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발한 지하차도 조성 사업… 침수 등 기후변화 관련 ‘재난 안전’ 기준 여전히 불안

  • 동아경제
  • 입력 2023년 8월 21일 16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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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호우’ 등 기상 이변 관련 안전 우려 목소리↑
올해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매년 ‘지하’ 인명사고
교통난 해소 등 장점 불구 침수·화재 등에 취약
기후변화로 과거 강우 데이터 기반 방재대책 실효성 의문
“강남역 방재목표 시간당 110mm인데 작년 116mm 폭우”
“‘효율’보다 ‘안전’ 중시하는 도시계획 접근 필요”

지난달 15일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제2지하차도 진입도로에서 소방당국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지난달 15일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제2지하차도 진입도로에서 소방당국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최근 영동대로 복합개발 내 지하차도 설치,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경부간선도로 지하화 등 국내 주요 도로 대규모 지하차도 조성 사업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도로 지하화가 향후 발생할 재난 대응 측면에서 취약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지하차도는 그동안 교통 체증과 소음 및 분진, 지역 단절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이 부각됐다. 하지만 최근 집중호우로 인해 오송 지하차도(청주 소재 오송 궁평제2지하차도)가 물에 잠겨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등 지하 공간 내 인명사고가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면서 기존 방재 대책으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하차도가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침수나 화재 등 사고 발생 시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보다 전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 역시 기후변화를 고려해 지하차도 조성 사업 등과 관련된 설계 지침 및 방재 기준 등을 강화하고 있지만 예측 범위를 크게 벗어난 기상 이변 가능성이 있어 현행 재난 관리 체계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하차도 설치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등 시민 우려를 근본적으로 불식시킬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 ‘극한 호우’ 등 기상 이변↑… 공포의 도로가 된 ‘지하차도’
기후변화 영향으로 국내에서 기록적인 폭우 현상이 잦아지고 있다. 지난 7월 27일 기상청은 올해 장마가 누적 강수량 역대 3위, 일평균 강수량 역대 1위 등 역대급 기록을 남겼다고 발표했다.

장마 기간 강수 일수는 21.2일로 평년과 비슷했지만 누적 강수량은 648.7mm로 1973년 관측 이래 역대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일평균 강수량으로 환산하면 30.6mm로 역대 가장 많은 비가 내린 것으로 집계됐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지난달 기상청은 서울 동작구에 ‘극한 호우’ 관련 긴급재난문자를 처음으로 발송했다. 작년 중부지방에 내린 집중 호우를 기준으로 ‘1시간당 50mm, 3시간당 90mm 이상’ 등 두 조건을 충족하면 기상청이 직접 재난문자를 발송할 수 있도록 관련 법규가 개정된 바 있다. 기상청 집계에 따르면 극한 호우 기준에 부합하는 비는 지난 2013년 48건에서 2021년 76건, 2022년 108건 등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였다. 연평균 8.5%씩 늘어나는 셈이다.

국내 집중 호우 현상은 갈수록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50년간 시간당 50mm 이상 강수일수는 1982년까지 연평균 2.4일 수준을 유지했지만 2012년부터 2021년까지는 6.0일로 늘어난 상황이다. 또한 국립기상과학원은 현 수준과 유사하게 온실가스 배출을 지속하는 상황(고탄소 시나리오, SSP5-8.5)에서 21세기 전반기(2020~2040년), 중반기(2041~2060년), 후반기(2081~2100년) 등의 하루 최대 강수량이 현재보다 각각 14%, 28%, 36%씩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상위 1% 극한 강수 일수도 0.2일에서 0.3일, 0.6일 등으로 각각 증가하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환경연구원은 서울지역 연중 1일 최대 강수량이 가까운 미래에 166mm를 기록하고 조금 더 먼 미래에는 184mm 수준을 넘어 198mm 수준으로 강수량이 가파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기후 관련 다양한 기관의 전망 속에 인명사고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올해는 청주 궁평제2지하차도에서 14명이 숨졌고 작년에는 포항 인덕동 소재 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에서 주민 7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8월에는 서울 신림동 다세대주택 반지하 주택에서 일가족 3명이 쏟아져 들어오는 물살을 피하지 못하고 변을 당했다. 2020년에는 부산 초량동과 대전 판암동에서 지하차도가 침수되면서 총 4명이 사망했다.

