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데 찜질방에서 주무시라”…노숙인에게 10만원과 ‘인생’ 책 건넨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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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12월 26일 07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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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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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말이 있다. 종교적 의미가 담긴 말이지만 법 종사자들 모두가 가슴에 새기고 있는 교훈이기도 하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러한 일이 지난 20일 부산지법 동부지원에서 일어났다.

판사가 노숙인의 죄를 엄중히 물었지만 “건강을 챙시기라”며 따뜻한 위로의 말과 책, 그리고 체감온도 영하 10도를 밑도는 날에 찜질방에서 몸을 녹이면서 앞으로 살아갈 방도를 생각해보라며 10만원을 건넨 것이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1단독 박주영 부장판사는 특수협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50대 남성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면서 보호관찰 2년을 아울러 명령했다.

A씨는 지난 9월 28일 오전 1시쯤 부산의 한 편의점 앞에서 또 다른 노숙인 B씨와 함께 술을 마시다 말다툼을 끝에 흉기를 꺼내 위협한 혐의를 받는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제6회 대한민국 법원의 날’을 앞둔 2020년 9월 11일 사법부의 발전과 인식 개선 등에 기여한 우수 종사자들에게 표창장 수여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형주 경위주사보, 박주영 부장판사, 김명수 대법원장, 권영하 조정위원, 안경희 등기주사보. (대법원 제공) 2020.9.11/뉴스1
김명수 대법원장이 ‘제6회 대한민국 법원의 날’을 앞둔 2020년 9월 11일 사법부의 발전과 인식 개선 등에 기여한 우수 종사자들에게 표창장 수여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형주 경위주사보, 박주영 부장판사, 김명수 대법원장, 권영하 조정위원, 안경희 등기주사보. (대법원 제공) 2020.9.11/뉴스1
박 부장판사는 △A씨가 현장에서 흉기를 스스로 발로 밟아 부러뜨린 점 △피해자 B씨가 처벌을 원치 않는 점 △초범인 점 △개과천선할 여지가 있는 점 등을 들어 실형을 면해줬다.

선고 후 박 부장판사는 “생계를 어떻게 유지하느냐”며 걱정과 함께 “주거를 일정하게 해 사회보장 제도 속에 살고 건강을 챙기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러면서 A씨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파악, 중국 작가 위화가 쓴 ‘인생’(원제목 활착 活着·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책과 함께 현금 10만원을 챙겨줬다.

박 부장판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이례적인 한파로 노숙을 하는 A씨가 염려돼 찜질방에서 자라는 뜻에서 돈을 건넸다고 밝혔다.

A씨는 박 부장판사가 “어머니 산소를 꼭 찾아가 보시라”는 말에 고마움에 눈시울을 붉힌 것으로 알려졌다.

박 부장판사와 노숙인의 이야기는 법정 상황을 지켜본 이들이 감동을 받아 전하면서 널리 퍼졌다.

박 부장판사는 2019년에도 동반자살을 시도했다가 혼자만 살아나 자살방조 미수 혐의로 기소된 이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지금보다 좋은 날이 올 것으로 확신한다“는 편지와 함께 차비 20만 원을 건네는 등 법의 목적이 처벌이 아닌 개선에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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