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실업률 41년 만에 최저… 노동 유연화-직업훈련 강화 선순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미래 일터를 찾아서]〈3〉 일자리 미스매칭 극복한 佛
시장변화에 맞춰 인력 재교육… 일자리 재연결-시니어 인력 활용
인력 감축 등 고용규제 대폭 완화… 채용 늘고 해외기업 투자도 증가

16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14구 대로변에 있는 ‘관리자고용협회(APEC)’ 건물 1층. 대학 캠퍼스처럼 발랄한 원색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라운지에는 오전 10시인데도 50, 60대 중장년층 구직자들이 곳곳에 앉아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거나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50대 남성 피에르(가명) 씨는 방산업체를 그만둔 뒤 정보기술(IT) 업체로 이직하기 위해 ‘자신감 회복(reprise de confiance)’ 강좌를 수강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비슷한 사람들과 그룹을 이뤄 면접에 대비하면 자신감이 생길 것”이라며 “빨리 다시 일하고 싶다”고 했다.

프랑스에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노동개혁으로 직업 재교육이 탄력을 받고 있다. 급변하는 시장 흐름에 맞게 인력을 재교육해 일자리 미스매칭을 막고, 고령화로 늘고 있는 시니어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APEC, 트랑지시옹프로 등 다양한 민간단체들이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이직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무료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 근무 기간 등 일정 조건을 갖춘 직원들은 휴가나 급여를 유지하면서 이직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본보가 고용노동부, 문화체육관광부와 공동기획으로 살펴본 프랑스는 직업 재교육 강화, 고용 관련 제도 개혁으로 실업률을 41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다.

● 佛 역대 대통령들 ‘노동개혁’ 릴레이
프랑스는 10년 전인 2013년만 해도 경제 성장률이 1%에도 못 미치고 실업률은 10%대까지 치솟았다. 실업률이 프랑스의 절반 수준인 5, 6%대를 유지한 독일과 비교당하며 ‘유럽의 병자’로 불리는 굴욕을 겪었다.

이에 프랑스 역대 대통령들은 꾸준히 노동개혁을 들고나왔다. 프랑스의 고질적인 문제가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이를 고수하려는 강성 노조에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번번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거센 반발에 부닥쳤다. 2007년 집권한 공화당의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주 35시간 근무제 완화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국민들의 저항 탓에 사실상 실패했다. 2012년 집권한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은 2016년 ‘엘콤리법’으로 노사협상 규정과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며 일부 변화를 이끌어냈다.

노동개혁에 제대로 속도를 낸 건 2017년 처음 집권한 중도 성향 앙마르슈(전진)의 마크롱 대통령이었다. 개혁을 정치적 정체성으로 삼은 그는 노동개혁에 속도를 내 집권 4개월 만인 9월 노동법 개정안에 서명했다.

그 개혁의 한 축이 직업 재교육 강화였다. 정부는 기업과 직원이 부담하던 직업 재교육 비용을 지원해 교육을 활성화했다. 민간을 중심으로 교육기관의 경쟁도 유도했다. 프랑스 전문인력 채용기업 ‘ACASS’의 니콜라 아페르 매니저는 “마크롱 대통령의 노동개혁 이후 대학생들이 재학 중 참여할 수 있는 기업 교육 프로그램이 늘었다”며 “기업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을 실제 고용하면 정부로부터 자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 佛 실업률 41년 만에 최저치
마크롱표 노동개혁은 직업 재교육 강화로 근로자의 고용 환경을 개선해 고용률을 높이는 한편, 기업과 산업 현장에서는 보다 유연한 인력 운용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바꿨다. 근로자와 기업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각각 지원한 것.

기업 단위의 단체교섭을 산별 노조의 단체교섭보다 우선시하도록 한 점도 대표적인 변화로 꼽힌다. 기존에 3곳으로 나뉘어 있던 노조 조직도 하나로 통합했다. 파트리스 망소 노동법 전문 변호사는 “기업들이 여러 노조 단체와 긴 시간 논의할 일을 빠르고 쉽게 진행하게 됐다”며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기업이 시장 변화에 맞게 신속히 대처하도록 정부가 법을 개선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고용 관련 제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기업이 필요에 따라 인력을 줄이거나 근로자를 해고해야 할 때 넘어야 했던 각종 규제, 법적 문턱도 낮췄다. 그 결과 정리해고가 늘어났지만, 동시에 신규 채용도 함께 증가했다. 미국 페이스북 구글 등 빅테크가 연구개발(R&D)센터를 짓는다고 하는 등 외국 기업 투자도 늘었다. 컨설팅 기업 베인앤드컴퍼니 프랑스의 올리비에 마르샬 회장은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복잡한 노동법은 프랑스의 경쟁력과 매력을 갉아먹는 제1의 장애물이었는데, 법인세의 점진적인 인하 등 기업 친화적인 조치와 함께 투자자의 인식을 변화시켰다”고 했다.

노동개혁의 긴 여정을 거치며 최근 프랑스의 고용지표는 눈에 띄게 개선됐다. 프랑스 통계청(INSEE)은 17일 올해 1분기(1∼3월) 실업률이 7.1%로 1982년 2분기(7.1%) 이후 41년 만에 최저치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경제활동률은 73.9%로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였다.

다만 해고 요건 완화 등으로 노동 유연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취약계층 근로자의 불안정성이 커진 점은 한계로 꼽힌다. 취약계층은 물론이고 비인기 직종의 처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페르 매니저는 “노동생산성을 높이려면 보건 인력, 교사 등의 급여를 높이고, 복지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관리자고용협회#일자리 미스매칭#고용규제 대폭 완화#시니어 인력 활용#노동개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