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학교폭력 늘었다…“코로나로 사회생활 첫단추 잘못 끼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11일 11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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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날리지(Corona+Knowledge)] <23>

뉴스1
초등학교 4학년 가연이(가명)와 수지(가명)는 2학년 때부터 친구입니다. 학교는 물론이고 학원도 같이 다녔습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등교 횟수가 줄고 학원도 중간 중간 쉬면서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는 게 전부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은 좋아하는 아이돌을 얘기하다 누가 더 낫다며 말다툼을 했고, 연락을 끊었습니다. 삐져서 며칠 그러는 거겠지 생각했던 가연이 엄마는 휴대전화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가연이와 수지가 카카오톡에서 거칠게 다투고 있던 겁니다. 가연이는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고 계속 절교와 화해를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조금 줄었던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이 올해 다시 증가했습니다. 중고교생은 피해 응답률이 지난해보다 소폭 감소했지만 초등학생이 증가했습니다. 코로나19로 학생끼리 대면 상호작용이 줄어들면서, 사회생활의 첫 단추를 꿰는 초등학생들이 친구와 갈등 해결하는 법을 잘 알지 못한 탓이라는 게 학교와 전문가들 얘기입니다.

●등교 확대에 늘어난 학교폭력

교육부가 지난달 발표한 ‘2021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은 1.1%로 지난해보다 0.2%포인트 증가했습니다. 2018년부터 늘어나던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은 지난해에는 2016, 2017년과 동일하게 역대 최저 수준(0.9%)까지 하락한 바 있습니다. 이는 학생들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등교가 줄어든 영향이 컸습니다.

그런데 등교가 확대되니 올해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은 다시 올라갔습니다. 물론 아직 코로나19 이전처럼 전면 등교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피해 응답률은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1.6%)보다는 낮은 수준입니다.

학교폭력 실태조사는 매년 4월(전수조사), 9월(표본조사) 실시됩니다. 이번 전수조사에는 초4~고3 재학생 387만 명 중 88.8%(344만 명)가 참여했습니다. 지난해 2학기 이후 학교폭력 피해·가해·목격 경험을 조사했습니다.

전체 피해유형별 비중은 언어폭력 41.7%, 집단따돌림 14.5%, 신체폭력 12.4%, 사이버폭력 9.8% 순이었습니다. 특히 언어폭력은 지난해보다 8.2%포인트, 신체폭력은 4.5%포인트 증가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조사가 시작된 2013년 이래 가장 높았습니다. 언어폭력은 초등학교(42.7%), 사이버폭력은 중학교(16.0%)에서 응답 비중이 가장 높았습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학생들이 갈등을 직접 만나 풀 기회가 줄어들면서 언어폭력과 신체폭력이 동시에 늘었다고 분석합니다. 특히 신체폭력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학생들의 우울감과 스트레스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됩니다. 폭력이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언어로 표출되면 언어폭력, 몸으로 표현되면 신체폭력인 셈이죠. 한효정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지표연구실장은 “코로나19에 따른 학생 간 대면 상호작용 축소로 인한 교우관계 형성과 갈등 관리의 어려움 등이 지난해 9월 이후 등교수업 확대와 함께 표출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학교폭력 피해는 ‘초>중>고’ 순

이번 조사에서 주목할 것은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이 초등학교에서만 증가했다는 점입니다. 지난해보다 0.7%포인트 증가해 2.5%였습니다. 같은 기간 중학교는 0.5%→0.4%, 고등학교는 0.24%→0.18%로 소폭 감소했습니다. 중고교는 피해 응답률이 코로나19 이전보다도 줄었고, 2013년 조사 이래 최저치입니다.

초등학교 자녀를 둔 학부모님들 걱정 많이 되시죠? 하지만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심각성이 더 부각됐을 뿐 학교폭력이 초등학생에게서 더 심각했던 건 2013년부터 계속돼온 경향이었다고 말합니다. 2013년 초중고교 피해 응답률은 각각 3.8%, 2.4%, 0.9%였는데 매년 일관되게 초등학생이 높았습니다.

김승혜 유스메이트 아동청소년문제연구소 대표는 “학교폭력을 처음 경험하는 연령이 초등학교에서도 저학년으로 내려가는 건 일관된 문제였는데 우리 사회는 그동안 심각하게 사건화되는 중고교의 학교폭력 문제에만 주목해왔다”며 “코로나19로 인해 초등학생이 사회생활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더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꼭 팔이나 다리 하나 부러져야만 학교폭력인 건 아니죠. 요즘 학교에서 가장 강조하는 게 있습니다. ‘장난이라고 여기는 사소한 괴롭힘도 학교폭력’이라는 점입니다.

학교폭력으로 접수되는 사례들을 봐도 △무시하기 △대꾸 안 하기 △끼워주지 않기 같은 사례들이 많습니다. 친구들끼리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갈등이기도 하죠. 대부분은 서로 이야기하고 때로는 목소리를 높이고 화해하면서 풀어가는 법을 배울 겁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친구들과의 대면 기회 자체가 차단되면서 사소한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니 문제입니다. 중고교생은 그나마 이전에 학교생활을 해봤지만, 초등학생은 그 기회가 적으니 친구들과 문제가 생겼을 때 더욱 어려움을 느낄 겁니다.

●학부모가 학교폭력 이상 징후 파악해야


학교폭력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학부모가 아이 행동을 잘 관찰하고 빠르게 대처하는 게 중요합니다. 특히나 코로나19로 학교생활이 축소된 상황에서는 자녀가 친한 친구나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니 부모의 역할이 더욱 커집니다.

자녀가 다음과 같은 징후를 보인다면 학교폭력 피해를 의심해봐야 합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학교나 학원 가기를 꺼린다 △평소보다 기운이 없다 △평소보다 용돈을 빨리 쓰거나 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SNS 상태 메시지가 사라지거나 어두운 메시지를 담은 이미지로 바뀌었다 △말수가 줄어들고 멍하게 있다 △동생이나 엄마 등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한다 △평소보다 짜증을 낸다

아이와 학교폭력과 관련한 대화를 할 때는 무조건 공감하고 들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중학교 3학년 희진 양은 언어폭력과 따돌림, 사이버폭력으로 상담을 받으면서 “가해자에게 받은 상처보다 부모님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놨을 때 들었던 말이 더 괴롭다”고 했습니다. 희진 양이 들었던 말은 “도대체 학교생활을 어떻게 했기에 이런 일이 생겼냐?”였습니다.

“학교 다니다보면 다툴 수도 있지”, “선생님께 이야기해볼 테니 당분간 참아봐”, “왜 빨리 말을 하지 않았니?” 같은 이야기도 부모가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할 말이니 신중하셔야 합니다.

김 대표는 “부모님은 육하원칙에 근거해서 학교폭력 관련 정보를 정리하고, 학교에 빨리 알려야 한다”며 “무조건 변호사를 선임해서 해결하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했습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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