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무공훈장 주인공 찾기 사업 2년…구국영웅들은 어디에

계룡=박성민 기자 입력 2021-07-24 03:00수정 2021-07-2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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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된 병적기록-인물화로 전국 수소문… “지자체 협조 절실”
지난해 8월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고 김성환 화백의 인물화 및 무공훈장 수여식’에서 전계청 육군인사사령부 인사행정처장(오른쪽)과 그림 속 참전용사의 유족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육군본부 제공
“‘대한민국이 아직 살아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쟁이 멈춘 지 약 70년 만에 참전용사인 두 작은아버지의 무공훈장을 받게 된 안봉순 씨(70)는 멈추지 않는 눈물에 말을 잇지 못했다. 4형제 중 셋째인 고 안석길 하사(상병), 넷째 고 안석렬 이등중사(병장)는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3월 입대해 육군 3사단 22연대에 배치됐다. 함께 결혼식을 올린 지 사흘 만이었다.

용맹하게 전장(戰場)을 누비던 형제는 살아서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형은 입대 6개월 만에, 동생은 이듬해 정전협정 체결(7월 27일) 20일을 앞두고 전사했다. 그마나 동생은 유해를 전달받아 장례를 치를 수 있었지만 형은 아직 북한 땅인 강원도 김화군 원덕면에 잠들어 있다. 급하게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미처 유해를 수습할 겨를이 없었다.

무공훈장 전달도 쉽지 않았다. 본적지 면사무소가 전쟁 통에 소실된 뒤 두 형제의 호적이 제대로 복원되지 않아 후손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육군본부 ‘6·25 무공훈장 찾아주기 조사단’이 병적(兵籍) 기록을 바탕으로 수소문한 끝에 14일 안 씨와 연락이 닿았다. 안 씨는 “국가가 참전용사들을 기억해 주는 것에 감사하다”며 “돌아가신 날짜를 몰라 그동안 제사도 못 지냈는데 늦게나마 조카의 도리를 할 수 있게 됐다”며 감격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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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 전 희미한 기록과의 싸움

지난해 7월 고 김성환 화백의 인물화 주인공 중 유일한 생존자인 정만득 하사(오른쪽)가 그림을 전달받고 있다. 김상규 육군군사연구소 박사 제공
6·25전쟁 참전용사는 약 100만 명. 이 중 17만9331명이 무공훈장 수훈자다. 하지만 아직 4만5938명(25.6%)이 훈장을 받지 못했다. 전쟁 중에 작성된 병적 기록은 부정확한 경우가 많다. 아명(兒名)을 썼거나 생년월일이 실제와 다르면 당사자를 확인하기 어렵다. 전역 후 본적을 옮기거나 행정구역이 바뀌면 찾는 범위가 넓어진다. 기록이 소실된 경우 당사자나 후손을 찾기가 더 힘들어진다.

수훈자 찾기에 속도가 붙은 건 2019년 7월 24일 ‘6·25전쟁 무공훈장 수여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다. 단장을 포함해 17명으로 구성된 조사단이 꾸려져 지난달까지 2년 동안 1만1675명에게 무공훈장을 전달했다.

조사는 70년 전 기록에서 쓸 만한 정보를 최대한 발굴하는 데서 시작된다. 현재는 쓰지 않는 약자나 휘갈겨 쓴 한자는 한자판독병조차 읽기가 쉽지 않다. 음은 같지만 다른 한자를 오기해 이름이나 지명이 헷갈리는 경우도 많다. 어렵게 수훈자의 본적지를 확인하면 각 지방자치단체를 찾아가 과거 호적부나 현재 주민등록 기록과 대조한다. 권역을 나눠 3개 팀이 탐문을 하는데 아직 방문하지 못한 지자체도 많다. 양순일 중령은 “그래도 명단을 들고 가면 60% 정도 수훈자를 찾는다”고 말했다.

○‘고바우 영감’이 기록한 10인의 영웅

의외의 곳에서 수훈자를 찾는 경우도 있다.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으로 유명했던 고 김성환 화백은 국방부 정훈국 소속 종군 화가로 전쟁의 참상을 기록했다. 그는 1951년 10월 6사단 19연대를 찾아 금성지구(강원 철원군 일대) 전투에서 공적이 뛰어났던 장병 10명의 인물화를 그렸다.

김 화백을 만나 이 사연을 들은 육군군사연구소 김상규 박사는 참전용사 본인이나 후손에게 그림 사본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런데 조사단에 확인해 보니 10명 중 9명이 무공훈장 수훈자인데 2명은 아직 무공훈장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조사단과 국방홍보원은 그림 속 주인공을 찾는 ‘고바우 프로젝트’ 캠페인을 진행했고, 두 달여 만에 9명을 찾았다. 10인의 영웅 중 유일한 생존자인 정만득 하사(90)는 직접 그림을 전달받았다.

