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기회-정보죄다 서울에만” vs “12년 쌓은 스펙 오히려 걸림돌”

특별취재팀 입력 2020-09-01 03:00수정 2020-09-1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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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00주년 기획 / 극과 극이 만나다]<1> 서울-지방 취준생이 본 ‘지역 의무 채용’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 기획 ‘극과 극이 만나다’는 한마디로 의자 2개를 마련하는 과정이었다. 극단은 서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선입견을 뒤로하고,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살펴봤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남극과 북극. N극과 S극. 세상엔 극(極)이 존재한다. 다가서기도 힘든 관계. 2020년 한국 사회도 그렇다. 이만큼 다양한 극단이 부딪치는 구성체도 드물다.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 기획 ‘극과 극이 만나다’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극단이 일대일로 만난다면 어떤 대화가 오고갈까. 갈등만 깊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시도는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다름을 인정하는 노력. 공감대란 물꼬는 한번 트기가 어려울 뿐이다.

일대일 대화는 무작위로 선정하지 않았다. 극과 극이 만나는 장치를 마련했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한규섭 교수팀과 ‘정치·사회 성향조사’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성향은 물론이고 주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가진 2명을 초대했다. 두 사람의 언어 추이를 살피는 ‘투 모드(two-mode) 분석 기법’도 적용했다.

첫 주제는 ‘청년 일자리’로 선정했다. 결국 청년이 답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를 깊게 꿰뚫는 세대와 성별, 자유와 인권 등을 하나씩 꺼내볼 참이다. 세상을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관련 이슈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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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일자리의 세부 주제는 지역인재 의무채용제도다. 6월 국회에선 직원 300명 이상 민간 기업이 신규 채용 때 40% 이상을 지역 인재로 뽑는 규정을 담은 법안이 발의됐다. 찬반이 극으로 치달았다. 요즘 세대가 민감한 ‘공정’을 건드렸다. 국회 교육위원회도 법안심사보고서에서 “지방대의 경쟁력 강화, 지역 균형발전 등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나 수도권 대학 출신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크게보기성향조사 등을 통해 선정된 두 사람이 벌이는 일대일 대화. 첫 번째 대화에 참여한 김연정 씨(왼쪽)와 곽병대 씨는 이 자리에 앉아 어떤 세상을 마주할까.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그렇다면 직접 당사자들, 서울과 지방의 청년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에 다니는 곽병대 씨(24)와 경북 구미시에서 살며 금오공대를 졸업한 김연정 씨(24)가 첫 무대에 올랐다.

▼ “취업기회-정보죄다 서울에만… 출발선이 달라” “12년 쌓은 스펙 오히려 걸림돌… 내 노력 어디로”▼



금오공대 전자공학과 졸업 김연정 씨, 연세대 대기과학과 재학 곽병대 씨

스물넷 동갑내기.

겉으로 봐도 두 사람이 가진 공통점은 이게 다였다. 서울 사는 곽병대와 경북 구미시에 사는 김연정. 멀리 떨어진 거리만큼 성별과 학교, 생각 등 모든 게 달랐다.

‘극과 극이 만나다’ 참여를 위해 김천구미역에서 서울행 KTX를 기다리고 있는 김연정 씨(왼쪽)와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타려는 곽병대 씨. 스물네 살 동갑에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두 사람은 지역인재 의무채용에 대해 서로의 입장이 확연히 달랐다. 하지만 대화가 진행될수록 두 사람은 조금씩 접점을 확인하며 이해의 실마리를 찾아갔다. 김천=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동아일보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한규섭 교수팀이 설계한 성향 조사에서 병대는 보수에서 37번째, 연정은 진보에서 6번째란 결과가 나왔다. 결과 값은 정 가운데가 중도라면, 보수 혹은 진보 성향이 강해질수록 숫자가 작아진다. 57의 격차를 보인 두 사람은 지역인재 의무채용 제도에 대한 입장도 그만큼 멀었다.

금오공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연정은 “지방대 출신이 낙인으로 작용하는 현실을 서울 학생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고 꼬집었다. 병대는 “학력도 개인에겐 노력의 산물인데 사회가 그걸 부정한다면 오히려 역차별”이라고 맞섰다. 병대 씨와 연정 씨는 서로 웃으며 헤어질 수 있을까.

○ N극=병대의 노력

강서구에 살던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충격을 받았다. ‘목동 키즈’들이 많았다. 양질의 학원과 과외로 무장한 그들. 수학학원 한 곳 다닌 게 전부인 나는 이 악물고 노력해 연세대 대기과학과에 입학했다.

기쁨도 잠시. 또다시 취업 전쟁에 내몰렸다. 하지만 공공기관에 이어 대기업까지 지역인재 의무채용 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고 한다. 학교를 보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도 늘린단다. 화가 났다. 똑같이 시험 봐서 실력으로 떨어진다면 상관없다. 문제는 ‘사회적 배려’란 명목으로 같은 자리에서 출발할 기회조차 주지 않다니. 내 학력이란 훈장은 역차별이란 족쇄가 됐다. 12년간 열심히 치열하게 공부한 결과가 고작 이런 것일까.

