두남), 경산 코발트광산 발굴 유해 2구(임태훈·송두선), 제주공항 발굴 유해 2구(송태우·강인경)다.

이들은 4·3사건이 한창이던 1948∼1950년 사이 군경에 연행된 뒤 행방이 끊겼다. 당시 군경은 체포한 주민들을 제주공항에서 즉결 처형하거나 대전·대구·광주 등 육지 형무소로 분산 이송했다. 육지로 옮겨진 이들 역시 한국전쟁 발발 이후 대부분 총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 씨의 아버지 태우 씨(당시 17세)는 결혼 1년여 만인 1949년 10월 트럭에 실려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공항)으로 끌려간 뒤 행방불명됐다. 그의 유해는 2007년 제주공항 발굴 작업 과정에서 수습됐고 최근에야 유전자 감식을 통해 신원이 확인됐다.

송 씨의 어머니(당시 18세)는 아버지가 끌려간 뒤인 1949년 6월 6일 귀순 주민들을 수용하던 제주 주정공장에서 송 씨를 낳았다. 할머니(당시 41세)도 작은아들(4세)과 함께 수용소에 갇혀 있었는데, 이름이 바뀌는 행정 착오로 네 살배기 아들과 함께 전주형무소로 보내져 10개월형을 살았다. 작은아들은 홍역을 앓다 숨지고 말았다.

가족의 비극을 알게 된 송 씨는 2019년 4·3희생자유족회장을 맡는 등 진상 규명 활동에 평생을 바쳤다. 송 씨는 “아직도 채혈하지 않은 유가족이 많다고 들었다”며 “유가족들의 적극적인 채혈 참여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날 함께 유해를 확인한 송두선 씨(당시 29세)의 손자 강준호 씨는 “어머니(78)는 아버지가 아닌 외가 성씨를 사용하며 살아왔다”며 “할아버지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 아버지가 돌아왔으니 성을 다시 송 씨로 바꾸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이날 보고회에서는 송 씨와 강 씨 외에도 임태훈 씨(당시 20세)의 딸 임진옥 씨(77), 강두남 씨(당시 25세)의 손자 강수철 씨(52), 김사림 씨(당시 25세)의 손자 김남훈 씨(51), 양달효 씨(당시 26세)의 아들 양계춘 씨(75), 강인경 씨(당시 46세)의 손자 고남영 씨(53) 유해가 가족과 상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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