김 화백의 그림이 더 값졌던 건 그림을 통해 무공훈장 서훈이 누락됐던 참전용사까지 찾았다는 점이다. 조사단은 6·25 전투상보를 다시 확인해 고 서주선 하사의 공적을 심의하고 훈장을 수여했다. 서 하사의 딸 서옥자 씨(60)는 “전쟁에서 손가락 2개를 잃은 아버지는 몸에 박힌 총알도 제거하지 못한 채 매일 전쟁의 참혹한 기억에 시달리다 돌아가셨다”며 “훈장과 그림을 보며 아버지를 떠올리곤 한다”고 말했다.

‘고바우 프로젝트’는 아직 끝난 게 아니다. 10인의 영웅 중 양만식 하사를 찾지 못했다. 당시 김 화백이 발행한 신문 ‘웃음과 병사’에는 양 하사의 공적이 이렇게 기록돼 있다.

“양만식 하사는 BAR(브라우닝 자동소총) 사수로 1만 발 이상을 발사하여 놈들을 근처에 발도 못 붙이게 했으며, (중략) 이 소수의 병력으로 대적을 물리친 것은 실로 놀라운 만한 공적이다.”

양 중령은 “양만식 하사는 현재는 북한 땅인 황해도 연백군 지역 출신이라 소재 파악이 어렵다”며 “이북5도위원회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훈장을 전달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거주 손자가 할아버지 무공훈장 찾기도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헤매다 조사단을 통해 무공훈장을 받고 묘지까지 찾은 경우도 있다.

김종태 씨(71)는 30년 넘게 국방부, 국가보훈처, 국립현충원, 유해발굴감식단 등을 찾아다녔지만 아버지 김윤식 일등중사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마지막 희망으로 지난해 조사단에 문의한 결과 아버지와 같은 군번인 참전용사가 1954년 무공훈장 수여자로 결정되고도 훈장을 받지 못한 사실을 확인했다. 조사단은 여러 기록을 확인한 끝에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김 일등중사의 묘지를 찾아냈다. 묘비에 적힌 이름(김준식)이 달라 자녀들이 아버지의 묘지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조사단이 전국을 누비는 것만으로는 수훈자를 찾는 데 한계가 있다. 관련 부처의 협조가 필요하다.

고 나은철 이등중사는 외교부가 해외 동포들에게 사업을 적극적으로 홍보한 덕에 후손들이 훈장을 받게 된 경우다. 캐나다에 살던 나 이등중사의 손자 나항렬 씨(50)는 올 3월 토론토 영사관 홈페이지에서 무공훈장 찾아주기 사업을 알게 됐다. 나 씨는 할아버지의 이름을 검색하다 비슷한 이름(라온철)을 발견하고 조사단에 할아버지 군번 등 관련 기록을 이메일로 보냈다. 조사단은 나 이등중사의 호적등본 등 서류를 검토해 그가 무공훈장 수훈자인 것을 확인했다.

○“지자체 협조, 활동 기간 연장 필요”

10대 후반∼20대 초반 전쟁터로 뛰어든 참전용사들은 생존해 있다면 어느덧 90세 안팎이 됐다. 수훈자 찾기를 더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실제로 조사단이 무공훈장을 찾아준 수훈자 중 생존자는 3%(351명)에 불과하다. 2019년 9.8%였던 생존자 비율은 올해 2.3%까지 떨어졌다. 생존자들을 사망자보다 일찍 찾은 경우가 많고, 해가 갈수록 수훈자들이 사망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수훈자를 더 찾기 위해선 조사단 활동 연장을 위한 법률 근거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 조사단 활동 기간(3년)이 끝나면 내년 8월부터는 조사단을 운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무공훈장 찾아주기는 단절된 역사를 잇는 과정이자, 잠들어 있던 국가관을 깨우는 중요한 작업”이라며 “특히 생존자에게 훈장을 전달하는 것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사업을 널리 알린다면 수훈자 찾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조사단은 거주자 기록과 열람 권한을 갖고 있는 각 지자체의 협조도 당부했다. 업무 부담이 크고 민원이 많은 수도권이나 큰 도시로 갈수록 담당 공무원이 비협조적인 경우가 많다. 조사단을 이끌고 있는 육군인사사령부 전계청 인사행정처장(준장)은 “조국을 위해 헌신한 선배 전우의 공훈을 찾아주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라며 “특히 생존한 참전용사분들을 한시라도 빨리 찾으려면 법 개정을 통해 조사단 활동 기간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룡=박성민 기자 min@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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