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넘치는 ‘자살 유발 정보’…3년간 2356건 찾아낸 청년 [죽고 싶은 당신에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25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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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 취업 준비생 엄나경 씨

한국에서는 매일 36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매일 92명이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에 실려 갑니다. 한국은 죽고 싶은 사람이 정말 많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곳곳에는 죽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죽고 싶은 당신에게’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연재물입니다. 지친 당신이 어디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도 함께 담겠습니다. 죽고 싶은 당신도 외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2356건. 서울에 사는 엄나경 씨(23)가 2020년 8월부터 최근까지 온라인상에서 발견해 삭제를 요청한 ‘자살유발·유해’ 게시글의 수다. 2356건이면 3년 동안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게시글을 2건 이상 찾아낸 셈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선 오늘도 함께 목숨을 끊을 사람을 구하는 누군가가 있다. 다른 누군가는 당장 내일 스스로 세상을 등지겠다며 구체적인 수단과 방법을 예고한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이런 게시글은 또 다른 이의 자살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모두 법적 처벌의 대상이다.

엄 씨는 이렇게 온라인에 무분별하게 퍼져있는 자살유발·유해 게시글을 모니터링하는 자원봉사자다. 그는 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죽고 싶다’는 외침 수천 개를 하나하나 살펴보는 걸까. 24일 서울 광진구에서 엄 씨를 만났다.

24일 엄나경 씨가 자신의 노트북으로 SNS에서 발견한 자살 유발·유해 게시글을 신고하고 있다. 엄 씨가 3년 동안 신고한 게시글은 2300여 건에 달한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시간 날 때 틈틈이 생명 지키는 ‘방파제’ 역할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은 자살유발·유해 게시글을 모니터링해 삭제를 요청하는 자원봉사단 ‘지켜줌인(人)’ 을 운영하고 있다. 엄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던 2020년 여름, 실내에서 할 수 있는 봉사를 찾던 중 이 활동을 처음 알게돼 시작했다.

엄 씨가 모니터링하는 자살 관련 게시글은 크게 ‘유발정보’와 ‘유해정보’로 나뉜다. 유발정보란 자살을 적극적으로 부추기거나 자살행위를 돕는 데 활용되는 정보를 뜻한다. 이런 정보를 정보통신망을 통해 유포하면 자살예방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자살유해정보는 자해 사진이나 동영상, 자살을 미화하거나 또는 희화화하는 정보다. 이 경우 법적 처벌 대상은 아니다.

자살유발정보
자살유해정보
자살동반자 모집
자살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
자살을 실행하거나 유도하는 내용을 담은 문서, 사진, 동영상
자살위해물건(번개탄, 농약 등)을 판매하거나 활용하는 내용
자해 사진 및 동영상
자살을 미화하거나 희화화하는 내용
법적 처벌 대상 O
법적 처벌 대상 X

자살 관련 온라인 게시글이 엄격하게 관리되는 이유는 자살유발정보가 평소 정신건강이 취약하거나 지속적으로 자살을 생각하던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SNS를 많이 사용하고 주변의 자극에 취약할 수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더욱 위험하다.

엄 씨의 역할은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SNS를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가장 많이 살펴보는 SNS는 트위터다. 직접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게시글을 찾기 위한 약간의 요령도 필요하다. 예컨대 동반자살이라는 단어는 초성만 따서 ‘ㄷㅂㅈㅅ’이라고 적거나, 초성을 딴 ‘두부장사’와 같은 단어로 바꿔서 표현된다. “독성 약품을 판매한다”며 텔레그램이나 카카오톡 아이디를 적어둔 게시글 역시 모두 모니터링 대상이다. 엄 씨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 해당 게시글의 링크와 캡쳐본 등을 첨부한 보고서를 제출하면 삭제 조치가 진행된다.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구체적인 의사와 계획을 표현하는 경우에는 위기 상황이라고 보고 ‘긴급구조대상자’로 경찰에 직접 문자 신고를 한다. 이후 경찰이 위치를 추적해 출동한다. 엄 씨는 “‘내일까지 새로운 글이 안 올라오면 난 세상에 없는 거다’라는 글을 올린 분이 있었는데 실제로 다음 날까지 지켜보니 추가로 글이 올라오지 않아서 신고한 적이 있다”며 “지금까지 9명을 긴급구조대상자로 신고했다”고 전했다.

