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전체가 폭염으로 들끓고 있다. 여행으로 뜨거워진 몸과 마음을 달래려는 이들도 늘고 있다. 마음이 동해 갑자기 떠나고 싶을 땐 가까운 곳부터 찾게 되는 법. 한국 중국 일본, 동아시아 3국을 오가는 관광객이 연간 1500만 명이 넘는 이유다. 휴가철을 맞아 후끈 달아오른 ‘한중일 3국 관광대전’을 들여다봤다.
● “비슷한 비용이면 일본”
사례 1.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지형 씨는 일본 여행만 20여 차례 다녀온 일본여행 마니아다. 10만 원 전후의 항공권을 이용해 하루 이틀간 식도락을 즐기곤 한다. 그는 “거리와 비용 면에서 일본은 국내 여행지처럼 느껴진다. 출국 수속이 다소 오래 걸리는 점을 제외하곤 국내 여행보다 멀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사례 2. 해외여행을 즐기는 20대 중국인 직장인 판포 씨는 틈만 나면 여행정보사이트 ‘마펑워’에 들어가 여행후기를 읽는다. 한국도 여러 차례 다녀왔으나 엔화 약세 현상이 이어진 뒤로는 일본을 선호한다. 그는 “한국이 더 가깝지만 비용이 비슷하면 일본을 선호한다. 같은 한자권 국가라 다니기에도 훨씬 편하다”고 했다.
현 시점에서 ‘관광 우등국’은 단연 일본이다. 일본의 관광산업 성장세는 눈부시다 못해 무서울 정도다. 지난해 연 방문 외국인 관광객 3000만 명을 돌파했고, 올해엔 4000만 명에 근접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일본이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가장 큰 요인은 엔화 약세와 저비용항공사(LCC)의 노선 확대가 꼽힌다. 2012년 초 100엔당 1500원 가까이 올랐던 엔화는 현재 1000원 정도다. 환율 요인만으로 50% 가격이 하락한 셈이다. LCC 노선 확대로 항공권 가격도 크게 내려 여행에서 가장 큰 변수 중 하나인 항공권 가격 부담이 크게 줄었다.
한국과 중국 관광객이 ‘같은 가격이면 일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비교 대상은 약간 다르다. 한국은 국내 여행과 비교하고, 중국은 한국 여행과 비교하는 경향을 띤다고 한다. 오유라 한국관광문화연구원 연구원은 “오키나와와 제주, 강원도와 홋카이도를 놓고 고민하는 국내 여행객이 많아졌다”고 했다. 반면 조홍준 한국관광공사 중국팀장은 “중국의 2030세대들은 국내보다 해외여행을 선호하는데 한국과 일본 두 곳을 놓고 비교한다”며 “한국은 한 번 다녀오면 또 갈 곳이 있나라는 인상이 강한 반면 일본은 전 국토가 관광지라 재방문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일본의 소도시는 지역축제가 활발하고 노포가 많아 고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골목길 탐방으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 한국과 일본의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 유치 경쟁
중국은 2014년 해외로 가는 관광객이 1억 명을 처음 돌파한 뒤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해외 각국의 유커 유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한국과 일본은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이다.
’1000만 관광대국‘ 문은 2012년 한국이 먼저 열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중국 해외 관광객을 적극 끌어들인 결과다. 유커 수요에 힘입어 2012년 한국의 외국인 관광객이 1114만 명으로 일본의 836만 명을 앞섰다.
김현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은 회복세가 상대적으로 빨랐고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 등 악재가 잇따랐다. 해외여행에 눈뜬 중국인들이 가깝고 안전한 한국에 몰려 일본보다 먼저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 고지에 올라섰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5년이 채 지나지 않아 상황은 역전됐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강력한 관광객 유치 정책이 흐름을 뒤바꿨다.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외국인 관광객 4000만 명 유치를 목표로 내걸고 각종 정책을 쏟아냈다. 한국이 중국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으로 단체관광이 금지된 반사이익까지 겹쳐 유커의 일본 관광은 날개를 달았다.
● ’일본의 2세대 한류 팬을 잡고, 사드 파고를 넘고‘
한한령(限韓令·중국 내 한류 제한령) ’펀치‘를 맞고 휘청이던 한국 관광산업엔 최근 청신호가 켜졌다. 올 상반기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722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6.9%가 늘었다. 케이팝에 빠진 일본의 2세대 한류 팬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동기 대비 18%나 늘어난 것이 주요인이다. 같은 기간 중국인 관광객이 3.7%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2030세대‘ 여성이 대부분인 한국 방문 일본 관광객들은 ’소녀시대 메이크업 따라하기‘, ’케이팝 명곡 녹음하기‘ 등 고가의 체험 프로그램에도 기꺼이 지갑을 연다는 후문이다. 이상우 관광공사 일본팀 차장은 “일본은 밖으로 나가는 관광 인원이 줄어들어 20대는 정부가 해외여행을 독려할 정도다. 한국으로 오는 관광객이 늘어난 것은 고무적”이라고 했다.
개별 관광객이 늘고 베이징(北京) 등 한국행 단체관광을 허용하는 지역도 늘고 있다. 사드 갈등의 여진이 가시지 않았지만 해빙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김현주 연구위원은 “관광산업은 쉽게 타격받고 회복도 빠르다. 특히 구전 효과가 막강해 위기 상황이 해소되면 금세 수요를 회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드 한한령 등으로 인한 감정의 앙금이 있어도 양국의 노력에 따라 반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드 보복에 대한 맞대응으로 주춤하던 한국인 관광객의 중국 방문도 늘고 있다. 베이징 상하이(上海) 항저우(杭州) 쑤저우(蘇州) 등은 물론 중서부 내륙까지 가는 관광객도 늘고 있다.
● 다시 오고 싶은 한국 만들려면
“근거리 관광 경쟁력의 핵심은 재방문율입니다. 재방문을 유도하려면 다양한 관광 상품 개발이 절실합니다.”
관광업계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강조했다. 외국인 관광객의 발걸음은 서울 부산 제주에 집중돼 있다. 강원과 경기를 찾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서울 부산 제주 등 제한된 지역을 방문하고 돌아간다. 일본과 중국 관광객 사이에선 “한국은 한 번 가면 충분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여행 목적과 국가별 관광객 구성의 편중도 해결해야 한다. 한국을 향한 여행 목적은 국적 불문하고 쇼핑과 식도락에 집중돼 있다. 자연히 2030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찾는다. 관광객 구성도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심해 이번 사드 보복 사태를 맞아 관광산업 전체가 휘청거렸다.
전문가들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지역 강화에서 찾는다. 지역 관광 상품을 발굴해 서울과 식도락·쇼핑 일색인 관광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오래전부터 지역 콘텐츠를 활용한 관광 상품을 개발한 것은 좋은 예다. 사이타마현의 애니메이션 명소 순례 프로그램과 야마구치현의 코난미스터리 투어가 대표적이다. 이상우 차장은 “특색 있는 지역 스토리 발굴을 독려해 일본 관광객을 한국으로 유인하기 위한 ’코리아 퍼스트‘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해외여행 비율이 낮은 중국 시장은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중국 관광객의 마음을 사려면 ’주링허우‘(90後·1990년대 출생자), ’링링허우‘(00後·2000년대 출생자) 등 신세대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누구보다 트렌드에 민감한 이들은 관광 책자보다 관광정보 사이트의 후기에 따라 여정을 짠다. 신세대가 관광에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유심히 살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