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대피장소 3번 바꾼 한국 vs 인원수-경로까지 안내하는 호주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28일 03시 00분


[역대 최악 산불]
美는 권고 아닌 강제 대피 명령
“국내 막연한 안내 개선해야”

경북 산불 발생 엿새째인 27일 오전 경북 청송군 파천면 지경리의 한 마을에서 주민 박종인(79) 씨가 불에 타버린 자택의 잔해를 바라보고 있다. 박 씨는 “주민대피령이 발령된 25일 오후 자택을 떠나 청송국민체육센터로 피신했다”라며 “오늘 대피소를 나와 집에 돌아와보니 집이 통째로 불에 타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이어 “타지에서 살다가 고향인 청송으로 돌아온지 17년째인데 이런 날벼락을 맞을지 꿈에도 몰랐다”라고 한탄했다. 청송=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1. 경북 청송군은 앞서 25일 주민들에게 산불을 피해 대피하라고 재난문자를 보내면서 대피 장소를 3번이나 바꿨다. 처음에는 ‘파천면’으로 대피하랬다가 30분 뒤에는 ‘안덕면’으로, 그 다음에는 ‘안전지대’로 대피하라고 문자를 보냈다. 마지막에는 ‘관내 대형 리조트’로 가라는 문자가 왔다. 대피 안내 장소가 자꾸 달라지자 주민들은 혼란에 빠졌고, 이날 청송에서 차를 타고 대피하던 60대 여성이 결국 산불에 숨졌다.

#2. 미국은 대형 산불이 발생하면 강제 대피 명령을 내린다. 1월 로스앤젤레스(LA)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때 경찰이 집집마다 방문해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2020년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산불 당시에도 당국은 즉각 강제 대피령을 내린 뒤 공무원들이 직접 나가 도로를 폐쇄하고 긴급 대피소를 마련해 주민들을 안내했다.

영남권 산불 피해가 커지는 가운데 우리나라 산불 대피 체계를 대대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피하지 못해 집에 머무르다가 숨지거나, 산불에 휩싸인 도로에 나섰다가 차 안에서 사망한 사례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반면 산불 대응 선진국으로 꼽히는 나라들은 ‘사전 준비’ 중심의 대응 체계를 갖추고 있다. 미리 시민들에게 대피 관련 가이드북을 배포하거나 대피 수단과 장소, 관내 노약자 규모까지 반영한 매뉴얼을 만들어 활용한다.

호주는 산림 인접 지역 주민에게 평상시 마을 단위의 ‘산불 대피 가이드북’을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는 지역 지리 정보, 피난 대책, 대피 경로, 대피소 정보, 노약자 등 재난 취약계층의 수, 이송 계획, 대피 수단 등이 상세히 담겨 있다. 주민들이 산불 발생 시 어디로, 어떻게, 누구와 함께 대피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셈이다.

미국도 사전 준비를 중시한다. 미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홈페이지 ‘산불 시 안전행동 요령’에서 “지금 준비하라”며 예방 단계를 강조했다. FEMA는 “집으로부터 최소 9m 떨어진 곳에 불연소(타지 않는) 구역을 만들어 두고, 대피용 N95 마스크와 비상 물품을 사전에 준비하라”고 안내했다.

반면 이번에 확인된 것처럼 우리나라 산불 대피는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 같은 추상적인 내용의 재난문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대피 장소가 특정되지 않거나 청송군 사례처럼 바뀌는 경우도 있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관리학과 교수는 “국내 재난문자 내용의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꾸준히 제기돼 온 지적”이라며 “캐나다도 주민들이 어디로 대피해야 하며 어디가 안전한지 등 위치를 구체적으로 안내한다”고 말했다.

#영남권 산불 피해#산불 대피 체계#재난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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