엄 씨가 2020년 8월 SNS에서 본 긴급구조대상자를 경찰에 신고한 문자. 엄나경 씨 제공.
엄 씨가 2020년 8월 SNS에서 본 긴급구조대상자를 경찰에 신고한 문자. 엄나경 씨 제공.


● “아주 작고 소박한 미래라도 꿈꿀 수 있기를”
3년 동안 봉사활동을 하면서 엄 씨는 가끔 자신의 행동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느껴진다. 모니터링을 하고 또 해도, 하루만 지나면 수십개씩 쌓이는 새로운 게시글들을 보면 ‘내가 아무리 신고해도 티도 안 나겠다’ ‘정말 끝이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게시글을 쓴 당사자들이 ‘왜 참견하느냐 생각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곤 했다.

“그분들이 제게 도움을 요청한 것도 아니고, 직접 대화를 나눠본 것도 아니니까요. 제 행동이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어요.”

하지만 엄 씨는 활동을 이어 나가면서 생각이 바뀌었다며 덧붙였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데 제때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특히 긴급구조대상자로 신고된 분들은 경찰이나 지자체에서 심리상담 같은 걸 연계해줄테니 도움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모니터링을 하다 보면 전날에는 비슷한 내용의 게시글이 10개 올라왔는데, 그다음 날에는 한두 개만 올라올 때가 있어요. 이런 날들이 일주일, 한 달, 두 달…. 계속 모이면 조금씩 좋아지지 않을까요?”

실제로 전문가들은 ‘자살하려는 사람은 정말로 죽고 싶어 한다’는 것이 대표적인 오해라고 말한다. 자살 시도자 중에는 삶과 죽음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 못한 이들이 많다.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복지부가 2016~2018년 자살 시도자 3만8193명을 분석한 결과 ‘도움을 얻으려고 했던 것이지, 정말 죽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라고 응답한 이들이 37.3%였다. ‘정말 죽으려고 했으며, 그럴만한 방법을 선택했다’고 응답한 34.8%보다 많았다. ‘죽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실제로 죽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고 응답한 이들도 25.5%였다.

변호사를 꿈꾸는 엄 씨는 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학교 폭력 전문 변호사’를 꿈꾸게 됐다. SNS에 올라오는 자해 사진의 90% 이상에 학교생활이나 부모님, 친구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청소년들의 글이 함께 올라오는 걸 보면서부터다.

“종이에 살짝 베이기만 해도 아픈데, 자신을 이렇게 아프게 하기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안타까워요. 각자 힘든 시기를 보내는 청소년들이 흔히 말하는 ‘로망’을 품으면서 아주 작고 소박한 미래라도 꿈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봉사활동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고, 앞으로는 청소년들에게 좀 더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자살 예방 Q&A

내 가족, 친구, 이웃이 ‘죽고 싶어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자문을 받아 자살 예방과 관련된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드립니다.

Q. 자살시도를 했다가 실패하면 자살에 대한 생각이 없어지나요?

A. 한 번 시도했다가 실패했다고 자살 충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시도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매우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한 번 시도했다고 해서 평생 자살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자살 충동이 강하게 있을 때 그 징후를 잘 포착하고 적절한 위기 개입이 이뤄지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습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 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애플리케이션(앱) ‘다 들어줄 개’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죽고 싶은 당신에게’ 시리즈의 다른 기사들은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donga.com/news/Series/70030000000942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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