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고 활기찬 노후 챙겨주자”
1326명이 1만2300명 매주 방문… 건강체크-집안청소하고 말벗돼줘
5일 6·25전쟁 영웅 송효석 씨가 사는 광주 남구의 한 아파트에 보훈 섬김이 고영란 씨가 방문해 혈압을 재고 말벗이 되어주며 따뜻한 보훈을 하고 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광주 남구에 사는 송효석 씨(90)는 2013년 국가보훈처로부터 호국영웅기장을 받은 6·25전쟁 영웅이다. 전쟁기념관의 호국용사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전남 강진군 성전면 출신인 송 씨는 18세 때 강진농고를 졸업한 뒤 국군의 모체인 국방경비대에 입대했다. 1950년 8월 8일 국군 최후방어선이던 낙동강 다부동 전투를 치렀다.
육군 1사단 일등상사로 복무하던 그는 당시 아군에게 큰 피해를 입힌 북한군 전차를 파괴하라는 특명을 받은 특공대의 3조장이었다. 송 씨를 비롯한 특공대원 12명은 적진 깊숙이 들어가 초등학교에 은폐된 전차 4대를 로켓포로 쏴 파괴했다. 그는 “당시 군복 뒤에 ‘사신(死神)’이라는 글자를 써 붙이고 일발필중(一發必中)의 의지를 다졌다”며 “로켓포를 쏠 때 생긴 굉음으로 고막이 찢어져 피를 흘렸지만 임무를 끝까지 수행했다”고 말했다.
송 씨는 전차 1대를 파괴한 뒤 달아나던 전차 1대를 쫓아갔다. 도주하던 전차는 목교(木橋)가 무너져 전복됐다. 노획한 전차에서 북한군 극비문서를 찾아내 국군의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줬다. 특공대원들은 전차를 파괴하고 극비 문서를 입수한 공로로 1, 2계급 특진했다. 송 씨도 현지에서 소위로 임관한 뒤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송 씨는 북진과 1·4후퇴 그리고 1953년 휴전 때까지 1사단 특공대장 등으로 전선을 누볐다. 이후 전남지역 사령부에서 복무하다 1958년 전역했다. 전역 후에도 항상 ‘나라를 지켰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조국을 위해 싸우고 봉사한 그이지만 8년 전 부인과 사별하고는 아파트에서 홀로 산다. 낙동강 전투에서 고막이 터진 탓에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외롭게 생활하는 그에게 1주일에 세 번씩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 있다. ‘보훈 섬김이’ 고영란 씨(55·여)다.
고 씨는 방문할 때마다 집안 청소는 물론이고 송 씨의 건강을 체크하며 말벗이 돼 준다. 2년째 송 씨를 알뜰살뜰 챙기는 그를 보고 주위에서는 칭찬이 자자하다. 고 씨는 “고령인 할아버지가 아직도 나라 걱정을 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찡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고 씨는 송 씨 외에 보훈 대상자 4명을 돌보고 있다.
6·25전쟁에서 나라를 위해 몸을 던져 싸운 호국 유공자들이 나이가 들어 홀로 사는 경우가 많다. 이들을 가족처럼 보살피는 보훈 섬김이가 이들의 외롭고 힘든 생활에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2006년 도입된 보훈 섬김이 제도는 보훈 대상자 중 거동이 불편하거나 홀몸노인을 찾아가 보살피는 국가보훈처의 복지서비스다. 최근 취임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강조한 따뜻한 보훈 정책의 대표적 사례가 될 수 있다.
전국적으로는 보훈 섬김이 1326명이 보훈 대상자 1만2300명의 집을 1주일에 1∼3번씩 찾아 돌본다. 호남·제주에서는 보훈 섬김이 235명이 보훈 대상자 2191명을 보살핀다.
이병구 광주지방보훈청장은 “일부 보훈 대상자는 멀리 사는 아들딸보다 매주 찾아와 챙겨주는 보훈 섬김이에게 더 정이 간다고 말한다”며 “보훈가족의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 생활을 위해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댓글 0