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가 너무 빠르다. 미래 기후를 예측하는 과학자들의 전망은 해를 거듭할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최근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온실가스가 현재와 유사한 추세로 배출될 경우 2100년쯤 우리나라에서는 ‘여름철’이 1년의 절반까지 길어지고 나흘 중 하루는 ‘폭염’에 시달리게 된다. 또 여름철 물 사용량은 매달 최대 29%씩 늘어날 전망이다.
지구온난화를 넘어 ‘지구 열대화’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뜨거워지는 지구를 더 체감케 하는 표현을 찾기 어려워서일 것이다. 하지만 의도와 무관하게 이 용어들은 기후 위기가 ‘기온 변화’에 국한된다는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정작 기온 상승보다 중대한 문제는 ‘물 순환 체계의 교란’과 그것이 몰고 올 파국적인 재난 상황이다. 재작년 50년 만에 닥친 최악의 가뭄에 이어 불과 몇 달 후 국지성 폭우로 많은 인명 피해를 입는 등 ‘재난의 일상화’는 이미 현실이 된 지 오래다.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지난 1월 스페인 일부 지역에서는 기온이 30도 가까이 올랐다. ‘역사상 가장 건조한 겨울’이 끝나갈 때쯤 카탈루냐와 안달루시아 도시들은 물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하기 위해 가뭄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했다. 중남미 지역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이 지역 기후 관련 사망자는 수만 명에 이른다. 피해액은 최소 210억 달러(약 28조7000억 원)로 분석됐는데 원인은 불볕더위와 가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극심한 가뭄은 에너지, 식량, 건강, 심지어 생태계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런 점에서 기후 위기는 곧 ‘물의 위기’이면서 동시에 그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식량 및 건강 위기이다. 최근 농산물 가격 폭등과 몇 년 전 코로나19 대유행의 원인까지도 물의 위기에서 찾는 이유는 물의 중요성과 그것이 갖는 캐스케이드 효과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첫째, 땅으로 스며드는 물 손실을 막기 위해 노후 상수관로 교체에 투자하는 것이다. 2022년 기준으로 전국 상수관로는 24만839㎞에 달한다. 지구를 6바퀴쯤 돌 수 있는 길이다. 이 중 매설된 지 20년이 넘는 노후 상수관로는 8만8871㎞로 전체의 36.9%나 된다. 전국으로 공급되는 수돗물 총량은 68억800만 t이다. 이 중 약 10분의 1인 6억7400만 t이 땅속으로 사라진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7번째로 큰 합천댐의 저수 용량과 맞먹는 양이다.
둘째, 지하철 등 지하 공간 개발 과정에서 밖으로 흘러나오는 유출 지하수를 버리지 않고 활용하는 것이다. 2020년 통계로 보면 전국에서 발생하는 유출 지하수는 연간 1억4000만 t에 달한다. 이는 팔당댐 저수 용량 2억4000만 t의 58%에 해당하는 양이다. 이 중 11%만 도로 살수 등으로 이용되고 나머지는 하수나 하천 유지용수로 방류되고 있다. 버려지고 있는 유출 지하수를 공원, 냉난방, 친수 공간 등에 활용할 수 있다면 도시 물순환을 촉진하는 것은 물론 경제적 가치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강우 독립적인 수자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는 비에 의존하지 않는 식수 및 비음용수 공급원을 말한다. 해수 담수화와 물 재이용이 대표적이다. 특히 사용한 물을 다시 쓰는 물 재이용은 가뭄 대응 수단으로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세운 하수를 재이용한 공업용수 공급 계획은 신규 수자원 개발을 하지 않고 안정적인 물 공급을 꾀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대만의 TSMC 역시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물을 확보하기 위해 산업용 재생수 플랜트를 건설하고 있다.
자연적으로 이용 가능한 수자원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물 재사용 시스템 구축은 증가하는 물 수요를 충족할 가장 비용 효과적인 수단이다. 특히 산업에 재이용되는 물은 사람이 접촉할 가능성이 적어 처리 및 재사용 비용이 적게 들고 에너지 집약도가 낮다. 가뭄에 내성이 강한 사회의 필수 조건은 물 절약과 재이용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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