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도 대학도 힘들게 하는 ‘강사법’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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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1일 시행 앞둔 대학가 움직임… 대학들 재정부담에 겸임교수 선호
강의배정 조건으로 先취직 내걸자… 강사들 헬스장 잡무 등 위장취업
“등록금은 동결… 경쟁력만 축낼것”

대학에서 체육학 강사로 일했던 A 씨는 몇 달 전 피트니스센터에 ‘위장 취업’했다. 2학기 때 강의를 맡으려면 대학이 요구한 조건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강사 채용에 부담을 느낀 대학이 겸임교수 자리를 내세운 것이다. 다른 기관에서 상시 근무하면서 강의하는 겸임교수는 임용 기간 보장 같은 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강의료도 강사보다 적다. 다음 달 1일부터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대학이 강사 채용 대신 겸임교수라는 고육지책을 내놓은 것이다.

A 씨는 피트니스센터를 찾아 “최저임금만 줘도 좋으니 4대 보험만 해결하게 해달라”고 사정했고 결국 허드렛일을 도와주는 조건으로 취업했다. A 씨 주변의 강사들도 태권도장 같은 체육시설에서 잡무를 보거나 지인의 회사를 찾아 부탁하기도 했다.

대학과 강사들 모두 강사의 처우 개선이라는 법 취지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들은 11년째 등록금이 동결된 상황에서 부담이 너무 크다고 호소한다. 2011년 강사법 개정 후 시행이 유예되면서 상당수 대학은 조금씩 강사 규모를 줄였다. 지방 사립대 강사였던 B 씨도 올 1학기에 강의를 맡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지인의 회사에 취업했다. 그러자 2학기를 앞두고 여러 대학에서 겸임교수로 강의를 맡으라는 연락이 왔다. 그는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두 과목을 강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교육부가 강사 채용 현황 등을 조사하자 이 같은 겸임교수 채용을 갑자기 중단하는 대학도 있다. 강사 C 씨는 “겸임교수에게만 강의를 주겠다고 하다가 갑자기 강사로 채용하겠다고 해서 취업했던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며 “하지만 처우는 강사법 시행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강사법에 따라 대학은 강사를 공개 임용해야 한다. 하지만 강사들은 형식적이라고 주장한다. 한 강사에 따르면 서울 한 주요 대학은 내부적으로 각 학과에 ‘강사를 채용하는 만큼 정교수 충원을 할 수 없다’고 공지했다. 자기 대학 출신 강사만 챙기는 관행도 여전하다. 교수들이 제자들에게 돌아가며 기회를 주는 것이다. 서울 4년제 대학에 지원했던 강사 D 씨는 “블라인드 채용이라면서 면접 도중 ‘우리 학교와 어떤 관련성이 있느냐’는 질문을 두 번이나 받았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강사는 “늦은 밤 ‘서류 합격’ 문자를 보내고 다음 날 바로 면접에 오라고 했다. 사전에 언질을 받은 후보자만 오게 하려는 편법”이라고 주장했다.

대학들도 사정이 만만치 않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강사들에게 방학 중 임금과 퇴직금, 건강보험료 등을 지급하려면 연간 2965억 원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교육부는 방학 중 2주일 치 임금에 해당하는 288억 원만 올해 지원금으로 마련했다. 그러면서 “퇴직금 등은 2020년 예산에 반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방의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등록금 인상도 못 하게 하고 지원금도 부족한데 ‘평가에 반영할 테니 알아서 하라’고 하는 건 협박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대학 관계자는 “강사들이 노조를 결성해 복지 혜택 확대나 정년 보장 같은 걸 요구할 가능성도 있어 일단 강사 수를 줄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또 다른 대학의 한 교수는 “학기당 12학점 미만으로 수업을 맡았는데 강사를 줄이다 보니 17학점까지 높아졌다”며 “교수가 학원 강사처럼 수업만 하면 연구 경쟁력을 어떻게 높일 수 있겠냐”고 토로했다.

최예나 yena@donga.com·김수연 기자
#강사법#대학#겸임교수#강사 공개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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