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1개 댐 올여름 강우량, 예년 1.5배… “넘치기전 리모델링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4일 03시 00분


[소양댐 50년, 기후위기 넘어라]〈1〉 대형댐 치수능력 경고 목소리
25년후엔 4년마다 댐 넘치는 호우
설계 당시와 기후 달라 감당 못해… 넘쳐흐르면 댐 붕괴 등 대형참사
“높이 올리거나 보조댐 만들어야”

올해로 준공 50주년을 맞은 강원 춘천시 소양강댐의 올해 모습. 높이 123m, 저수 용량 29억 t으로 수도권에 하루 약 400만 t의 식수를 공급하고 있다. 최근 기후위기로 댐이 감당하기 어려운 극한호우가 내릴 가능성이 커지면서 댐 리모델링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제언이 나온다. 한국수자원공사 제공
올해로 준공 50주년을 맞은 강원 춘천시 소양강댐의 올해 모습. 높이 123m, 저수 용량 29억 t으로 수도권에 하루 약 400만 t의 식수를 공급하고 있다. 최근 기후위기로 댐이 감당하기 어려운 극한호우가 내릴 가능성이 커지면서 댐 리모델링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제언이 나온다. 한국수자원공사 제공
고개를 들고 까치발을 하고 서도 높이 123m의 거대한 사력(沙礫)댐 너머는 보이지 않았다. 자갈과 모래로 쌓은 사력댐 벽면에는 지그재그 길이 나 있다. 이 길을 한참을 걸어 올라야 댐 정상에 다다른다. 댐 위로는 산에 둘러싸인 거대한 소양호가, 아래로는 춘천 시내로 흘러가는 물줄기가 보인다. 소양호와 맞닿은 산 아래쪽에 ‘소양강 다목적댐’이라는 큰 글씨가 보였다.

10월15일 준공 50년을 맞는 강원 춘천시 소양강댐을 지난달 18일 찾았다. 유역 면적이 서울의 4.5배(2703㎢)에 달하는 거대한 댐이 만든 소양호는 깊고도 잔잔했다.

소양강댐은 박정희 정부 시절 경부고속도로와 서울지하철과 함께 3대 국책사업 중 하나였다. 당시 과잉투자 논란을 빚었던 소양강댐은 50년이 지난 지금 ‘한강의 기적’을 잉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수기에 물을 가둬둘 수 있는 홍수 조절 용량이 5억t으로 매년 장마철이면 물에 잠기던 수도권 지역이 주거지로 거듭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 송파 잠실 반포 등이 상습 침수에서 벗어나며 지금의 강남 지역이 탄생했다. 소양강댐은 수도권에 하루 약 400만 톤, 서울시민 전체가 마실 수 있는 식수를 비롯해 용인·수원 등 반도체 산단 등에 연간 12억㎥의 생활·공업용수와 3200만㎥의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올해로 준공 50주년을 맞은 강원 춘천시 소양강댐의 1972년 건설 공사 당시 모습. 한국 수자원공사 제공
올해로 준공 50주년을 맞은 강원 춘천시 소양강댐의 1972년 건설 공사 당시 모습. 한국 수자원공사 제공
1973년 소양감댐 이후로 1976년 남강댐, 1980년 대청댐, 1985년 충주댐 등이 건설되며 홍수 및 가뭄에 대응하는 물 조절과 용수 공급 등의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극한 홍수와 극한 가뭄을 넘나드는 기후 위기가 일상이 되면서 소양강댐을 비롯한 국내 댐들의 이·치수 능력이 한계에 이르렀다.

올여름 법정 홍수기(6월 21일~9월 20일) 동안 전국 21개 다목적 댐에는 예년의 1.5배에 달하는 비가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에 경북 영주댐과 충남 보령댐에는 각각 1362.5㎜, 1637.9㎜의 비가 내리며 예년의 2.15배, 2.06배 많은 강우량을 기록했다. 전국 21개 댐 중 올여름 강우량 증가율이 가장 적었던 소양강댐에는 예년을 약간 웃도는 1.02배가 내렸다.

이같이 예년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강우량에 1980년 이후 43년 만에 처음으로 7월 15일 댐의 물이 넘쳐 흐르는 월류(越流)가 발생하기도 했다. 1957년 지어진 충북 괴산댐에서다. 댐의 물이 넘치면 자칫 댐이 붕괴되는 대형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다행히 이번 괴산댐의 월류는 3시간 만에 멈췄고, 안전 진단 결과 붕괴 우려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댐이 지어질 때와 완전히 달라진 미래의 강우 빈도와 강우량을 감안해 홍수설계량을 검토하고 댐을 ‘리모델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18일 소양강댐 벽의 지그재그 길을 올라 정상에 서니 그 반대편에는 거대한 콘크리트 경사길이 보였다. 댐에 가둬둔 물이 소양강 하류로 내려갈 수 있는 길, 여수로다. 한국수자원공사 소양강댐 지사 관계자는 “여수로 수문을 열면 위에서 물이 쏟아지면서 ‘고래’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여수로를 열면 쏟아지는 물의 양이 워낙 많아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히며 용솟음치는 모습이 마치 물을 뿜어내는 고래 같아 보인다는 의미다. 50년 동안 ‘고래’를 볼 수 있던 것은 단 17번. 댐의 규모가 워낙 큰 덕에 어지간한 수준의 강우로는 수문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소양강댐의 진가는 1984년 대홍수 때 발휘됐다. 그해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사흘간 720㎜의 폭우가 내리며 소양강댐 역시 계획 홍수위인 203.9m를 단 5m여만 남기고 차올랐다. 댐이 넘치기 직전까지 물을 가두고 버텨내며 한강 인도교 수위를 1.23m 낮출 수 있었다. 1990년 9월 중부지방 폭우 때도 한강 인도교 수위가 1900년 이후 역대 세번째로 높은 11.27m에 달했지만, 소양강댐의 수위 조절로 인도교 수위를 2.05m가량 내렸다.