장점이 부각되면서 대도시권에서 꾸준히 늘어난 지하차도의 침수 피해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다. 2015년 3건이었던 지하차도 침수사고 발생 건수는 2016년 8건, 2017년 24건, 2018년 10건(1~7월 기준) 등으로 늘어난 것으로 집계(감사원 조사 내용)됐다. 전국 지하차도 수는 총 925개(2021년 기준)로 확인됐고 서울시 내 지하차도 규모는 총 164개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총 연장이 54km, 총면적은 88만3411㎡에 달한다.
지난달 15일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제2지하차도에서 생존자를 구조하고 있다. 사진=채널A 갈무리
지난달 15일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제2지하차도에서 생존자를 구조하고 있다. 사진=채널A 갈무리
○ 현재 추진 중인 지하차도 조성 사업 ‘안전’ 우려↑
특히 올해는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궁평제2지하차도 참사가 발생하면서 지하차도 안전에 대한 우려가 국민이 체감할 수준까지 높아졌다는 평가다.

자연스럽게 향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가능성이 높은 영동대로 복합개발 내 지하차도 설치와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경부간선도로 지하화 등 현재 계획된 대규모 지하차도 조성 사업 추진에 대한 안전 대책에 많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사업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절에 기본계획이 수립된 프로젝트다. 영동대로 지하에 광역급행철도(GTX) 등 대중교통 복합환승센터와 상업시설 등을 조성하고 지상을 녹지광장으로 변모시키는 사업이다. 침수 관련 안전 이슈가 불거진 것은 지상광장을 만들기 위해 약 480m 길이 대형 지하차도 설치가 계획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도심광장 효용성과 도시경관 등을 고려한 최적 계획이라고 강조하지만 폭우로 인해 지하차도 참사가 발생하면서 안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해당 지역은 주변보다 지대가 낮아 침수 위험성이 상존하는 곳으로 꼽힌다. 감사원은 최근 강화된 설계기준으로 사전 침수 대책 등을 수립하도록 권고하기도 했다.

여기에 지하차도가 완공되면 시간당 최대 6000여대 차량이 통과하고 교통 이용객이 하루에만 6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침수 등 재난 발생 시 오송 지하차도 참사보다 훨씬 큰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오는 2028년 개통을 목표로 올해 하반기 착공을 앞두고 있는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사업도 안전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프로젝트다. 이번에 참사가 발생한 오송 지하차도처럼 하천변인 중랑천 인근에 지하도로가 조성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중랑천변은 서울 내 상습 침수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집중 호우로 중랑천 수위가 상승했고 동부간선도로 양방향은 전 구간이 전면 통제된 바 있다.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프로젝트로 추진 중인 경부간선도로 지하화 사업도 침수 관련 대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양재에서 반포까지 이어지는 약 6.9km 구간에 지하도로를 설치하고 지상에 도로와 공원 등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경부고속도로는 통행량이 국내 최대 규모인 도로로 침수와 화재, 교통사고 등에 대한 보다 철저한 방재 대책이 요구된다. 이밖에 경인고속도로와 경기도 자유로, 서울 테헤란로, 언주로, 도곡로 등도 연구용역을 진행하거나 예비타당성 조사를 시작하는 등 지하화 계획을 검토 중인 단계다.
○ ‘효율’ 위한 지하차도 대신 ‘안전’에 중점 둔 사업 추진해야
정부와 지자체 등은 현재 추진 중인 지하차도 조성 사업이 철저한 타당성 조사와 설계기준 강화 등 안전대책을 마련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극단적인 기상 이변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빈도 개념 등 과거 데이터에 기반한 방재성능목표(홍수, 호우 등으로부터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지역별로 설정, 공표한 강우량)와 설계기준 상향 등의 대책이 충분히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과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등은 ‘200년 설계빈도(일정 기간 동안 가장 많은 비가 내린 날의 강수량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하는 설계 기준)’를 적용해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데 두 사업은 각각 시간당 120mm, 114mm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며 “하지만 과거 기록상 200년 빈도에 해당하는 폭우가 최근에는 1년 빈도일 수 있고 예외가 일상이 된 상황에서 과거에 통용되던 기준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고 기상청에 따르면 작년 8월 서울 동작구에는 ‘500년 빈도’에 해당하는 시간당 141.5mm의 비가 내렸고 강남구에는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사업의 200년 설계빈도에 육박하는 시간당 116mm의 비가 내렸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0년 만에 상향 조정된 서울시 방재성능목표는 침수 취약지역인 강남역 일대가 시간당 최대 110mm, 다른 지역은 100mm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하차도 조성 사업에 대한 재난 등 안전 관련 재검토 의견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공간이 부족한 과밀 상황에서 지하차도 건설은 필연적으로 보이지만 위험 요인을 간과한 개발 프로젝트는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침수 등으로 인한 재난 사고는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원인도 있다”며 “효율에 중점을 두고 지하 공간 활용을 검토하는 대신 ‘안전’ 관점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아닷컴 김민범 기자 mb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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