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암매장해놓고… 생일 미역국 돌리며 ‘8개월 실종 연극’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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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주검으로 돌아온 고준희양… 친부-동거녀엄마가 시신 유기

전북 전주에서 실종된 준희 양(5)이 결국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고모 씨(36)가 딸을 잃어버린 날이라고 밝힌 11월 18일로부터 41일 만이다. 그러나 준희 양은 이보다 7개월 전에 이미 숨졌다. 고 씨는 동거녀의 모친 김모 씨(61)와 함께 한밤중 준희 양 시신을 야산으로 옮겨 암매장했다. 이어 고 씨와 김 씨는 준희 양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8개월 동안 ‘다정한 아버지’와 ‘자상한 할머니’를 연기했다. 뻔뻔한 연극이었다.

○ “잠자다 죽었다”는 친부(親父)

전주 덕진경찰서는 고 씨와 김 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29일 밝혔다. 두 사람에게는 일단 숨진 준희 양을 암매장한 혐의(사체유기)가 적용됐다. 이들은 준희 양이 잠을 자다 갑자기 숨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돌연사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경찰에서 준희 양이 4월 26일 오후 11시경 토사물 탓에 기도가 막혀 숨졌다고 말했다. 고 씨는 다음 날 오전 1시 전주시 덕진구 김 씨 집을 찾았다가 딸의 죽음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날 새벽 두 사람은 준희 양의 시신을 승용차 트렁크에 싣고 전북 군산시 내초동 고 씨의 선산으로 갔다. 1시간 반 동안 나무 밑에 30cm 깊이로 구덩이를 팠다. 보자기에 싼 준희 양 시신을 묻었다. 준희 양이 좋아하던 인형 한 개도 함께 매장했다.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암매장한 이유에 대해 고 씨는 “준희가 숨지면 생모와의 이혼 소송과 양육비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가 죽으면 빨리 땅에 묻어야 한다고 김 씨가 말해 그대로 따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동거녀 이모 씨(35)는 암매장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김 씨도 “딸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이 씨의 공모 여부를 조사 중이다. 특히 이 씨가 준희 양을 제대로 양육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확인 중이다.

○ 8개월에 걸친 비정한 ‘연극’

준희 양 시신을 암매장하고 이틀 뒤 고 씨 등 3명은 1박 2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이어 고 씨는 8개월 동안 김 씨에게 매달 60만∼70만 원을 송금했다. 고 씨는 이 돈이 준희 양 양육비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7월 22일 준희 양 생일이라며 미역국을 끓였다. 그리고 이웃과 지인에게 “손녀(준희 양) 생일이라 미역국을 끓였는데 같이 먹자”고 나눴다. 이웃에게 “손녀를 돌봐야 한다”며 일찍 귀가한 날도 많았다. 범행을 감추기 위한 꼼꼼한 각본이었다.

김 씨는 8월 말 준희 양이 숨진 원룸에서 근처 다른 원룸으로 이사 갔다. 보증금 500만 원, 월세 30만 원짜리였다. 새 원룸에는 아동용 신발과 장난감 머리띠를 일부러 보란 듯이 갖다 놓았다.

고 씨와 이 씨는 이달 8일 오후 1시경 덕진서 아중지구대를 찾았다. 두 사람은 “준희가 11월 18일 우아동 원룸에서 사라졌다”고 신고했다. 이때 고 씨는 바닥에 주저앉아 이 씨에게 화를 냈다. 두 사람은 “준희를 네가 데려갔잖아”라고 1시간 동안 실랑이를 벌이기까지 했다. 고 씨는 이후 원룸을 찾아온 경찰관 옷을 붙잡고 “딸을 꼭 찾아 달라”고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 딸 암매장하고 ‘건담’ 자랑한 아버지

29일 확인한 고 씨의 아파트 현관 앞 복도에는 ‘건담’ 로봇 플라모델 제품 10여 개가 진열장에 있었다. 건담은 일본의 유명 로봇 애니메이션이다. 고 씨 지인들은 “고 씨가 건담을 지독하게 좋아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고 씨는 딸을 암매장한 다음 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신이 조립한 건담 모델 사진 한 장을 올렸다. 또 암매장 13일 후인 5월 10일 인터넷 카페에 건담 제품 한 개를 10만 원에 판다는 글도 게시했다.

경찰은 준희 양의 사망 원인이 석연치 않다고 보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준희 양은 생모의 집에 살 때 2년간 갑상샘 기능 저하로 30차례 치료를 받았다. 올 1월 준희 양 생모는 양육비를 올려달라며 자녀 3명과 함께 고 씨의 직장을 찾았다. 고 씨는 준희 양만 양육하기로 했다. 경찰은 처방전 발급 여부 확인을 통해 이때부터 준희 양이 치료약을 먹지 못한 것을 확인했다. 올 3월 준희 양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어린이집 관계자는 “준희의 혀가 퉁퉁 부어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동거녀 이 씨는 어린이집에 전화를 걸어 “아이가 아파서 3개월 후 보내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고 씨 등이 준희 양에게 일부러 약을 먹이지 않았을 가능성을 확인 중이다. 고윤우 서울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이 병은 갑상샘 호르몬제를 매일 복용하지 않으면 온몸이 붓고 수개월 내 사망할 수 있다”고 했다.

경찰은 또 준희 양이 올 2월 23일과 3월 19일 이마, 머리가 찢어져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사실을 밝혀냈다. 폭행 등 학대에 의해 숨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근거다. 김 씨는 처음 경찰 조사에서 “준희 양이 무언가에 부딪힌 뒤 쓰러졌다”고 말했다가 진술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이형주 peneye09@donga.com·김단비·최지선 기자
#고준희#실종사건#시신유기#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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