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아파트 4층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 60대 남성이 불을 지른 후 그 자리에서 숨졌고, 중상자 2명을 포함해 다른 주민 총 13명이 다쳤다. 독자 문지영 씨 제공
2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21층 아파트에서 60대 남성이 불을 질러 숨지고 아파트 입주민 등 13명이 다쳤다. 경찰은 층간소음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확한 범행 동기를 수사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이날 오전 8시경 농약살포기를 기름통과 연결해 화염방사기처럼 이용해 불을 질렀다. 이 화재로 A 씨가 숨지고 중상자 2명을 포함해 13명이 다쳤다. 중상자는 70, 80대 여성 2명으로 전신에 화상을 입고 4층에서 추락했다. 경찰 관계자는 “A 씨가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분신했는지, 아니면 자신이 낸 불에 휩싸인 건지는 부검 및 감식을 해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A 씨는 범행 약 15분 전에 아파트와 1.5km가량 떨어진 인근 빌라 앞 쓰레기 더미에도 농약살포기로 불을 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지난해 말까지 이 아파트 3층에 살다가 이사 갔던 주민이다. A 씨는 아파트에 살 때 주민들과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9월에는 4층 주민과 쌍방 폭행까지 간 끝에 경찰이 출동했다. 때문에 경찰은 A 씨가 층간소음 원한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수사 중이다.
불이 난 아파트 근처에 있는 A 씨의 집에서는 유서와 현금 5만 원이 발견됐다. 유서에는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봉천동 아파트 화재. 독자 제공
농약살포기에 기름 넣고, 화염방사기처럼 불질러… 사전연습도
60대 남성 봉천동 방화, 14명 사상 작년까지 살며 층간소음 갈등… 위층 주민과 쌍방 폭행까지 벌여 범행 15분전 인근서 불 지르는 연습… 지하주차장 오토바이서 기름통 발견 70, 80대 女 2명 화상입고 추락 중상, 용의자 사망… “미안하다” 가족에 유서
2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아파트에서 불을 지른 60대 A 씨는 기름이 담긴 통과 농약살포기를 연결해 ‘화염방사기’처럼 만들어 범행을 저질렀다. 범행 방식과 쓰인 도구 등을 고려하면 미리 범행을 계획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A 씨는 자신이 지른 불에 숨졌고, 아파트 4층에 살고 있던 70, 80대 여성 2명은 전신 화상 끝에 추락해 중상을 입었다. 연기를 마시거나 호흡 곤란을 호소하는 입주민 등을 감안하면 총 부상자는 13명에 달한다. 2019년 4월 19일 경남 진주시에서 벌어진 안인득 방화 살해 사건(5명 사망, 17명 부상) 이후 최악의 아파트 참사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 과학수사대가 불이 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흰색 기름통이 실린 오토바이를 조사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이날 사건 현장에서 만난 아파트 인근 주민들은 화재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60대 이모 씨는 “(아파트) 4층에서 할머니가 혼자 나와 에어컨 실외기 선과 안테나 선을 붙잡고 매달렸다가 힘이 빠졌는지 추락했다”고 말했다. 아파트 5층에 사는 정모 씨는 “오전 8시에서 8시 15분 사이에 ‘펑’ 터지는 소리를 들었고 이후에 불이 났다”며 “집에 그을음이 들어와 며칠간 집에 못 들어갈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A 씨가 층간소음 문제로 원한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 중이다. A 씨는 지난해까지 해당 아파트 3층에 살면서 층간소음 문제 등으로 다른 주민들과 마찰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에는 바로 위층인 4층 주민과 이 문제로 쌍방 폭행까지 벌였다. 당시 양쪽이 상대방의 처벌을 원치 않아 형사처벌은 면했다.
중상을 입은 피해 여성 중 한 명은 A 씨와 실제 갈등을 겪었던 가구의 구성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아파트 주민은 “평소에도 A 씨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근처에 접근도 하지 못했다. (다른 주민과) 많이 싸우고 시비가 붙곤 했다”고 말했다. 한국환경공단의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층간소음 건수는 총 3만3027건에 달한다. 5년 전(2만6297건)에 비해 24.5% 증가했다.
범인이 아파트에 불을 지르기 전 21일 오전 농약살포기로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건물에 불꽃을 발사하고 있다. 남성이 손에 든 농약살포기가 바닥의 흰색 기름통과 연결돼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범행 전 ‘사전 연습’을 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도 드러났다. 그는 아파트 방화 약 15분 전 1.5km 떨어진 인근 빌라 앞 쓰레기더미에 농약살포기로 불을 질렀다. 인근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흰색 모자와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A 씨가 기름통과 연결된 농약살포기를 쥐고 불을 지르는 모습이 포착됐다.
경찰은 A 씨가 농약살포기를 개조해 방화에 사용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그가 사용한 농약살포기는 현장에서 불탄 상태로 발견됐다. 해당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선 A 씨의 오토바이에 기름이 가득 찬 기름통이 실려 있는 것이 확인됐다. 화재 현장 인근에 있는 A 씨의 집에서는 유서와 현금 5만 원이 나왔다. 유서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 적힌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감식과 부검을 통해 A 씨가 분신을 했는지도 확인 중이다.
경찰은 층간소음 갈등을 유력한 범행 동기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외 다른 원인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평소 A 씨는 별다른 이유 없이도 아웃들에게 욕설을 내뱉어 마찰을 빚었다. 인근 주택가에 사는 80대 남성은 “A 씨는 생전 자기 집 인근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불평하며 자주 욕을 퍼부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그의 평소 언행과 2019년 안인득 사건 사례 등을 근거로 정신질환이 범행 배경일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관악구는 해당 아파트 주민들에게 한 끼 9000원가량의 식사비를 지원하고, 인근 숙박업소와 연계해 화재 복구 시까지 숙박도 제공할 방침이다.
한편 최근 아파트 내 주민 간 갈등이 참극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7월 서울 은평구에선 30대 남성이 같은 아파트 주민을 이유없이 일본도로 살해했고, 8월엔 최성우(29)가 아파트 흡연장에서 망상에 시달리다가 다른 입주민 남성을 때려 살해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