● 수도권 홍수 구하던 소양강댐 50주년

6년 반이라는 대공사를 거쳐 1973년 완공된 소양강댐은 당초 수력발전댐으로 지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북한강 수계를 조절할 대용량 댐의 필요성이 제기되며 전력뿐 아니라 홍수 조절과 용수 공급까지 가능한 다목적댐으로 용도를 변경했다. 댐 높이(123m)를 두 배 넘게 높이고, 저수 용량(29억t)은 3배 가까이 늘렸다. 당시 정부 예산의 6분의 1수준인 321억 원이 투입됐다.

서울 송파, 잠실, 반포 등 지금의 강남 일대는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상습 침수지역이었다. 강남을 비롯해 고질적인 홍수 피해를 겪던 한강 주변이 도시로 안정적으로 기능할 수 있었던 데는 소양강댐 덕택이 크다.

홍수뿐 아니라 가뭄과 전력난을 버텨내는 데도 힘이 됐다. 제2차 석유파동으로 심각한 전력난을 겪었던 1973년 전국 수력발전 총량의 3분의 1을 담당했고 1978년과 1994년 전국적 가뭄 때도 수도권에 안정적으로 용수를 공급했다. 건설 당시 세계 4 규모의 댐(현재 세계 5위)을 두고 ‘과잉 투자’라는 비판도 거셌지만 결과적으로는 미래를 내다본 투자였던 셈이다.



●“4년에 한 번 댐 넘칠 위기…앞으로 50년 대비해야”

하지만 기후 위기를 실감하기 시작한 2000년대부터 다목적댐으로서 소임을 다했던 소양강댐을 비롯해 국내 대형 댐의 안전과 치수 능력을 점검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과거 강우 빈도와 강우량으로 설계돼 기후 위기에 대응한 물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2002년 8월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루사’가 경종을 울렸다. 감사원은 집중호우 관련 댐 안전도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과거 1970~80년대 주요 댐 건설 당시에는 하루 가능최대강수량을 511~777㎜로 고려해 건설됐지만, 루사 때 하루 동안 강릉에 내린 877㎜의 비가 각 댐 상류에 재현될 경우 붕괴 위험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런 지적에 소양강댐은 2004~2010년 6년에 걸쳐 추가로 물을 방류할 수 있는 문인 보조여수로를 지어 방류 능력을 초당 7500㎥에서 1만4200㎥로 끌어올리는 임시 처방을 했다.

문제는 지난 20여년간 기후 위기가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최근 30년(1991~2020년) 동안 강수량은 과거 30년(1912~1940년)에 비해 135.4㎜ 증가했다. 그에 비해 강수일수는 21.2일 감소했다. 단시간에 집중적으로 비가 내리는 ‘극한 호우’가 잦아졌다는 뜻이다. 기상청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기후센터는 지난해 우리나라의 100년 빈도 극한 강수량(187.1~318.4㎜)이 20년 후에는 29%, 40년 후에는 46%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100년 빈도 댐이 3.7년 빈도 댐으로

올여름도 전국 21개 다목적댐에는 평균적으로 예년의 1.5배, 최대 840㎜가량 많은 비가 쏟아졌다. 1975년 지어진 섬진강댐은 49년간 평균 강우량(768.7㎜)보다 657.0㎜ 많은 1425.7㎜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예년의 1.85배에 달한다. 안동댐에는 47년간 강우량 평균(668.2㎜)의 1.88배 많은 1257.4㎜의 비가 내렸다.

환경부는 현재 100년 빈도의 댐과 하천 제방의 치수 안전도가 2050년 무렵 최대 3.7년까지 낮아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지을 당시 100년에 한 번 오는 비에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했지만 25년 후에는 4년에 한 번꼴로 댐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비가 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홍수 지역도 변화하고 있다. 한강 유역은 홍수량이 감소(-9.5%)하는 반면 금강(20.7%), 낙동강(27%), 영산강(50.4%), 섬진강(29.6%) 유역의 홍수량은 증가했다.

권현한 세종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에 따르면 소양강댐은 50년간 평균 강우 증가량이 148.6m로 21%가 늘었고, 올해 봄 극심란 가뭄을 겪은 주암댐은 준공 이후 33년간 강우 증가량은 209.2mm로 28% 나 늘어났다. 권 교수는 “댐이 지어진 30~50년 전 당시 데이터는 현재로서는 그 빈도를 논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극한 강우량의 빈도와 양이 달라졌다”며 “이미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들은 기존 댐을 재정비하고 있다. 우리 역시 기존 댐 높이를 높이거나, 보조댐을 짓는 등 앞으로의 50년을 고려한 리모델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양강댐#리모델링#기후위기#대형댐#치수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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