○ S극=연정의 선택

며칠 전이다. 교육비 50만 원, 교통비 8만 원, 숙박비 10만 원, 식비까지 총 70만 원. 온라인에 올라온 반도체 공정 실습 프로그램을 보다가 그대로 노트북을 덮었다. 이번에도 프로그램이 열리는 곳은 ‘서울’이었다.

금오공대 전자공학과 졸업. 대구 ‘8학군’으로 불리는 수성구에서 고등학교를 나왔고 성적과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가 나쁘지 않아 서울 학교에 간 친구들과 비교해 부족할 게 없었다. 비싼 등록금과 생활비를 생각하니 지방대학이 합리적 선택이라 믿었다.

6년 전으로 돌아가 고3 연정이를 만난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무조건 서울로 가라”고. 서울에 가야 기회가 생긴다. 얻을 수 있는 취업정보의 질이 다르다. 지역인재 의무채용이 역차별이라니. 똑같이 노력했는데 한참 뒤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다.

○ 그들의 만남

장맛비가 그친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희궁 근처 카페에 연정이 먼저 도착했다. 병대가 뒤이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인사가 무척 어색했다.

잠시의 정적. 병대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지역인재 채용 확대 법안에 그는 직설적으로 불만을 쏟아냈다. “이 제도대로라면 제가 연세대에 다니는 것은 채용 전형에서 별다른 영향을 못 줘요. 이건 지방대란 이유로 일정 인원의 합격이 보장되는 구조잖아요. 제가 좋은 대학에 가려고 쏟아부은 노력은 다 물거품이 돼야 하는 걸까요. 스카이 대학에 들어온 걸 오히려 ‘낙인’으로 만드는 세상이에요.”

병대의 말을 듣던 연정은 억울했다. 살짝 불쾌하기도 했다. 노력이 부족해 서울의 대학을 가지 않은 게 아니었다. “지방 학생들은 서울의 대학을 가면 돈이 많이 들고 가족과도 떨어져 있어야 하잖아요. 현실적으로 각자 사정이 있어서 서울로 가지 못한 거예요.”

조금씩 연정의 말이 빨라졌다. “지방에도 대학이 많잖아요. 하지만 좋은 취업 기회와 정보는 다 서울에 있어요. 반도체 기업에 들어가고 싶어 여러 교육프로그램을 알아보는데 죄다 서울에서만 열려요. 결국 구미에서 다른 직종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어요. 지방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1지망이 아니라 2지망, 3지망을 선택하며 살아야 해요.”

병대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어느 대학에 갈지는 개인의 능력과 선택에 달린 것이잖아요. 지방이라도 많은 비용을 치르고 가족과 떨어지더라도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친구들도 많아요. 더 많은 취업 기회와 정보를 얻기 위해 희생한 거잖아요.” 또다시 흐르는 정적. 병대와 연정은 잠시 서로 다른 창밖을 바라봤다.

크게 숨을 내뱉은 병대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 “요즘은 취업 대신 학원 강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연정이 병대를 응시했다. “주변에 취업에 성공한 사람이 별로 없어요. 도피하듯 대학원에 많이 가죠. 저도 비슷한 처지고요.” 연정의 눈빛이 깊어졌다. “서울도 취업이 어렵다는 얘길 듣긴 했어요. 그래도 명문대 다니는 친구들은 다를 줄 알았더니…. 참, 어렵네요.” 잠깐 둘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연정이 말을 이어갔다. “요샌 기업도 경력이 있는 ‘중고 신입’을 원하잖아요. 하지만 대학생이 업무 경력을 쌓을 기회가 많지 않거든요. 그런데 면접만 가면 업무 성과를 물어보니,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병대도 눈빛이 달라졌다. “대기업에 간 선배들을 보면 1학년 때부터 스펙을 쌓아요. 그래야 인정을 받으니까. 근데 1학년부터 진로를 확정하는 청년들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어요. 뭔가를 새로 시도할 시간도 기회도 주질 않는 거죠, 우리 사회는. 그러다 보니 채용제도에 더 민감한 것 같아요.” 연정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러모로 참 힘드네요, 우리 세대는.”

2시간가량 진행된 대화는 끝이 났다. 젊은 세대답게 확실히 들어올 때보다는 분위기가 풀려 있었다. 꽤나 공감한 대목도 엿보였다. 서울과 지방의 취업 관련 ‘정보 격차’가 크다는 점엔 연정과 병대 모두 동의했다. “기업들이 채용 설명회를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방대에도 더 적극적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연정과 병대가 한목소리를 냈다.

오늘의 주제인 지역인재 의무채용 제도에 대한 생각도 바뀐 걸까. 잠시 멈칫했던 그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 쉽게 설득될 얘기였으면 꺼내지도 않았겠죠.” 잠시 비가 그쳤을 뿐 하늘은 여전히 먹구름이 가득했다.

특별취재팀

장소 제공 : 정동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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