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가 뭐예요” 묻는 초등4학년… 교사 “원격진도 나혼자 나간 듯”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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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發 기초학력 붕괴]<上> 원격수업에 가려진 기초학력 민낯

“분수? 그게 뭐예요?”

갸우뚱하는 아이(초4)의 눈빛을 보니 알겠다. 이건 정말 모르는 거다.

지방의 한 초등교사 김정훈(가명) 씨는 얼마 전 느낀 당혹감을 이렇게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 전에도 항상 이전 학년의 내용을 물었거든요. 그때는 분수가 뭐냐고 물으면 아이들이 분자와 분모도 알고, ‘사과를 6조각 낸 것 중에 3개가 6분의 3이에요’라고 답하기도 했어요. 3학년 2학기 때 배우는 내용이니까요. 그런데 올해는 전혀 아니에요.”

아이들의 학습 태도도 걱정스럽긴 마찬가지다.

“수학 교과서에 계산 문제가 나오잖아요? 그럼 직접 풀어봐야 하는데 연필만 꼭 쥐고 선생님만 바라봐요. EBS 같은 원격수업에서는 조금만 기다리면 선생님이 풀면서 답을 알려주니까요. 답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는 거죠.”

김 교사는 “4학년 1학기 나눗셈은 세 자릿수 나누기 두 자릿수를 요구하는데 아이들이 3학년 2학기에 나온 세 자릿수 나누기 한 자릿수도 잘 모른다”며 “수업 진행이 막막할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 교사만 진도 나간 원격수업
지난달 전국 초중고교는 코로나19로 인한 긴 원격수업의 터널을 지나 본격 새 학년 등교를 시작했다. 그러나 등교 확대의 기쁨도 잠시, 아이들을 맡은 교사들은 지역과 학년을 가리지 않고 ‘학력 구멍’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인천의 한 중학교 영어 교사인 이지은(가명) 씨도 1학년 기초학력 진단을 위해 ‘내 이름은 ○○○이다’를 영작하라는 문제를 냈다가 충격을 받았다. 반마다 4, 5명씩은 ‘My name is’를 쓰지 못해 빈칸을 내거나 한글로 자기 이름만 적었다. 이 씨는 “영어 문장 자체를 쓸 줄 모르는 것”이라며 “정말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옆에서 인터뷰를 듣던 이 학교 국어 담당 박모 교사도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3학년 국어 수업에 들어가서 물어봤어요. ‘최일남 소설 ‘노새 두 마리’에는 노새가 진짜 두 마리 나오지?’ 하고요. 아이들이 자신 있게 ‘네’ 하더라고요. 지난주 원격수업을 안 들은 거죠. ‘노새 두 마리’에는 노새가 한 마리만 나오거든요.”

그는 “바로 지난주 원격수업 내용도 모르는데 지난해 것을 제대로 알지 확신이 없을 때가 많다”며 “정규 진도는 물론이고 지난주, 지난해 복습까지 하며 수업하는 상황인데 학교에 머무는 시간 줄인다고 등교 날에도 5분씩 단축수업을 하니 도무지 구멍이 메워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의 고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최정은(가명) 교사는 “올해 3학년 절반이 히라가나를 못 읽더라”고 전했다. 입시와 직결되는 과목이 아니다 보니 구멍이 더 크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제2외국어는 학교에서 얼마만큼 하느냐가 중요한데 예년엔 수없이 읽고 쓰게 해 전교에서 5명 정도만 히라가나를 몰랐다”면서 “올해는 절반이 글자 자체를 모르니 문법 설명도 의미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 무너진 공부 습관… 지금 교실은 ‘전쟁 중’
등교하는 날 가르칠 내용은 예년의 몇 배인데 아이들이 도무지 수업에 집중을 못하는 것도 큰 문제다. 설문과 인터뷰에 응한 교사들은 입을 모아 “학생들이 너무 산만하다”는 반응이었다. 학교에 와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것 자체를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그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지난 한 해 원격수업을 원하는 때, 편한 자세로 듣다 보니 공부 습관이 안 잡힌 데다 지금도 초등 1, 2학년을 빼면 격주나 격일로 퐁당퐁당 등교하다 보니 여전히 학교 리듬에 적응을 못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수시로 나와서 ‘선생님 화장실 갈래요’ 해요. 요즘은 방역 때문에 쉬는 시간도 5분이고 화장실 가는 인원도 제한하니까 안 보내 줄 수도 없고요. ‘머리가 아파요’, ‘배 아파요’ 하는 아이들도 많아요. 그럼 또 덜컥 겁이 나서 열 체크하라고 보건실 보내고…. 너도나도 수업에 집중이 안 되는 거죠.”(수도권 초등교사)

1년 동안 짧은 유튜브 링크나 예능 같은 동영상에 노출된 학생들은 수업을 지루해하는 경향도 짙다. 오프라인 수업에 적응을 어려워하기도 한다. 부산의 한 중학교 교사는 “구글 폼에 쓰라고 하면 휴대전화 들고 금방 하는데 프린트물을 나눠주면 ‘선생님, 이거 어떻게 해요?’라고 한다”며 “수업 중에 돌아다녀 보면 필기가 막막해 멍하게 있거나 답을 엉뚱한 데 쓰는 학생도 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함께 전국 초중고 교사 96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교사들은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이전 학년 것을 중간중간 복습시키거나(64.6%) △예년보다 쉽게 가르치고 있다(51.9%)고 답했다. 하지만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 한 고교 교사는 “솔직히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시 가르칠 시간이 안 된다”며 “결국 미리 했거나 이해하고 따라오는 애들에게 맞춰 수업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최예나 yena@donga.com·이소정·이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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