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욱이형, 호현아… 미안해요, 잊지 않을게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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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U 제복이 존경받는 사회]‘강릉 화재 순직’ 소방관 2명 영결식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합니다. 화마(火魔) 없는 곳에서 편히 잠드소서.”

하늘마저 눈물을 머금은 듯 잔뜩 찌푸렸다. 강원 강릉시 석란정(石蘭亭) 화재 진압 도중 순직한 이영욱 소방경(59)과 이호현 소방교(27)의 영결식이 열린 19일 오전 강릉시청 대강당은 울음바다였다. 고인들의 동료인 강릉소방서 경포 119안전센터 허균 소방사가 조사(弔辭)를 낭독하는 동안 울음소리는 더욱 비통해졌다.

허 소방사는 “영욱이 형님, 호현아”라며 두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목이 멘 채 몇 번이고 눈을 질끈 감으며 울음을 참던 허 소방사는 “당신들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 너무 한스럽고 가슴이 메어 옵니다. 부디 이 세상에서의 악연일랑 떨쳐버리고 영면하시길 바랍니다”라며 끝내 눈물을 쏟아냈다. 의연하던 객석의 동료 소방관들 중 몇몇은 오열했고 한 여성 의용봉사대원은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연신 훔쳤다.

국화로 뒤덮인 단상에는 영정과 위패, 1계급 특진에 따라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봉정한 임용장 및 공로장,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바친 옥조근정훈장이 놓였다. 그리고 그 옆에 고인들이 그 무엇보다 아꼈을 소방복과 헬멧, 정복이 잘 개어져 놓였다. 영결식장 2층 난간에는 ‘더 이상 소방관의 순직이 없길’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렸다.

최 지사는 영결사를 통해 “두 소방관은 도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라면 어떤 재난 현장에서도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인명 구조에 나서는 모범을 보인 진정한 영웅의 표상”이라며 “당신들과 함께했던 지난날을 우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이어 이해숙 시인이 남진원 시인의 ‘임의 이름은 아,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방관’이란 제목의 조시(弔詩)를 낭독했다. “우리들의 평안은, 우리들의 안전은/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임들이 계셨기에 지켜졌습니다/임이시여 영원히 평안하소서….”

헌화와 분향할 때 이 소방경 부인은 영정 앞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어떡해, 어떡해”를 되뇌기만 했다. 쓰러질 듯 휘청거리던 부인은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걸음을 옮겼다. 이 소방교의 아버지는 “호현아”를 외치며 통곡했다. 하지만 이 소방경이 “퇴직하면 요양원에 있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매일 뵙는 게 소원”이라고 생전에 입버릇처럼 말했다는 노모는 영결식장에 오지 못했다.

영결식을 마치고 운구 차량이 화장장으로 출발하자 소방관들은 거수경례로 동료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순직자들은 화장 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유족과 소방관을 비롯해 김 장관, 최 지사, 조종묵 소방청장, 자유한국당 권성동 이철규, 더불어민주당 심기준 의원, 시민 등 800여 명이 참석했다.

두 소방관은 17일 오전 강문동 석란정 불을 끄다 갑자기 무너져 내린 건물더미에 깔려 숨졌다. 29년 경력의 베테랑 이 소방경은 퇴직을 1년 앞두고 있었다. 올 1월 임용된 새내기 이 소방교는 8개월 만에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을 남겨둔 채 하늘로 떠났다.

강릉=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강릉#화재#순직#소방관#영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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